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능선 산행, 정령치 → 세걸산 → 바래봉

epician 2022. 4. 20. 01:33

정령치휴게소에서 출발해서 지리산의 능선을 타는 산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두 번은 정령치에서 성삼재로 갔었는데, 이번엔 반대로 바래봉 방향으로 산행을 했다.

큰 기대 없이 갔었던 바래봉의 매력에 빠져서 바래봉만 벌써 세 번째이고, 그 사이에 가족과 동행하여 인근의 지리산 허브밸리(식물원) 여행도 했었다. 전원의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았다.

코스

약 18KM, 8시간 소요

정령치휴게소에서 출발하여 큰 고리봉, 세걸산, 세동치, 부운치, 팔랑치, 바래봉을 거쳐 남원 운봉읍으로 내려오는 약 18Km 거리의 코스다. 사진 찍으며 여유롭게 걸어서 약 8시간 소요됐다.

부족한 아침잠도 보충할 겸, 기차와 정령치 순환버스를 타고 정령치휴게소까지 이동했다. 정령치 순환버스에 관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에 상세히 기술했으니, 그걸 참고하시라.

2021.10.06 - "산책스런" 지리산 정령치 → 만복대 → 성삼재 산행

 

"산책스런" 지리산 정령치 → 만복대 → 성삼재 산행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남원)를 출발하여 만복대와 작은 고리봉 등을 거쳐 성삼재 휴게소(구례)에 도착하는 코스인데,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에 한번 왔었는데, 그땐 너무 바빠서 글로 정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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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바뀐 게 있는데,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이 폐업하면서 정령치 순환버스가 고속버스터미널에는 더 이상 정차하지 않는다. 그걸 모르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이 간혹 있는 듯하다.

정령치 순환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요동치는 흔들림에 자연스레 잠이 깼다. 정령치로 올라가는 굽이치는 도로의 흔들림을 이겨낼 만큼 피곤하진 않았나 보다. ㅎㅎ

정령치의 지리산 풍경

정령치 휴게소에서 본 지리산 풍경
조망점에 놓인 안내판

구름 없는 맑은 날이라 안내판과 똑같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천왕봉부터 반야봉까지.

출발

정령치 생태터널에 올라서면 탐방로의 들머리가 시작된다.

들머리

이 길을 따라 지리산의 능선을 걸으며 바래봉까지 가게 된다. 4월 중순이건만 고산에서 맞는 바람은 제법 차갑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니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진달래

어지간한 산은 이미 진달래가 만개했는데, 해발 1,200m 대의 고산에선 이제 막 개화를 시작했다. 거친 기후 탓인지 어째 색이 더 곱다는 생각도 든다.

거친 오르막

능선길이지만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다. 짧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구간이 많다.

탐방로

큰 고리봉

정령치휴게소에서 대략 30분 정도면 큰 고리봉에 도착한다. 고리봉 부근에서 이런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고리봉 부근의 풍경

여기까지 올라오면 정령치 휴게소에서는 보이지 않던 노고단도 볼 수 있다. 가장 오른쪽이 정령치 휴게소이고, 왼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 가운데에 보이는 가장 먼 봉우리가 노고단이다.

큰 고리봉 이정표

등산의 재미 중 하나가 표지석에서 인증샷 찍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여긴 표지석이 없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후 지나가는 모든 봉우리에 표지석이 하나도 없다. ㅠ.ㅠ

남원시 운봉읍 전경

고리봉에서 너른 분지 같은 남원시 운봉읍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먼 옛날엔 분화구였을까 싶을 모양새다. 그리고, 여기가 1,380년에 황산대첩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니, 여행차 들른다면 황산대첩비(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등도 구경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C%82%B0%EB%8C%80%EC%B2%A9

 

황산대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황산대첩(荒山大捷)은 1380년(우왕 6년) 9월 이성계가 황산[1]에서 고려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전투이다.[2] 1376년(우왕 2년) 홍산(鴻山) 전투에서 최영의 군사에 크게 패한 왜구는 한동안 잠잠하

ko.wikipedia.org

탐방로

고산에 찾아든 봄기운에 돋아난 야생화 구경도 참 즐겁다. 저 꽃들이 지쳐있던 내 마음을 각성케 한다.

이름 모르는 흰꽃

바위틈에서 피어난 앙증맞은 흰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얼핏 배꽃을 닮기도 했는데, 꽃알못이라 이름을 모르겠다.

