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고흥 거금도 적대봉 산행

epician 2024. 1. 23. 09:00

작년 11월 마지막 산행을 끝으로 긴 휴식기를 가졌다. 겨울이라 야외활동이 줄어들 시기이기도 한데, 요 근래는 일하느라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긴 작업도 마무리가 되어가니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 덕에 갑자기 꽂힌 거금도 적대봉을 다녀왔다.

계획은 그럴싸했다

요즘은 일하느라 늦게 자는 게 생활이 된 터라,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평소 3시쯤 자는데, 산행 전날은 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습관이라는 게 어찌나 무서운 놈인지, 기어이 3시까지 뒤척이다 잠들게 만든다.

알람을 맞춰둔 7시 무렵에 깨어, 비몽사몽 간 고민에 빠졌다. 너무 피곤한데 가야 하나..., 무거운 눈을 겨우 떠 일기예보를 보니 11시 무렵에 비가 조금 내린단다. 고민의 결론은 항상 비슷한데, 왜 이러나 모르겠다. ㅎㅎ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거금도를 향해 출발했다.

코스

적대봉을 길게 타는 분들은 U자형 순환코스로 오천리 서촌마을에서 출발해서 오천항(동촌마을)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많이 타는 것 같다. 나는 같은 코스를 반대로 돌 계획을 세우고 들머리를 동촌마을로 삼았다. 내려오는 길에서 바다 조망을 실컷 하려고.

14km 거리에 6시간 30분 정도 예상했고, 계획은 정말 그럴싸했다.

오천항 출발

오천항

일요일이라 한산하다.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차도 별로 없다. 정자 옆으로 화장실까지 있어서 산행 들머리나 날머리로 삼기에 훌륭한 장소이지 않나 싶다. 여기 말고도 근처에 주차할 곳이 제법 많다.

동촌마을 유래

간략하게나마 마을의 유래를 알려주는 글귀가 적혀 있어 정감 넘치고 고마웠다.

오천항 풍경

등산로 들머리까지는 마을 안길을 잠깐 걸어야 하는데, 눈길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다.

등산로 들머리 (전남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273-2)

그리 크지 않은 산인데, 정상으로 바로 가지 않고 봉우리를 몇 개 넘어야 하는 코스라 6km로 그 거리가 상당하다.

초반 등산로 상태

초반 등산로 상태는 동네 야산 같은 느낌이다. 적당히 가파르고, 인위적인 구조물은 거의 없는.
그러나, 동네 야산과 다른 점이라 뒤돌아 보이는 경치의 수준이 다르다.

오천리 전경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조망이 트이는데,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 정말 멋지다. 바닷가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어지간한 바다 풍경은 익숙한데, 그래도 여긴 정말 아름답다.

거금도 앞 바다

점점이 박힌 섬들도 아름답지만, 빼곡하게 깔린 양식시설도 인상적이다. 인근의 완도를 비롯하여 해조류 양식장이 많으니, 아마 여기도 해조류 양식장이지 싶다.

암릉 구간

등산로가 작은 암릉 구간을 지나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늘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단단히 받았다. 아침까지 비가 조금 내렸던 터라 바닥에 물기가 많다. 차가운 기온까지 더해지니 등산화 밑창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오늘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산할 예정인 반대편 능선
거금도 바다 풍경

여기도 해금강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의 암릉미가 인상적이다.

이정표

적대봉까지 가는 길에 이런 표지판이 지나치게 많다. 오르는 길이 조금 가파르다 보니, 지나온 거리에 비해 남은 거리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된다. "고작 이만큼 줄었어??" ㅋㅋ

초반 등산로 상태

동백나무 같은 상록수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산 아래쪽에는 상록수는 없고, 대부분 잎을 떨군 활엽수였다.

거금도 풍경

숲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렇게 바다 조망이 열려 올라가는 내내 경치구경하느라 즐겁다.

거금도 풍경
거금도 풍경

닿을 수 없는 저 풍경을 보고 한참 동안 상념에 잠겼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숲 안쪽으로 들어서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구간이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저 흰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가 길을 안내해 주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국립공원이었어?

