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이후, 꼭 석 달만의 산행을 대전 계룡산으로 다녀왔다. 지난 겨울에 가장 짧은 코스로 한번 갔다 왔었는데, 그때의 감흥이 꽤 좋았던 터라 다시 한번 다녀오게 됐다. 물론, 그 사이 미칠 듯이 바빠서 산행은 커녕 산책도 자주 못하고 살았다. ㅠ.ㅠ
지난 겨울의 계룡산 산행기는 아래 포스트에서...
https://epician.tistory.com/318?category=551700
GPX 경로 파일은 Jatoo.net (새창) 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산행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라.
초입
지난번엔 동학사를 지나면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었는데, 이번엔 식당들이 즐비한 거리에 있는 동학사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를 삼아서 입장료를 뜯기지 않았다. 절에 삥 뜯기는 거 싫으신 분들은 이 코스로 오르시라고 추천해 드린다.
지리산 꼭대기에서 만났던 다람쥐 녀석들은 사진 찍으려고 하면 도망가느라고 정신이 없던데, 여긴 사람을 워낙 자주 마주쳐서 그런지 "잘 찍어봐"하고 포즈까지 잡아준다. 땡큐~ㅎㅎ
초입은 여느 산처럼 평범했고, 등산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물이 바짝 말라가는 상태였다.
햇볕이 강한 날이었는데, 숲이 울창해서 햇볕을 직접 맞을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바람이 안 불어서 찜통 같았다는 건 함정.
도인들의 산
얼핏 듣기론 이 산이 산세가 좋다 하여 예로부터 숱한 종교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무속신앙으로 일컫는 샤머니즘 부류부터 정감록을 믿는 유사종교단체들까지...
등산로 부근에 범상치 않게 생긴 바위가 하나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예전에 누군가 기거했던 흔적이 보였다.
간혹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산에 들어와 이러고 사는 사람들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닌 듯하다.
그렇게, 바람 한점 없는 푹푹 찌는 산행 초반을 벗어나니 시원한 산바람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했다.
숨은 그림 찾기
아래 사진을 잘 찾아보면 뱀 한 마리가 있다. 이 녀석의 엄청난 보호색 때문에 못 보고 지나칠 뻔했는데,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덕에 찾아냈다.
못 찾으시겠다면 조금 더 가까이서 찍은 사진 하나 더 ㅎㅎ
살무사는 독사이긴 하나 출혈독이라 그렇게 맹독은 아니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서너 시간 안에 병원까지 가면 대부분 목숨엔 지장 없다. 눈 위로 흰 줄이 없는 까치살무사(일명 칠점사)는 신경독과 출혈독을 모두 가진 맹독성 뱀이라 혹여라도 물리면, 1시간 안에 병원까지 갈 자신이 없으면 그 자리에 앉아서 119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상책이다.
- 출혈독: 내출혈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인데, 사람처럼 몸집이 큰 경우, 주입되는 독액의 양이 작아서 그렇게 치명적이진 않다. 다만,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 신경독: 자율신경계를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이다. 이건 아주 작은 양의 독으로도 신경이 마비되어 의식을 잃고 질식사하게 된다.
꼭 기억해 두자. 눈 위로 눈썹 같은 흰 줄이 있으면 살무사, 없으면 맹독성 까치살무사.
남매탑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던 곳이 남매탑 고개 부근이었다. 여기서 땀을 좀 식히고, 즐거운 마음으로 고객님께 걸려온 전화도 한통 받고 ㅎㅎ
사실, 요즘 일도 많고, 머리가 좀 복잡했었는데, 간만의 산행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 후텁지근한 숲길을 걷는 중에 무거웠던 머리가 비워졌나 보다.
정확한 이름은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이란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는데, 대략적인 양식은 고려 중기 정도로 추정된단다.
남매탑 옆으로 상원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이곳 약수터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날이 너무 더워서 물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곳 약수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
남매탑을 지나면 이런 경고판이 보인다.
조금 지나니 아니나 다를까 급경사 계단길이 자주 출몰했다. 그나마 계단 높이가 높지 않아 오르기는 수월한 편이다.