제비꽃

봄에 보라색으로 풍경을 물들이는 제비꽃이 여기도 한가득 피었다. 몇 해 전 다른 곳에서 봤던 제비꽃에 비해서 무늬가 조금 약한 듯도 싶다.

얼레지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얼레지꽃이다~"하고 반가워하시길래, 냉큼 이름을 주워 담았다. 정말 발길 닿는 곳마다 얼레지가 만개하여 무척 볼만했다.

흰제비꽃

무슨 꽃인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흰 제비꽃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꽃의 윗 받침이 2개, 아래 받침이 3개로 똑같다.

탐방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이런 정감 넘치는 길도 지나고.

탐방로

반대편 풍경이 기대되는 이런 오르막도 오르다 보면 두 번째 봉우리인 세걸산 부근에 다다른다.

세걸산

노고단
반야봉

이 능선길을 걷다 보면 왼편으론 남원시 운봉읍, 오른편으로 반야봉의 풍경이 계속 따라온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반야봉의 모습에 다음엔 저길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지리산의 매력은 이렇게 쉼 없이 반복되나 보다. 아직 숙제처럼 남은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데...

세걸산 이정표

세걸산 역시 표지석은 따로 없다. 인증샷 찍을 생각에 부푼 기대를 품고 올라왔는데, 어찌나 허탈하던지 ㅎㅎㅎ
세걸산에 도착하면 저 멀리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바래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팔랑치와 바래봉

카메라 줌을 당겨서 사진으로는 바래봉까지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꽤 먼 거리다.

걸어온 능선을 돌아본 풍경

돌아보니 지나온 지리산 능선이 제법 멋져 보인다. 내가 저 산줄기를 모두 지나왔구나.

노란꽃

걷다 보니 샛노란 봄꽃이 눈길을 끈다. 산수유 같기도 하고, 생강나무인가 싶기도 하다.

개화전의 노란꽃

내일이라도 피어날 듯이 땡글 하게 영근 모습이 너무 대견하다.

세동치

세동치 이정표

그 흔한 표지석이 여기도 없다. 코스의 전체적인 느낌이 인공적인 것은 가능하면 배제한 느낌이다. 방부목으로 잘 짜 놓은 데크나 계단도 없고, 폐침목으로 만든 계단 조차도 거의 없다.

세동치 이정표 부근에 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안내도
안내도

정령치휴게소에서 용산주차장까지를 기준으로 6시간 40분으로 안내되어 있는데, 대략 정확한 듯하다. 나는 저 코스에다 바래봉을 넣고, 도착지점을 운봉우체국으로 잡아서 8시간이 걸렸다.

세동치 부근에서 조망이 넓게 열리는데, 여기서 지리산 안쪽에 숨어 있는 부운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지리산 풍경

위 사진의 중앙부가 부운마을인데,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여 먼 옛날엔 전쟁도 피해 갔을 것 같은 오지 중 오지다.

부운마을

곧 나올 부운치 고개에서 부운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탐방로가 있다.

부운치

부운치 이정표

부운치 이정표는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힘든 맘에 걷어찼으려나 ㅎㅎ

부운치를 지나는 길

부운치를 지나선가 짧은 오르막이 하나 있는데, 경사가 꽤 가파르다. 대략 7Km 정도를 걸어온 뒤라, 비록 짧다 하여도 이 오르막을 오르려니 제법 힘들다.

남원시 운봉읍 전경

부운치를 지나면서부터 길 양쪽으로 조망이 잘 나오기 시작한다.

팔랑치와 바래봉

이제 팔랑치와 바래봉이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듯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바래봉 정상까지 아직 4Km를 더 가야 한다는 사실 ㅎㅎ 다행히 그 4Km를 지나는 길이 정말 아름답다. 눈에 담자마자 곧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팔랑치가는 길

부운치를 지나 팔랑치로 향하는 길

팔랑치 부근은 키 높은 나무는 거의 없고 낮은 잡목만 있는 길이라 조망이 좋고, 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길의 윤곽이 능선길을 걷는 재미를 한층 높여준다.

현호색
현호색

작년인가 해남에서 현호색의 그윽한 향기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여기서 그 향기를 다시 맡진 못했다. 어쨌거나 다시 봐도 그 녀석들의 자태는 우아함 그 자체다.

