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삼신봉 산행

epician 2022. 5. 22. 00:47

넓디넓은 지리산의 남쪽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삼신봉을 다녀왔다. 지난 산행 이후, 근 한 달간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가끔가다 이렇게 꼼짝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엘 가고 싶었는데, 휴식기간이 제법 길었던 터라 몸풀기 겸해서 삼신봉을 우선 다녀오기로 했다.

산행경로

산행경로, 약 11.5km

삼신봉 코스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출발하여 갓걸이재, 삼신봉, 내삼신봉, 상불재를 경유하여 삼성궁 주차장 부근으로 하산하는 11.5km 정도의 코스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8.3km 거리에 5시간 소요된다고 안내되어 있으나, 실제로 걸어보니 탐방로도 일부 바뀌어 있고, 주차했던 곳까지 돌아가는 시간까지 더하니 11.5km에 6시간 걸린다.

코스를 계획할 때, 국립공원 홈페이지와 오픈스트릿맵(이하 'OSM')을 참고했으나, OSM에 올라와 있는 경로 가운데 상당 구간이 비법정탐방로라 골탕을 제대로 먹었다. 추후 산행에 참고할 분들을 위해 조만간 OSM의 내용을 수정해 놓아야겠다.

출발

지리산국립공원 청학동 탐방지원센터

탐방지원센터 근처에 주차하면 바로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저 건물에 화장실도 있고, 이곳 바로 아래에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도 화장실 건물이 있다.

여기가 해발 700m 지점쯤 되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제법 멀고 험하다. 이번 등산의 1/3쯤은 차가 했고, 나머지는 내가 한 느낌 ㅎㅎ 하동 횡천시장(횡천면) 부근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무려 25km쯤 된다. 성삼재나 정령치 올라가는 길이 10km쯤 되는 걸 감안하면 그 두 배는 족히 넘는 거리다.

운전하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그 먼 옛날 청학동에 살던 조상님들은 도대체 세상이 얼마나 싫었길래 이 멀고 험한 데까지 들어오셨을까 싶더라. ㅎㅎ

층층나무

탐방로 입구에서부터 그윽한 꽃향기에 바람에 실려온다. 올라가며 보니 이 나무 군락이 가장 크게 만개해 있다. 이 녀석들의 꽃향기인가 보다.

탐방로 입구
탐방로 옆의 표지석

지리산 삼신봉을 이곳에선 삼신산이라고 부르나 보다. 이곳에 얽힌 전설도 함께 소개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탐방로

탐방로 정비상태는 훌륭했고, 완만한 경사로 오르기 참 편했다.

계곡과 나란히 가는 탐방로

초반 구간은 계곡과 나란히 가는 덕에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아직 덜 더워서 그런지 귀찮게 하는 쉬파리가 별로 없어 쾌적했다. 숲모기도 없었고.

피나물 (추정)

봄은 봄이라 여러 가지 꽃구경을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음지에서 자라는 이 노란 꽃이 산의 8부 능선까지 드넓게 피어 있었다. 애기똥풀인가 싶어 찾아보니 그것과는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 찾고 또 찾아본 결과, 피나물인 듯하다. 정확한 건 아니니 너무 믿진 마시라~

비법정탐방로

산행을 계획할 때, 여러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그 가운데, 압도적으로 OSM을 많이 참고하는데, 이 지도의 단점이 누구나 지도를 수정할 수 있다 보니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번 산행에서도 당했는데, 지리산 삼신봉 근처의 비법정탐방로가 아무런 안내 없이 등재되어 있다.

애초 계획은 OSM만 보고, 외삼신봉으로 빠지는 길을 따라 외삼신봉 - 갓거리재 - 삼신봉 - 내삼신봉 순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헌데, 외삼신봉 갈림길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길이 정상적인 탐방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는 수 없이 갓거리재로 직행했는데, 갓거리재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대로 외삼신봉 방향에서 오는 길은 출입금지 안내가 되어 있었다.

내 땅 아닌 이상, 가지 말라는 곳은 제발 좀 들어가지 말자. 그럴 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으니 막아두지 않았겠는가?

갓거리재 아래와 외삼신봉 근처에 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물은 500ml 생수 한 병과 빈 물통 하나만 준비했다. 물은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잠시 약도 없는 멍청함이 찾아왔나 보다. ㅎㅎ

갓걸이재 아래의 샘터
갓걸이재 아래의 샘터

갈수기에는 마르는 샘인가 보다. 물이 고인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인다. 온갖 날벌레에 올챙이까지 사는 물이라 절대 음용불가다. 이 물 마셨다가는 ㅎㅎㅎ

500ml 생수 한 병만 챙긴 실수 덕분에 산행 내내 물을 아껴 마셨다. ㅠ.ㅠ

갓걸이재

갓을 벗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갓걸이재란다. 올라가면서 느낀 바, 이름 참 잘 지었다.

