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지난 수 년간, 몇 번을 갈까 말까 망설였다. 아직도 문득문득 울컥하는데, 거기가면 주책없이 터져버릴 것 같은 예감 탓에...
그러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봉하마을
얕은 산 아래로 낮은 건물들만 보이는 단정한 풍경이 첫 인상으로 다가왔다.
최근 매서운 강추위 탓에 참배객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최소 백여명은 넘을 정도로 생각보다 많았다.
생가
묘역으로 가기 전에 복원된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
길냥이
노숙의 고달픔이 묻어나는 흰고양이 한 마리가 생가 근처를 지키고 있다. 길가던 사람이 안부를 물을 정도이니, 이 곳을 지킨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생가복원 과정에서의 스케치와 노무현 대통령의 짤막한 서신이 안내판에 올라 있다. 저 짧은 서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가 더 좋아했던...
노무현 대통령 생가
생가는 초가집 두 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주거용, 바깥채는 창고 겸 화장실. 옛날 시골집은 대개가 저런 구성이다. 바깥채는 창고, 축사, 화장실 등으로 쓰는 게 일반적이다. 화장실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하다. 변소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겠지.
생가 옆의 쉼터
생가 옆엔 벤치 몇 개가 있는 작은 쉼터가 있다. 그곳에 "대통령님 나오세요!"라는 안내판이 있길래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 여기가 퇴임 후에 방문객들과 말씀 나누시던 그곳인가 보다.
묘역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풍경이다. 얕으막한 봉화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데, 좌측이 부엉이바위이고, 우측 뒷편이 봉수대가 있는 사자바위다.
묘역 바닥돌
묘역 전체에 깔린 바닥돌엔 기부자의 메시지를 새겨넣었다. 이런 바닥돌이 묘역 전체에 1만 5천개가 깔려 있다고 한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한 달만에 조기마감 됐단다.
묘역 바닥돌
그 때의 슬픔을 달랠 방법 중 하나로 이런 것을 고안해준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 전경
대통령의 유언대로 묘역은 정말 소박하다. 화려하거나, 거대하거나 혹은 위압적인 장식물 하나 없는 단정한 풍경이다.
헌화대
헌화대를 지나면 노무현 대통령의 묘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묘지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묘지석 아래에 새겨진 이 유명한 문구. 아마 많은 국민이 지난 촛불시위를 겪어내며, 저 문구가 더 깊이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묘역 옆의 공원
묘역 옆엔 잔디가 깔린 넓은 공원이 있다.
봉화산
묘역과 공원 사이를 지나면 뒷편 봉화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봉화산 등산로 들머리
해발 140미터의 얕으막한 산이다. 등산이랄거 까진 없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둘러보기 좋다.
봉화산 등산로
등산로는 정비가 아주 잘되어 있다. 운동화 정도면 스트레스 없이 오를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 캐리커쳐
부엉이바위 근처에서 들판에 수놓인 노무현 대통령의 캐리커쳐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은 정리하기 참 쉽지 않았다.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근처는 울타리를 쳐서 방문객의 접근을 막고 있다.
호미든 관음상
봉수대가 있는 사자바위를 향해 올라가던 중에 멀리 호미든 관음상이 보였다. 저기가 봉화산 정상이다.
봉수대 안내판
근처에 높은 산이 없는 탓에 그리 높지 않은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근방이 한눈에 조망된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묘역 전경
사자바위를 둘러본 후, 호미든 관음상이 있는 봉화산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 표지판
해발 140m라고 기록되어 있는 봉화산 표지판은 호미든 관음상 앞의 쉼터에 묶여 있다. 호미든 관음상에 제 자리를 뺏겨버린 느낌이다.
호미든 관음상
예상 밖에도 이 관음상이 놓인 게 1959년이란다. 1959년 4월 5일에 동국대 불교학과 재학생 30여명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농민운동을 상징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전쟁 후, 피폐했던 나라의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
여느 것처럼 그저 뭔가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조성물 쯤일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게 무척 미안했다.
봉화산 정토원
관음상을 둘러보고 내려오던 길에 봉화산 정토원을 들렀다. 이곳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는데, 직접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진 못했다.
정토원 니르바나 범종
정토원에서 만든 범종이 임시종각에 묶여있고, 그 곁으로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놓은 매듭이 숱하게 묶여있다.
소원을 적어 묶어 놓은 매듭들
저 많은 소원들 틈에 내 것도 하나 남겨놓고 왔다. 누군가 들어주시겠지...
정리하다보니 너무 길어집니다. 여기서 끊고, 나머지 부분은 새 포스트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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