국립공원 지정 안내 현수막

작년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편입된 모양이다. 인근의 팔영산은 국립공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거금도 적대봉은 국립공원인 줄 몰랐다. 주변 풍광을 보면 국립공원으로 보존 관리할 필요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다들 하지 않을까 싶다.

쇠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자주 들리더니, 주변을 보니 쇠딱따구리가 굉장히 많다. 겨울 산행 중에 간혹 보긴 했는데, 여긴 그 숫자가 여태껏 봤던 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산행 중에 주로 보이는 새는 쇠딱따구리와 딱새였고, 정상부에는 까마귀가 많았다.

가끔 나오는 완만한 능선길

정상까지는 대부분 오르막인데, 이렇게 완만한 구간도 가끔 등장하여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화석

무언가의 화석인 듯한데, 까막눈이라 그 가치를 알 수가 있나.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못 주어가게 좀 멀리 치워둘 걸 그랬나. ㅎㅎ

중반부

적대봉생태길 이정표

적대봉생태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부터 체감기온이 훅 떨어져서 고도가 제법 높아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태길이라길래 중간에 산간습지라도 있나 했는데,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 산줄기

나뭇잎이 다 떨어진 덕에 하산할 예정인 반대편 산줄기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빗방울

유독 여기만 조금 전까지 비가 내린 듯 빗방울이 많이 맺혀 있어 신기했다.

적대봉 전경

우측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적대봉 정상(봉화대)이고 그 옆으로 이어진 산맥 전체가 오늘 예정된 산행코스다.
이 근처에서 뒤를 돌아보면 올라왔던 능선과 내려갈 능선을 사이에 두고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적대봉의 양대 산줄기

양쪽 산줄기 가운데 자리 잡은 저수지가 오천제이다. 예전엔 오천제 근처로 내려가는 등산로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수원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그 길은 없어진 듯하다.

다시 가팔라지는 등산로

잠깐 편안한 능선길을 걷다 보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나온다.

가파른 등산로

봉우리 몇 개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지나온 산줄기

동촌마을에서 출발하여 넘어온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천리 방향 탐방로의 특징이 거의 전 구간 능선을 지나는 길이다. 재밌기는 한데, 계획을 세울 때, 체력소모가 상당함을 감안해야 할 듯싶다.

적대봉 정상부

대략 2시간 반 정도 걸었을 무렵에 적대봉 정상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째 길은 다시 내리막이다.

멀리 보이는 적대봉 정상

내리막 길에 살짝 당황했는데, 다행히 아주 많이 내려가진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이제 적대봉 정상까지는 쭉 오르막인데,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밧줄 잡고 가는 구간

어딜 가나 밧줄 잡는 구간은 반갑지 않다. 더욱이 밧줄이 빗물까지 머금은 상태라 잡고 오르기도 애매하다.

적대봉 샘

적대봉 정상 바로 아래에 샘이 있다. 수량이 많지 않아, 물 흐름이 약한 터라 마실 수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어느 계곡 하나가 여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그 의미는 남다르다.

적대봉 정상

적대봉 정상 이정표

오르고 오르다 보니 적대봉 정상까지 187m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려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아주 좋았다. 저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올라서니 적대봉 정상보다는 반대편 바다 조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섬 풍경

금강산이 바다 누워있는 느낌이랄까. 저 놀라운 암릉을 보고 있자니, 날이 흐린 게 이렇게 아쉬울 수 없다. 지도를 보니 대략 금당도 같은데,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금당도 (추정)
적대봉 정상

여기서부터 아주 가는 이슬비가 흩뿌리기 시작해서 느낌이 살짝 안 좋았는데.

적대봉 정상석과 봉화대

적대봉 정상까지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다. 내 키보다 큰 정상석이 제법 폼난다. 인증샷 남기기엔 최적이 아닌가 싶다.

