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후기

임실 - 광양 150KM (feat. 맞바람)

epician 2016. 6. 20. 00:30

올해는 장거리 라이딩을 한번도 못했는데, 장마가 시작된다는 비극적인 소식에 망연자실.

라이딩 거리를 차츰차츰 늘려놔야 장거리 라이딩에 무리가 없는데, 올해는 사정상 5월 초 70KM 코스를 끝으로 20~30KM 수준의 동네 라이딩만 하는 중이었습니다.

장마 시작되면 정말 꼼짝마일텐데, 그 전에 저지르고 보자는 결심을 굳히니 코스는 의외로 쉽게 정해졌습니다. 2014년 8월에 섬진강 자전거길(임실역 - 구례구역 구간 100KM)을 달렸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남았던 아쉬움을 풀어보기로 합니다.

포장 상태가 별로 안좋아서 달리기 짜증났던 농로 st. 섬진강 자전거길은 대부분 빼고, 도로 위주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돌아가기 너무 먼 곳은 어쩔 수 없이 섬진강 자전거길을 일부 포함했고요.

라이딩 경로라이딩 경로

라이딩 경로는 전라북도 임실군, 순창군, 남원시 경계 살짝 밟고, 전라남도 곡성군, 구례군, 순천시 경계 살짝 밟고, 다시 구례군, 경상남도 하동군, 전라남도 광양시.... 적어넣고 보기 기겁할 정도로 많이 거쳐서 내려왔네요. 대략 150KM.

출발 전날 기차표 예매하면서 일기예보를 쭈욱 찾아보니 전구간에 걸쳐 남풍(맞바람)이 3~4m/s 수준으로 분다고 합니다. 맞바람이라 걱정스럽지만, 곧 장마가 시작되는 마당이라 날짜를 바꿀 수도 없으니 그냥 모른척하고 강행.

여천역여천역

거리가 거리이니 만큼 해떨어지기 전에 끝내야 하니 7시 기차를 탑니다. 덕분에 밥은 커녕 빵 몇 개 집어먹고 나왔네요.

출발출발~

대략 한 시간여를 달려서 임실역 도착.

임실역임실역

첫 인상이 좋았던 곳이라 작년에도 생각은 났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서야 다시 오게 됐네요.

임실읍 부근임실읍 부근

한번 와봤던 곳이라고 GPS는 보지도 않은 채, 풍경을 즐기며 라이딩 시작.

와봤던 곳이라 페이스 조절이 된다는 어마무시한 장점이 있습니다만.... 맞바람이 ㅠ.ㅠ
눈 앞에 펼쳐진 시원스레 뻗은 내리막 길도 은근히 방해되는 맞바람 탓에 감흥이 덜합니다. 알긴 했지만, 틀리길 바랬던 일기예보가 이렇게 정확할 수가 없네요 ㅡ.ㅡㅋ

임실군 강진면임실군 강진면

약 20KM를 달려서 첫 휴식 장소인 임실군 강진면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번엔 여기서부터 섬진강 자전거길을 타고 내려갔었는데, 이번엔 강동교를 건너서 717번 지방도를 탔습니다. 예상대로 한적한 시골길이네요. 1KM 짜리 언덕 하나 넘으면 긴 내리막이라 완전 날로 먹는 코스 ㅎㅎ

인증샷인증샷

오후되면 지쳐서 사진찍기도 귀찮아 질테니 오전에 인증샷도 남기고 풍경 사진도 많이 담아둡니다.

섬진강 상류섬진강 상류

표지판표지판

표지판을 보니 현 위치(천담교)에서 구미교 사이 구간이 6KM인가 봅니다. 그 이후는 지방도로 갈아탈 계획. 자전거길 계속 타기 너무 지루하고 피곤해요;;

차도 사람도 없는 자전거길을 몇 시간 달리다보면 자아가 둘로 분리되는 경험을 합니다. ㅋㅋ 참을 수 없는 지루함 끝에 선한 나와 악한 나가 대립하기 시작하는 아스트랄한 상황에 다다르죠;;; 독방에서 벌 받는 기분, 정신건강에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ㅋㅋㅋ

하천 바닥하천 바닥

구담마을과 내룡마을을 잇는 얕은 다리를 건너면서 내려다본 하천 바닥. 개흙 잔뜩 묻은 검정말과 해캄이 보이네요. 해캄은 유속 느리고 더러운 물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섬진강 처럼 유속이 빠른 하천에도 있군요.

내룡마을 길은 지난 번에 왔을 땐 분명 콘크리트 농로길이었는데, 아스팔트 포장을 새로 했더군요. 이후로 내려가다보니 드문드문 아스팔트 포장을 한 곳이 눈에 띕니다.

요강바위 부근요강바위 부근

요강바위 부근 현수교를 건너서..

이렇게 멋진 자전거길이 펼쳐집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땐, 분명 농로 수준의 콘크리트 길이었는데 아스팔트 포장을 새로 했네요. 색깔만 보고 폐타이어 섞은 환타스틱한 쓰레기길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도 순도 100% 아스팔트. 기어 2~3장은 그냥 잡아먹는 듯한 폐타이어 섞은 쓰레기길. 상상만해도 짜증나려고 합니다.

순창군 적성면순창군 적성면

국도와 이면도로를 이리저리 돌아서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 초행길이라 슬슬 GPS에 의지하기 시작. GPS보고 길 찾는 것도 오랜 만에 해보는 터라 살짝 적응 안되네요.

