금연 후기, 90일차 그리고 조언

epician 2015. 3. 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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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간격으로 금연후기를 써오다가 80일 무렵엔 이슈가 부족하여 잠시 미뤘습니다. 그 사이 90일, 석달을 채웠습니다. (변고가 없는 한) 아마도 이게 마지막 금연 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그러하길 바래봅니다. ㅎㅎ

금연 61~62일

짧은 갈망이 아침 저녁으로 한번 정도 나타납니다만, 이제 굉장히 익숙한 증상이라 개의치 않습니다. 아직 내 몸이 기억하고 있구나 싶은 위로를 보내며 무심히 넘깁니다.

금연 63~68일

하루 종일 담배 생각 안나는 편안한 날도 있고, 가끔 짧고 약하게 갈망이 오는 날도 있습니다.

금연 69~71일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더니 담배 생각이 슬쩍 나네요. 열받고 짜증날 때마다 피워대던 습관이 어디 갔겠습니까. 그냥 참는 수 밖에요. 잠깐 참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사라집니다. 70일 째엔 자려고 누웠는데, 평상시보다 호흡이 한결 편하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갖습니다.

무의식 중에 담배 피우던 때의 습관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놀라기도 하고, "아 이제 난 담배 안피우지"라고 웃으며 위안 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레 지나갑니다.

금연 72일

전날 간접흡연을 겪었더니 아침부터 약간 갈망이 나타납니다. 다행히 간접흡연을 겪으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습니다. 오후엔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는데, 호흡이 훨씬 편안해져서 놀랐습니다. 이 정도 오르막길이라면 숨이 차오를 타이밍인데, 이상하다 싶은 생각을 잠시 가졌다가 금연으로 폐기능이 나아졌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금연 73~74일

73일 째엔 약한 갈망이 나타났었고, 74일 째엔 갈망 없이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흡연몽을 다시 꿨는데, 그 내용은 남아 있던 담배를 난 이제 필요 없다며 남 줘버리고 괜히 줬나 싶은 후회를 3초간 ㅋㅋ

금연 75일

몇 일전 산책에서도 느꼈던 폐기능 향상이 운동할 때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래 한 운동이라 이 정도 강도, 이 정도 타이밍이면 내 호흡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알 수 있는데, 금연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편안함입니다. 더불어, 지구력도 꽤 향상 됐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폐기능 개선을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순 없지만, 대략적인 느낌으로 20% 정도는 나아진 것 같습니다.

금연 76~80일

하루 1~2회 정도 약하고 짧은 갈망이 나타나는 정도 입니다. 이제 일상적인 것이라 힘들거나 하진 않습니다.

금연 81일

전날 간접흡연을 겪어서 그런지 오전 내내 상당한 갈망이 지속됩니다. 20여일 만에 겪는 가장 강력한 갈망입니다. 59일째에 마지막으로 사용한 금연보조제(니코틴 껌)를 다시 써야하나 싶은 고민도 잠깐. 다행히 오후 무렵부턴 편안해집니다.

금연 82일

전날 오랜 만에 나타난 강력한 금단현상을 잘 넘겨서 그런지 하루 종일 굉장히 편안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유독 강한 금단 현상이 뜬금없이 한번씩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걸 잘 받아내면 다음 날부터는 금단 현상의 강도나 빈도가 현저히 낮아지고요.

금연 83~90일

담배 생각 아예 안나는 편안한 날이 반 정도, 그리고 약한 갈망이 나타나는 날이 반 정도입니다. 금연보조제 안쓴지 한달이 넘었고, (의식적으로 사용을 자제한 것 아님, 그냥 자연스레 줄여졌음) 담배 안피운지도 어느덧 3개월. 혹시라도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금단현상이 불쑥 나타난다면 주저없이 금연보조제를 다시 쓸 생각입니다. 미련하게 생으로 버티다가 담배 다시 피우게 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금연하려는 분들께 드리는 조언

거창하게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까진 아니고, 금연의 과정에서 제가 느낀 바, 겪은 바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흡연은 중독, 금연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