팔랑치로 넘어가는 길목
지나온 길목을 뒤 돌아보며

정말 인상적인 풍경이지 않나 싶다. 나뭇잎 무성한 계절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산덕임도 이정표

산덕임도로 내려갈 수 있는 곳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산행을 다 끝낸 후에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다음 바래봉 산행은 산덕임도 - 팔랑치 - 바래봉 순으로 조합해볼까 싶다. 전 구간 중에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팔랑치 풍경이다.

철쭉길

길 양편으로 빼곡한 관목이 철쭉 아닌가 싶다. 철쭉 피는 시기에 맞춰 다시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몰려드는 인파로 한적한 여유를 즐기긴 어렵겠지만.

팔랑치로 향하는 길

팔랑치

팔랑치 언덕

대관령 못지않은 풍경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수목한계선이라 키 큰 나무가 없는 건가 싶었는데, 그 의문은 아래 안내판을 보고 나서 풀렸다.

복원 안내판

예전에 목장지로 이용하여 이렇게 훼손되었고, 현재는 생태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한다. 비록 훼손된 상태이긴 하나 지금 이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팔랑치 언덕
팔랑치 언덕
팔랑치 언덕
팔랑치

쭈욱 걸어왔던 길이 인공구조물을 최대한 억제한 구간이었다면, 팔랑치 부근은 생태 복원을 위해 탐방로 양쪽으로 울타리를 쳐놓은 상태다. 이런 길이 바래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팔랑치 이정표

팔랑치 길을 따라 쭈욱 걸으면 바래봉 삼거리로 이어진다.

팔랑치에서 바래봉으로 향하는 길

바래봉

바래봉 삼거리

팔랑치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길을 걷다 보면 바래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큰 기대 없이 처음 왔던 바래봉 산행에서 이 삼거리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늘 이 지리산 능선길을 걷게 된 듯하다.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

세 번째 오르는 길이라 그 풍경이 제법 포근하다.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
바래봉 전망대의 풍경

구름 없는 쾌청한 하늘 덕에 지리산 능선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처음 별 기대 없이 여기 올랐을 때 느꼈던 그 감흥이 다시 생각난다.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는 으뜸이지 않나 싶다.

바래봉 정상석

바래봉 정상석 뒤편의 경치도 제법 멋지다. 저기서 인증샷 원 없이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이 코스를 계획할 때, 하산을 어느 방향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대중교통 연계가 편한 운봉읍으로 정했다. 몇 번 가봤더니 그곳 지리가 조금 익숙해졌기도 하고.

하산길은 익숙한 풍경이라 사진은 많이 남기지 않고, 늦지 않으려 부지런히 내려갔다. 부지런히 내려가던 중,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조팝나무

얼핏 기억하기로 이팝나무가 아닌가 싶어 찾아보니 이 녀석은 조팝나무다.
이팝나무나 조팝나무나 모두 양으로 승부를 보는 녀석들 아닌가 싶다. 꽃송이 개수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조팝나무
목장지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석양 내려앉을 때도 장관이지 않을까 싶다.

철쭉

산 아래의 철쭉은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모양이다. 진달래와 뒤섞여 있어서 처음엔 진달래인 줄 알았다.

막 개화를 시작한 철쭉

대략 산 아래쪽은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가 만개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산 위쪽은 그 보다 훨씬 늦을 테고.

운주사 삼거리

운주사 삼거리를 지나니 이제 계획했던 길이 거의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낚였네~~

쉽게 끝나면 재미없을까봐, 낚시질 공격이 들어왔다. ㅎㅎ

용산 버스정류장 시간표

차를 타고 지났을 땐 미처 보지 못했는데, 내려오다 보니 용산마을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게 아닌가. 그 안에 붙은 시간표를 들여다보니, 어라? 6시 35분 버스가 있다. 마침 여길 지날 때가 20분 무렵이어서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운봉우체국까지 안 내려가도 되고, 요즘 말로 개꿀 아닌가 ㅎㅎ

그러나, 35분이 지나 45분이 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
핸드폰에서 버스 실시간 운행정보가 뜨지 않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시간을 20여분 허비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운봉읍에서 시내방향으로 나가는 버스는 20~30분에 한 대꼴로 적지 않은 편이다.

운봉읍에 맛있는 지리산 흑돼지집이 있는데, 혼자 고기 구울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냥 철수했다. 흑돼지집은 부모님 모시고 다시 오기로~~

예상했던 스케줄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다행이다.
이번 산행을 마치면서, 머릿속에선 이미 다음 코스가 대충 그려졌다. 다음엔 산덕임도에서 팔랑치로 올라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