봉화대 안내문

봉화를 올리는 기점이 돌산 방답진이라는 설명에 놀라고, 그 봉화가 한성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에 또 한 번 놀랐다.

두 번째 정상석

봉화대 안쪽에 아담한 두 번째 정상석이 있다. 여기서 열심히 인증샷을 찍고 나니, 날씨가 돌변하여 북쪽에서 짙은 운무가 밀려든다.

짙은 운무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인데, 이렇게 날씨가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기 전에 풍경사진이나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남긴 마지막 풍경사진이 아래의 사진이다.

운무에 휩쓸리기 전 마지막 사진 (오천리 방향)

운무에 가는 이슬비까지 섞여서 내리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내려갈 예정인 능선

내려갈 예정인 능선도 운무에 뒤덮이기 직전이다. 난감해하다가 일단은 계획대로 진행해 보기로 한다.

운무에 갖힌 탐방로

나름 묘한 운치는 있긴 한데, 타이밍이 참 좋지 못하다. 안 그래도 올라오는 길에 바닥이 미끄러워 긴장했는데, 이런 날씨에 암릉구간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몰려온다.

마당목재 도착

마당목재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너무 추워서 배낭에 넣어뒀던 바람막이까지 꺼내 입었다. 운무는 더 짙어지고 이슬비까지 섞여 내리니 체감온도가 순식간에 영하권으로 떨어진다.

출발 전에 본 일기예보 덕에 우산까지 챙겨 오긴 했는데, 비가 문제가 아니다. 낮은 기온 탓인지 등산화 밑창이 너무 미끄럽다.

마당목재 이정표

결국, 저 이정표에 적힌 하산시간을 보고, 최단시간에 내려갈 수 있는 파성재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당초엔 서촌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날씨 탓에 암릉구간으로 하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다를 조망하면서 하산하려던 멋진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이었으나, 맑은 날 다시 오면 될 일을 괜한 짓 말자는 현명한 결정에 이르렀다.

파성재로 하산

너무 추워서 꽁꽁 싸매고 하산을 시작했다. 파성재로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훌륭하다. 코코넛 매트가 깔린 구간이 많아서 미끄럽지도 않고, 경사도 완만하다.

파성재 방향 내리막

이래서 이 구간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반쯤 내려왔나 싶은 순간, 임도처럼 너른 길과 만난다.

임도처럼 넓어지는 탐방로

그리고, 이 지점에 약수터가 있는데.

적대봉 약수터

겨울 갈수기라 약수터 수량이 몇 방울씩 떨어지는 수준으로 적다. 500ml 한병 채우려면 한 30분 걸릴 느낌이니 갈수기엔 여기서 물 보충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라.

파성재 주차장 도착

파성재 주차장 부근

정자를 지나는 길 오른편으로 먼지떨이 기계가 있다. 여기서 몇 걸음 더 나가면 파성재 등산로 입구와 함께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부근에 도착하여 혹시나 싶어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 보니 잡힐 리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거금도 개인택시를 호출하여 출발지인 오천항으로 돌아갔다. 택시비는 2만원, 시골이라 콜택시비가 어마무시하다.

산행경로

오천항(동촌마을)을 출발하여 적대봉 정상을 찍고 마당목재를 거쳐, 파성재로 하산했다. 총 9km에 4시간 40분 소요.

뜻하지 않게 반대방향으로 하산하게 되면서 파성재 코스가 굉장히 오르기 쉽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하산에 40분 걸렸으니, 파성재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파성재 코스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든다. 풍경은 오천리 방향이 압도적이었거든.

이번에 실패한 서촌마을 코스는 날 풀리면 재도전하기로 ㅠ.ㅠ

재도전한 산행기는 아래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흥 거금도 적대봉 재도전 "서촌마을 → 동촌마을 14km"

지난 거금도 적대봉 산행에서 예상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 중간하산을 했었는데, 그 아쉬움을 풀고자 적대봉 두 번째 산행을 다녀왔다. 다행히 이번엔 맑은 날이 도와주어, 경치구경 실컷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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