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과 안면을 튼 후로 세 번째 산행이다. 이상하게도 갈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던 산행이기도 하다.
정규탐방로 가운데 미답의 구간, 선녀봉을 다녀왔다.
코스

곡강 주차장을 출발하여 선녀봉, 두류봉, 적취봉, 팔영산 자연휴양림을 거쳐 다시 곡강 주자창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대략 5시간 30분 남짓 소요됐다.
곡강 주차장은 정식 명칭은 아니고, 곡강마을 구분에 있는 작은 주차장인데 이름이 없어서 인근의 곡강마을에서 명칭을 따왔다. 주소는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로 672'로 승용차 10대, 버스 2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화장실이 딸려 있는 작은 무료주차장이다.
출발 - 기대 없이 나선 길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갈까말까 꽤나 망설였다. 그러했기에 기대 따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곡강주차장을 출발하면 바로 볼 수 있는 팔영산의 풍경이다. 가운데 보이는 암릉이 선녀봉 구간이다. 11월 말의 풍경인데, 산 허리가 울긋불긋 물들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이라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막바지 단풍에 억새에, 훅 들어오는 가을 정취에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마음이 설레었다.

새 모이로 남겨둔 못난이 감들도 곱게 익어가고.

펜션 옆에서 시작된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탐방로 초입이 나타난다. 초반은 아주 완만해서 걷기 편했다.

초입에서 조금 지나면 묘지 옆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몇 분 더 오르면 선녀봉 암릉이 살짝 모습을 보여준다.


강산폭포 - 어디선가 봤는데

처음 와보는 장소에서 발견한 낯익은 풍경이다. 데자뷰는 아니고, 무등산에서도 비슷한 지형을 봤었고, 주왕산에서도 봤었고.. 하여간 놀랍게 비슷한 모습들이다.

폭포라는 명칭이 붙은 걸 보면, 폭우 직후에는 물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나 보다.
대나무숲

커다란 바위가 가득한 팔영산에도 짧지만 이렇게 고운 구간도 있다.


수북한 낙엽 탓에 길의 윤곽이 확실치 않은 곳도 있었는데, 멀리 보이는 빨간 리본으로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대나무숲은 보통 사찰 주변이나 민가 주변에 있어서 산 중턱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데, 여긴 몇 종의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선녀봉 암릉 구간
선녀봉이 자리 잡은 곳은 암릉이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등산로는 이 암릉을 그대로 가로지른다.

시작부터 경치가 대박! 미련하게 여길 올까 말까 망설였다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가파른 계단길 너머로 하늘이 보이길래, 선녀봉에 도착한 줄 알았다. 물론, 착각. ㅎㅎ

여기서 다시 심장안전쉼터를 만난다. 올라왔던 길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조금 의외다. 선녀봉까지 이런 쉼터가 2개 있다.

진짜 선녀봉은 이 안내판 너머로 보인다. 가까워 보이는데, 길이 험해 저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이 풍경에 홀딱 빠져버렸지 뭔가. 대박 ㅠ.ㅠ

마지막 봉우리가 선녀봉 정상 부근이다.

위험구간
단풍에 취해 잠시 잊고 있었는데, 팔영산은 위험구간이 가득한 곳이다.

오르긴 조금 불편하지만 바위 그대로 살려놓은 탐방로도 나쁘지 않았다. 길이가 짧은 탓인지 계단 없다고 투덜댈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할만하지" 하는 자만도 잠시, 바위틈 사이로 난 길을 보고 나니 마음이 살짝 심란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저길 갈 수 있을까 싶다.

낭떠러지 쪽은 튼튼한 철제 난간이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경사가 너무 급해서 심란했다. 다행히 고소공포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다 지나와서 돌아다보면 이런 풍경이다.

마치 협곡 같은 풍경에 파란 바다까지 더해지니, 역시나 국립공원 다운 풍경이다!
선녀봉 정상

왜 선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그 유래는 모르겠으나, 선녀도 애정했을 만한 경치다.