끊임없이 불어대는 맞바람 탓에 안그래도 체력소모가 큰데, 낮시간이 되니 후끈한 복사열까지 보태지네요. 이 날 낮기온은 대략 31도 내외.

일기예보 상으론 남풍 3~4m/s 이랬는데, 5~6m/s을 넘는건 우습고요. 그 이상의 돌풍도 자주 일어납니다. 체력을 쪽쪽 빨아먹는 맞바람을 맞고 50KM 정도를 내려왔더니 입질이 슬슬 오기 시작합니다.

청계동교청계동교

청계동교 지나서 요즘 핫플레이스인 곡성군에 진입했습니다. 곡성읍에 들어가서 점심 먹고 쉴 계획이었는데, 맞바람에 체력소모가 너무 컸습니다. 여기서부터 물을 마셔도 입이 계속 마르는 게 탈수 전조증상을 보이네요. 아침에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장거리 라이딩의 Must Have 아이템인 식염을 빠트리고 나왔습니다;;; 점심 먹으면 괜찮겠거니 싶어서 일단 휴식.

곡성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곡성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음.. 여기가 그러니까 지난 번에 왔을 때, 영화 촬영을 하느라고 길을 막고 있어서 못 들어갔던 그 길 되겠습니다.

영화 가제 '곡성'을 찍는다고 길을 막아놨길래, 제목만 보곤 지역 홍보영화 정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게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었을 줄이야 ㅋㅋㅋ 물론, 그 땐 길 막고 출입통제하던 남녀 알바(?) 외에는 아무 것도 못봤습니다. ㅋㅋㅋㅋ

곡성 경찰서곡성 경찰서

곡성 경찰서 앞곡성 경찰서 앞

곡성에서 점심 먹고 쉬느라고 1시간여 소요. 점심 먹고 쉬는 동안에도 바람이 너무 불어대서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건너편 도깨비 마을건너편 도깨비 마을

지난 번 라이딩 때, 시간계산 착오로 뜻하지 않게 강제 휴식을 당했던 도깨비 마을 쉼터가 보이네요. 저쪽 자전길에 대한 기억이 썩 좋지 않아서 이번엔 당연히 반대편으로.

시군 경계표지시군 경계표지

재밌게도 도로에 저런 걸 그려놨더군요. 두가세월교 조금 지나서 본황교 부근입니다.

본황교본황교

섬진강 하구까지 66KM 라니 제가 가야할 거리도 그 정도 남은거 같네요.

여기쯤부터인가 도로가에 떨어진 버찌(벗나무 열매)가 라이딩에 방해가 됩니다. 끈적이는 열매 잔재가 타이어에 붙었다가 모래나 작은 자갈을 물고 함께 튕겨져 날리는데, 이거 정말 신경쓰이네요. 지뢰밭이 따로 없습니다.

구례교구례교

시군 경계표지시군 경계표지

구례교 지나서 순천시 경계를 살짝 밟고 (구례구역) 다시 구례군으로 돌아옵니다.

구례구역 부근구례구역 부근

지난 번에 자전거길만 타고 내려왔을 때는 대략 101KM 정도 됐던거 같은데, 그에 비하면 10KM 정도 줄었습니다. 맞바람만 안맞았으면 제대로 신났을거 같은데, 맞바람에 지쳐서 여기서부터 슬슬 걱정이 ㅎㅎ

구례구역구례구역

버찌 흔적튀어오른 버찌의 흔적

앞 디레일러며 크랭크며 달라붙은 버찌 잔해로 난리네요. 대강 긁어낸 이후 모습. 눈에 보이는 것만 털어냈는데, 나중에 보니 다운튜브쪽은 완전 전쟁터 ㅋㅋ

동방천 삼거리동방천 삼거리

구례 간전교 지나서 남쪽으로 조금 달리면 하동군...

하동군 화개면 진입하동군 화개면 진입

유명한 벗꽃길 답게 버찌 지뢰의 공격은 정말 살벌하네요. 튀어오르고 프레임을 쳐대고 난리네요 ㅜ.ㅜ

남도대교남도대교

화개장터 부근의 남도대교입니다. 오랜만에 보는거 같네요. 힘겹게 버티던 맞바람이 여기부터 +1 레벨업;; 그래서 더 기억에 남네요. 여기서부터 광양까진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그야말로 버티기 모드.

광양시 진입광양시 진입

광양시 진입하면서부터는 다시 섬진강 자전거길을 탔습니다. 막판 스퍼트를 때리라고 응원하는 건지 날도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은 더 거세지네요.

공사구간공사구간

하루 종일 페달을 돌렸더니 종아리에서 꿈틀꿈틀 "쥐내려도 될까요?"라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마침 뜻 밖의 비포장 공사구간이 나타나길래 잽싸게 내려서 끌바... 혹시나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거리가 짧아서인지 약발은 크게 없습니다. 망덕포구길을 지나는 중에도 계속 꿈틀꿈틀 ㅎㅎㅎ

최종 기록최종 기록

광양 배알도수변공원에서 라이딩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어두워졌던 하늘이 급기야 이슬비를 뿌리고 마네요. 마지막에 불어대던 그 바람이 비오기 전 예고였나 봅니다.

애초에 넉넉하게 10시간 예상했던 코스인데, 꽤 열심히 달려서 9시간 53분 기록했습니다. 하루 종일 맞은 맞바람의 위력은 정말 예상 밖;;;

이제 이 코스는 한동안 잊고 지낼 수 있겠네요. 미련 없이 달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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