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여수 미평 봉화산 둘레길 걷기

epician 2022. 4. 5. 02:16

둘레길 아님 그러나 경치는 흡족

꽤 오래전에 미평 봉화산에 둘레길이 있다는 얘길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등산을 하면서 대충 둘레길의 들머리로 짐작되는 곳은 발견했으나 가보진 않았다. 그러다, 엊그제 집 뒤의 호랑산에 오랜만에 올랐는데, 호랑산 정상에서 봉화산을 바라보다 잊고 지냈던 '봉화산 둘레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후, 생수 한 병과 초코바 2개 챙겨서 둘레길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준비가 부실하다는 것은 여길 참 만만하게 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ㅎㅎ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군가의 오해로부터 시작된 둘레길 아닌가 싶다. 여수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봐도 여긴 둘레길이 아니라 '봉화산 등산로 9구간' 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9구간이 해발 320m부터 400m 부근에 걸쳐있다.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하는 높이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만한 곳은 결코 아닌 듯하다. 둘레길의 의미를 상기해보면 여긴 고도부터가 둘레길이 갖춰야 할 접근성에서 낙제점이다.

여수시청에 소개된 봉화산 등산로

내가 산행했던 경로는 3구간에서 진입해서 9구간을 걸어서 8구간을 지나 임도를 따라 만성리 방향으로 내려왔다.

산행경로 (약 10Km에 3시간 소요)

출발

호랑산 전경

엊그제 정말 오랜만에 올랐던 호랑산의 전경이다. 너무 오랜만에 갔더니 그새 못보던 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그렇더라. 덕분에 예전보다 오르기는 많이 수월한 느낌이었다.

저당산 임도

둔덕에서 저당산 임도를 따라 쭈욱 걸어 올라갔다. 예전에 MTB 탈 때는 정말 자주 왔던 곳인데, MTB를 접은 후로는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임도삼거리의 등산로 3구간 들머리

익숙한 풍경일 것이라고 자신하며 3구간 들머리에 들어섰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꽤 낯설다. 예전보다 길이 더 넓어진 것 같기도 하고.

적당한 경사도의 오르막을 걷다 보면 봉화산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 바로 아래에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등산로 사거리 (3구간, 9구간, 5구간 합류점)

이 사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봉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인데, 경사가 꽤 급하다. 그리고, 여기서 좌측으로 빠지면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로 착각하는 봉화산 등산로 9구간이다.

봉화산 등산로 9구간

봉화산 등산로 9구간 초입

9구간은 대략 해발 320m부터 400m까지에 걸쳐 있는 고저차가 낮은 능선길이다. 걷기 좋은 건 두말할 나위 없고, 눈에 익지 않은 새로운 전망이 선사하는 즐거움도 크다.

호명동 자내리 조망

처음엔 상암동이 내려다 보이는 건가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여기서 그 동네까지 보일 리 없다. 그래서, 자내리 풍경이라는 결론을 냈다 ㅎㅎ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산중 계곡으로 다리가 놓여 있다. 보이는 것처럼 등산로의 정비상태는 정말 훌륭하다. 거의 국립공원급~

개화를 준비 중인 꽃망울

이름 모를 이 나무는 봄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짧은 시간에 이파리를 벌써 저만큼 키우고 꽃망울까지 잔뜩 영글어 놓았다. 그 생명력 참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둔덕동/봉계동 조망

이 시점에서 둔덕동/봉계동을 내려다보니 그 느낌이 참 신선했다. 이렇게 보니 또 저런 모습이구나.

9구간 - 4구간 교차점(사거리)

9구간과 4구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이렇게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편백숲길/천성산정상' 이라고 표시된 방향으로 계속 진행했다.

봉화산 등산로 9구간
해양경찰교육원 방향 조망

대략 이 근처 진달래 개화율은 30~40% 부근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진달래 무리 너머로 해양경찰교육원과 그 앞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저곳 이름은 해양경찰교육원인데, 부지 절반은 골프장이라 볼 때마다 욕이 절로 나온다. 세금으로 저 무슨 짓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봉화산 등산로 9구간

잘 정비된 길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진짜 등산로 같은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기존의 천성산 등산로인 1구간이다. 사전정보 없이 여길 왔더니, 어디가 나올지 정확히 짐작이 안 되는 바람에 눈앞에 나오는 풍경들이 참 흥미진진하다.

9구간이 끝나고 1구간과 만나는 지점

천성산

애초 예상은 봉화산 둘레길이 봉화산 정상 부근에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걷다 보니 천성산까지 연결된다.