금연을 개인의 의지력 문제로 폄하하는 쌍팔년도 인식을 갖고 계신 분이 아직도 가끔 있습니다. 흡연은 니코틴이라는 마약성 물질에 중독되는 것이고, 금연은 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입니다. 다행히 본인 의지만으로 버텨내고 끊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금연보조제를 쓴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무지할 따름이죠. 의지만으로 금연에 쉽게 성공 못한다는 건 이미 충분한 밝혀진 내용입니다. 100명이 시도하면 성공하는 사람은 3명 정도 밖에 안되요. 달리 해석하면 실패한 97명이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의지만으로 안되면, 니코틴 패치나 껌 같은 금연보조제를 사용해보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경우, 챔픽스 같은 치료제를 써보시면 됩니다. 금연과 개인의 의지력을 연결짓는 미련한 짓보다는 그저 내 몸이 중독에 이렇게 충실하게 반응하는거보니 "아직 난 건강하구나"라고 대견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2. 금연보조제 사용에 정답은 없다.

보건소 금연클리닉에선 8주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고, 제조사에선 12주 정도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니코틴껌의 경우, 예외적으로 6개월까지 사용해도 된다고 하네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보건소 입장에서는 일단 한정된 예산에서 집행해야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짧게 끝내는 것도 좋을테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고 사용자가 확실한 효과를 봐야 좋으니까 최대한의 기간을 잡았을 겁니다.

저는 (메뉴얼을 잘 따르는 타입이라) 제조사에서 권장하는대로 12주를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몸이 적응해가는대로 줄이다보니 약 8주에서 끝났습니다. 보조제 사용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혹시라도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금단현상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다시 쓸겁니다.

금연보조제 사용을 짧게 한 달 정도 사용하고 끝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석 달을 꽉 채우다 못해 넉 달 이상 써야 끝낼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에요.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기계도 약간의 편차가 있는데, 하물며 그 보다 훨씬 복잡한 인간인데 절대 다 같을 순 없습니다.

따라서 남이 했던 과정을 참고는 하되, 그 과정을 자신에게 100% 대입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다행히 금연보조제로 담배를 끊었지만, 보조제를 쓰고도 실패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절대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한번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하면 되는거고, 금연보조제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병원 가셔서 상담하신 후에 부프로피온, 챔픽스 같은 먹는 약을 처방 받으시면 됩니다. 몸이 너무 솔직해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어려울 따름이라고 편하게 생각하세요.

3. 방심하지 말자. 강력한 금단현상은 뜬금없이 찾아온다.

333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대략 3일, 3주, 3개월 무렵에 강력한 위기가 한번씩 찾아온다죠. 제 경우는 5일, 17일, 59일, 81일에 이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강도는 시간이 지날 수록 약했으나, 겪게되는 심리적 충격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컸던 거 같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뜬금없이 강력한 금단현상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재흡연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금연보조제를 쓰던 분들이라면 참기 힘들 때, 아끼지 말고 쓰세요. 담배와 보조제는 작용기전에 달라서 뇌가 두 가지를 동일시하거나 대체물질로 인식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보조제를 통해 니코틴이 몸속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금단 현상은 나날이 줄어들거든요.

4. 기록을 남기자.

10년 전에 금연을 한번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남은 기억이라곤 니코틴 패치의 부작용이 심각했었다는 것과 6개월을 끊었다 다시 피웠다는거 말곤 별로 없습니다.

이번엔 첫 날부터 뭘 했는지, 금단 현상의 강도, 빈도는 어땠는지, 금연보조제를 언제 사용했는지 매일 기록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전에 겪었던 금단현상의 빈도와 앞으로 겪게될 금단현상의 빈도, 간격이 자연스레 예측되더군요.

기록을 남겨야 지나온 과정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과정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5. 가급적 육체활동을 많이 하자.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사무직이나 머리 쓰는 일을 하는 분이라면 정말 금연에 있어서는 최악의 조건 중 하나를 갖고 있는겁니다. 몸을 움직이면 담배 생각이 훨씬 덜 납니다. 평생 운동 해본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가벼운 산책 정도면 충분하니 육체활동을 가급적 많이 하세요. 몸을 움직이는 게 담배 생각 덜 나게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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