바위 무더기 뒤가 선녀봉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그 뒤의 배경은 팔영산의 주능선.


선녀봉은 주능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토요일임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느긋하게 경치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다.

선녀봉을 지나면 주능선까지 대략 2/3 정도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리는 제법 되는 것 같지만, 성주봉 삼거리까지는 험한 구간이 없다.


멀리 보이는 두류봉을 줌으로 당겨보니 절벽 같은 등반로가 보인다. 처음 갔을 때의 그 당황 반, 놀라움 반의 기분이 다시 생각난다.

팔영산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선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선녀봉을 지난 이후로는 어렵지 않은 길이 계속된다.
팔영산 주능선

성주봉 삼거리에 도착해서 왼쪽으로 꺾어 성주봉으로 바로 향했다. 유영봉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니 패스~ ㅎㅎ

팔영산에서 깃대봉이 가장 높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임팩트는 두류봉이 가장 크고, 풍경은 선녀봉과 칠성봉 - 적취봉 구간이 가장 좋았다. 이번 산행 전까지는 '칠성봉 - 적취봉' 구간이 팔영산 최애구간이었으나, 선녀봉 능선을 구경하고 난 후엔 순위가 바뀌었다.
선녀봉이 일등!!

여기 주능선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고운 모습이라 선녀봉이라 불렀나.


팔영산 주능선에 대한 기억은 무시무시한 두류봉이 다 잡아먹어 버렸나 보다. 절대 그럴 리 없는데, 어째 처음 보는 거 같은 모습이다? 난간을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등반로가 곳곳에 있다.

주능선을 지나는 길은 쉽지 않다. 멀리 보이는 두류봉이 내 기억을 다 잡아먹어 버린 탓에, 이 구간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드디어 가까이 두류봉을 다시 마주한다.


내가 이 모습을 보고 선녀봉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기서 보면 어쩜 저렇게 단아할 수 있을까 싶다.

올라오는 길이 거칠어서 그렇지 일단 두류봉에 올라오면 정상부가 제법 넓어서 고소공포를 느끼거나 하진 않는다.

오늘은 선녀봉이 메인이기도 하고, 주능선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인증 사진만 남기고 빠르게 이동했다.


빠르게 이동하다가, 적취봉을 앞두고 풍경을 내려다보며 잠깐 쉬었다.



적취봉에서 풍경도 실컷 즐기고, 점심을 먹은 후에 팔영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팔영산 자연휴양림

산 아래는 단풍이 막바지인데, 깃대봉 부근은 낙엽만 가득하다. 하산경로는 팔영산 자연휴양림과 임도를 거쳐서 곡강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여러모로 괜찮았다. 경사도 그렇게 급하지 않았고, 정비 상태도 훌륭하다.


멀리, 차단기가 설치된 곳으로 내려왔다.

산중턱엔 막바지 단풍이 한창이다. 다소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 내려왔다.

자연휴양림 내부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저 흰색의 작은 창고 같은 건물 왼쪽으로 팔영산 임도와 연결된다.

원점회귀까지 임도구간을 대략 3km 정도 걸어야 한다.

임도 초반엔 오르막 길도 조금 있고, 풍경도 밋밋해서 코스를 잘못 잡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선녀봉 능선이 눈에 띌 무렵, 인생사진을 건질 만한 경치가 나타났다. 이런 행운이 있나.


노랗고 빨간 단풍을 배경으로 암릉이 어우러지니 색대비가 강렬하다.

지루할 거 같았던 임도에서 숨겨진 가을 경치를 만끽했다. 기대 없이 만난 풍경이라 더 크게 다가온다.

임도 너머로 산 아래가 내려다 보이고, 계획했던 산행이 거의 끝날 때 즈음이다. 11km 거리에 5~6시간 정도 코스라 크게 무리가 되진 않았다. 딱 등산하고 내려왔다 싶을 정도의 적당한 피로감이다.

탈 없이 잘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즐거운 산행을 마무리한다.

팔영산을 뒤돌아보며 다른 계절의 풍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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