천성산 정산부로 올라가는 길에서의 전망이 꽤 훌륭하다. 바다 건너, 남해군도 또렷이 보이고, 여수 앞바다에 정박 중인 다양한 선박들도 볼 수 있다.

바다 건너편의 남해군
천성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에서의 조망
천성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에서의 조망
천성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에서의 조망

위 사진의 풍경을 설명하자면 산 바로 아래로 보이는 공장지대가 오천산단이고, 바다 건너편은 남해군 그리고 오른쪽 끝 해변이 만성리다. 만성리 위쪽으로 땅콩처럼 보이는 섬이 오동도다.

천성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에서의 조망
천성산 정상의 전망대

내가 여길 오르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봉화산 둘레길이니 봉화산 정상부 근처에서 끝날 줄 알았으니 말이다. 여하튼, 굉장히 오랜만에 왔더니 전망대도 새로 놓여 있고 나름 새롭긴 하다.

천성산 능선길

천성산은 정상부의 이 능선길이 참 걷기 좋다. 완만한 경사에 조망 또한 좋아서 능선길 걷기 좋아하는 내겐 정말 좋다.

천성산에서 바라본 여수 풍경

천성산에서 보면 가운데 우뚝 솟은 구봉산을 중심으로 여수 구도심과 신도심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주 접하지 못했던 뷰라서 아는 곳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다.

천성산에서 바라본 봉화산 정상
천성산에서 바라본 광양항

봉화산 등산로 8구간

천성산 정상부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봉화산 등산로 8구간과 만난다.

8구간 합류점

왼쪽으로 내려가면 봉화산 등산로 8구간이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봉화산 정상이다. 애초 산행 목적 가운데 하나가 OSM에 올릴 GPS 로그를 따는 것이라, OSM 지도 상에 기록이 없는 8구간으로 진행했다.

8구간의 풍경

여기를 예전에 MTB 타고 지나다니던 임도로 잠깐 착각 했다. 아는 길 같은데, 이 길이 이렇게 인상적이었던가라고 한참을 반추했다.

8구간의 풍경

그러다 내린 결론. 여긴 비교적 최근에 뚫린 임도이고, 내가 이렇게 들어와 본 적은 없는 길이다. 늘 지나다니던 임도길과 크게 혼동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

길 옆으로 누군가 가꿔놓은 듯이 단정한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어찌나 단정하고 우람한지 한참을 지켜봤다.

8구간와 기존 임도의 합류점

대략 500m 거리의 8구간이 끝났는데, 짧아서 너무 아쉽다.

만성리 방향으로 하산

어떻게 복귀할지 한참 고민했다. 임도길을 따라서 미평 방향으로 내려갈까, 만성리 방향으로 내려갈까. 해질 무렵이 되니 바람이 꽤 차가워진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 내려갈 수 있는 만성리 방향을 택했다.

쓸모 없는 안내도

9구간을 걷는 동안 안내도는커녕 이정표도 매우 부실해서 좀 불편했다. 이렇게 길을 잘 만들어놓고도 안내도 하나 없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ㅎㅎ

그러다 만성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중에 처음으로 안내도를 만났다. 물론, 그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임도보다 넓게 그려진 등산로는 아는 길 조차도 헷갈리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여태껏 봤던 안내도 중에서 단연 최악이지 않나 싶다.

만성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임도
이름 모를 노란꽃

길쭉한 이파리의 상록수과 나무에서 피는 꽃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땅을 향해 종처럼 피는 모양새가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만성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임도
후박나무숲길 들머리

예전에 자전거 타고 이 임도를 지나면서 길 건너편으로 놓인 다리를 몇 번 봤었다. 미평동 방향으로 등산로가 있는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때 궁금해했던 기억이 떠올라 내려가는 길에 잠깐 둘러봤다. 미평동 방향으로 난 등산로가 아니고 이 근처에 조성된 후박나무숲을 지나서 봉화산 정상부의 팔각정으로 연결되는 '봉화산 등산로 7구간'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봉화산에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이 꽤 있다. 다음엔 3구간 - 7구간을 연결해서 걸어봐야겠다.

산중의 벚나무

드문 드문 자라는 산중의 벚나무가 만개했다. 저물어 가는 햇볕을 받으니 유난히 돋보인다.

만성리 해변

하산에 1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콘크리트 포장된 임도길이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40분 만에 내려왔다.

무작정 출발했던 것에 비하면 큰 탈이 없이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조망 좋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알게 되어 즐거웠다. 이 코스는 멀리 가기 귀찮을 때, 산책보다 조금 더 거창한 뭔가가 필요할 때 딱이지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