가파른 오르막 구간

내내 평온하던 등산로가 갓걸이재를 앞두고선 매섭게 치솟는다. 그나마 짧아서 다행.

갓걸이재

갓걸이재에 도착하면 이정표가 보이는데, 외삼신봉 방향은 안내가 없다.

갓걸이재 이정표

그리고, 외삼신봉 방향은 아래처럼 막혀 있다. 비법정탐방로다.

출입이 금지된 외삼신봉 방향

이걸 보고 나서야 아까 외삼신봉 방향 샛길로 안 빠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신봉

갓걸이재에서 삼신봉으로 향하는 길

갓걸이재에서 삼신봉까지는 적당한 경사의 오르막 길이 이어지는데,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걷기 편했다. 그리고, 봄답게 여러 야생화로 눈요기도 실컷 할 수 있다.

붉은병꽃나무

복숭아나무 이파리를 닮은 저 자색꽃이 삼신봉 근처에 많이 피어 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식물도감 한 권 구비해야 하려나.

이름을 몰라 궁금해 하던 위 나무의 이름이 '붉은병꽃나무'라고 pennpenn님이 알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금낭화 꽃길
금낭화

금낭화 군락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여태 봤던 금낭화는 기껏해야 몇 줄기였는데, 여긴 길 양편으로 즐비하다.

하동 방향 조망

숲 안쪽만 내내 걷다가 삼신봉 근처에 도착해서야 조망이 조금 터진다. 비단처럼 접힌 저 지리산 자락에 매료되면 헤어날 길이 없다.

삼신봉 이정표

이정표에 삼신봉이라고 쓰여있길래 여기가 삼신봉 정상인가 했다. 배낭을 벗었다가 내 뒤에 올라오던 분들이 삼신봉 정상으로 가신다길래 아차 싶어서 다시 일어섰다. ㅎㅎ

삼신봉 이정표 부근

위 사진의 왼쪽이 정상인가 착각했던 장소인데, 오른쪽으로 빠져서 조금 더 올라가야 삼신봉 정상이다.

지리산 삼신봉 정상석

삼신봉 정상에서 인증사진 실컷 찍고, 풍경사진도 열심히 남겼다.

하동 방향 조망
안내판

안내판이 낡아서 글 읽기가 참 곤란하다. 좌측 끝이 노고단, 우측 끝이 천왕봉이다. 저 안내판을 참고하여 아래 조망사진을 감상하면 봉우리들의 이름이 대강 추정될 듯하다.

삼신봉에서 지리산 조망
지리산 천왕봉

아마 다음 산행은 저기쯤 아닐까 싶다. 마음먹었을 때 갔다 와야 하는데, 일정에 큰 이변이 없길 바래본다.

내삼신봉을 거쳐 상불재까지의 능선길

삼신봉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내삼신봉 방향의 능선길을 타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삼신봉에서 소원을 안 빌고 그냥 왔다는 생각이 난다. ㅎㅎ 이름이 거창한 산이라 소원 좀 빌어야겠다 싶었는데, 그걸 깜박하고 말았다.

능선길

내삼신봉까지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길이다. 길 양편으로 조릿대가 무성하여 발아래로 시야 확보가 잘 안 된다. 이런 길에서 간혹 살무사가 보이는지라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느라 걷는 속도가 더디다. 이런 고산에는 까치살무사(일명 칠점사)가 많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기이한 바위

커다란 바위 절벽에 주먹보다 큰 다른 바위가 박혀 있다. 화석일까 화산 폭발의 잔해일까 궁금하다.

내삼신봉으로 오르는 바위틈

이 바위틈을 지나면 내삼신봉이다.

내삼신봉 정상석 "삼신산정"

마지막 한자 정수리 정 '頂' 자를 못 읽어서 한참 고민했다. 한자 쓸 일이 없다 보니 매 맞으면서 배웠던 한자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쓸모도 없는 한자공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시키셨을까 싶다. ㅎㅎ

여기서는 아까 깜박했던 소원도 좀 빌고, 경치 구경도 실컷 했다.

내삼신봉에서 지리산 조망

흐려서 아쉽긴 하지만, 지리산 조망은 내삼신봉이 더 나은 거 같다.

의신마을 풍경

내삼신봉에서 내려다볼 때는 어딘지 몰랐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하동 의신마을 아닌가 싶다.

묵계제

반대방향으로 묵계제가 내려다 보인다. 하동호인 줄 알았는데, 지도를 보니 하동호는 저 산줄기 너머에 있고, 저건 묵계제 풍경이다.

이름 모름

아까 봤던 꽃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지는 중인가 싶기도 하고 피는 중인가 싶기도 하다. 어떻게 저런 색이 만들어지나 싶을 정도로 색깔이 참 곱다.