여기서 사진 방향으로 직진하면 삼불봉, 관음봉이 차례로 나온다. 삼불봉까진 200m, 관음봉까진 1.8km다.
풍뎅이와 헷갈려하는 꽃무지도 참 오랜만에 본다. 이게 그 약으로 먹는 굼벵이의 성체다. 요샌 이것도 농장에서 키워서 판다던데, 나도 나중에 저런 농사나 지어볼까 ㅎㅎ
삼불봉
계룡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데, 민간인이 갈 수 있는 봉우리 가운데선 가장 높다. 이 보다 더 높은 봉우리 두 개(천황봉 845m, 쌀개봉 828m)는 군사시설이 자리 잡은 탓에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다.
맨 좌측으로 통신탑 3개가 보이는 곳이 천황봉이고, 그 바로 옆으로 작은 통신탑이 보이는 곳이 쌀개봉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봉우리 3개는 차례로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이다. 약간 펑퍼짐하게 보이는 것이 관음봉인데, 저길 거쳐서 동학사 방향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올라오는 길에 높다란 봉우리가 하나 있었으니, 표지석이 있는 이 곳이 삼불(세 부처)봉의 두 번째쯤 되나 보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광활한 경치는 흠잡을 데 하나 없다.
표지석 있는 곳을 지나서 조금 더 걷다 보면 넓은 봉우리가 하나 나타나는데, 여기가 삼불 가운데 세 번째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보는 경치도 장관이다. 덕분에 셀카 원 없이 찍고 간다 ㅎㅎ
저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가 황적봉이 아닌가 싶은데, 정확하진 않다.
삼불봉을 지나 관음봉 가는 길에, 내 집 들어가는 앞마당이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그림 같은 길을 만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줍고 단아한 모양의 이런 길이 참 좋더라. 내 집 들어가는 길목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길에 대한 감흥이 끝나기도 전에 더 대단한 감흥이 몰려왔다. 이번엔 공포의 계단길 ㅎㅎ
관음봉
지난번엔 동학사에서 곧장 관음봉을 왕복했던 터라, 이런 계단길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몰랐다. 멀리서 보면 참 장관인데, 막상 올라가면 경사가 심한 구간에선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 제법 긴장했다.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경치를 봐야 하는데, 급경사 구간에선 고개 돌렸다간 현기증을 느낄까 봐 바닥만 보고 걸었다. ㅠ.ㅠ 그러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구간이 나타나면 잠깐씩 주변을 둘러보고.
관음봉에서 예상치 못한 계단길에서 털렸던 멘탈도 수습하고 ㅎㅎ, 늦은 점심도 먹었다. 평일이라 관음봉에 등산객은 네댓 명뿐이라 참 좋았다. 유명한 산은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휴일엔 등산하기가 꺼려진다.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 참 만만치 않다. 지난번엔 여기로 어찌 올라왔었나 싶을 정도.
꽃알못이라 찍고 나서도 저게 무슨 나무인지 알 길이 없다.
죽은 듯이 숨어 있던 멧쥐가 코 앞에서 후다닥 도망가는 통에 나도 놀라고, 저 개구리 녀석도 놀라서 폴짝 뛰었다. 처음엔 메뚜기가 뛰는가 싶었는데, 가만 보니 개구리다. 작은 몸집 탓에 북방산개구리는 아닌 거 같고, 산개구리 종류 가운데 하나인 거 같은데, 어쨌든 산개구리 실물 자체를 처음 본다. 영락없이 낙엽 같은 모습이 어찌나 놀랍던지!
은선폭포
지난 겨울 산행에서 운 좋게 물 떨어지는 은선폭포를 보았는데, 이번엔 꽝이다. 습기만 조금 남아 있는 모습이다. 비 내린 직후가 아니면 폭포 보기가 어렵나 보다.
밖으로 드러난 바위가 만들어내는 거친 질감 덕에 계룡산은 어딜 바라보나 그 풍경이 참 대단하다. 앞으로 계룡산 산신령님과 상담하러 자주 좀 와야겠다. ㅎㅎ 다음엔 공주 갑사 방향에서 올라볼까나~
눈 앞에 흙길이 펼쳐지면 길고 길었던 하산길이 끝난다. 돌계단만 밟다가 흙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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