쇠통바위

표지판이 없어서 정확하진 않으나, 이 커다란 바위가 쇠통바위인가 보다.

쇠통바위

아래쪽 지반이 침식되는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은 듯하다.

철쭉

흔히 반대로 알고 있는데, 연분홍의 꽃과 넓은 이파리를 가진 이게 철쭉이란다. 더 붉은빛이 도는 꽃에 좁은 이파리를 가진 게 산철쭉이라더라. 꽃의 색 때문인지 산철쭉을 정원수로 많이 키운다.

꽃길

떨어진 철쭉꽃이 길에 한가득이다. 말 그대로 꽃길을 걸었다 ㅎㅎ

상불재로 향하는 샛길 (비법정탐방로)

산악회 리본이 여러 개 매달린 곳으로 샛길(비법정탐방로)이 있는데, 여긴 OSM에도 비법정탐방로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미리 알았다. 근데, 문제는 다음에 발생...

상불재 도착, 길이 없다

막힌 옛 탐방로

상불재에서 삼성궁 방향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막상 상불재에 도착하니 아무런 설명 없이 '출입금지' 팻말만 있는 게 아닌가! 여기서 살짝 멘붕이 왔다. 계획대로라면 저기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OSM을 살펴보니 내원재까지 연결된 길에서 청학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여기서 엄청난 갈등을 때리다가 결국 내원재까지 걸어도 해 떨어질 일은 없겠다 싶어 내원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근데, 걷다 보니 내원재 방향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이 길도 비법정탐방로인가 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계속 길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최근에 정비한 새길이 나타난다.

새로 정비한 탐방로

이 길을 보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기존 탐방로를 폐쇄하고 새 탐방로를 만든 모양이다. 그렇다면 표지판에 설명이라도 좀 해줄 것이지!!

폐쇄된 기존 탐방로

내려오다 보니 폐쇄된 옛 탐방로와 이어지는 지점이 보인다. 제법 가팔라 보이는 게 위험한 지형 탓에 우회 탐방로를 새로 만들었나 보다. 여하튼, 설명 없이 지도의 길과는 다른 곳으로 안내되었던 터라 크게 당황했다.

내려오던 중에 GPS를 수시로 봤는데, 내려가는 길이 기존 탐방로와는 크게 벗어난다. 기존 탐방로는 삼성궁 뒤편으로 안내되어 있는데, 새 탐방로는 삼성궁과는 크게 벗어난다. 아마 유료 관광지인 삼성궁 출입 문제 때문에 탐방로를 바꿨나 보다.

나무 계단

이 나무계단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이 부근부터 계곡 물소리가 제법 커져서 하류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아래의 통나무 다리가 보이면 진짜 다 내려온 거다.

마지막 통나무 다리

저 다리를 건너면 좌측으로 삼성궁이 보인다.

계곡 연못

계곡의 물을 인공적으로 가두어 연못을 만든 듯하다. 생태계 단절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는 생각지 못했나 보다.

연못과 연결된 폭포

아무리 봐도 사람이 쌓은 것 같은데,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생태계 단절은 생각치 못했을까. 참 아쉽다.

탐방로의 끝

이번 탐방로의 끝이 보인다. 저곳을 나가면 삼성궁 근처의 공터로 나온다.

산행 끝

삼성궁 입구 공터

자동차 앞으로 내려왔던 탐방로가 있고, 다리 건너 보이는 곳이 삼성궁 주차장이다. 이렇게 이번 산행이 거의 끝나간다. 이제 피곤이 몰려오는 다리를 달래며 주차해 두었던 출발점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대략 1.5km 거리다.

삼성궁 입구

도로를 따라 한가롭게 걷다 보니 청학동의 이국적인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국적인 청학동 건물들

단풍나무 열매는 갈색으로 변해서 땅에 떨어진 것만 봤었는데, 나무에 달린 모습은 저렇게 빨갛구나.

단풍나무 열매
걸었던 지리산 능선을 올려다 보며

한적하게 걸으며 동네 구경도 하고, 걸어왔던 지리산의 늠름한 산세도 구경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출발했던 탐방안내소 건물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이번 산행의 끝이 보인다.

출발지로 복귀

대중교통 연계가 너무 불편하여 원점복귀 코스가 최선이었다. 예전에 불일폭포를 다녀오면서, 이 근처 탐방로를 살펴보다가 쌍계사에서 청학동으로 넘어오는 길도 관심이 생겼었다. 근데,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대중교통 연계가 쉽지 않아 보류하고 말았다. 시골 산행은 쉽지 않은 접근성이 항상 아쉽다.

구경 잘하고, 탈 없이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다. 산세가 좋아서 여기도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다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