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취향인지 모르겠으나, 오래된 절터나 성터에 늘 호기심이 발동한다. 인근에 오래전 폐사한 옥룡사라는 절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한번 가본다고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러다, 정말 한참 뒤에야 인근의 백계산 등산과 함께 엮어서 다녀왔다.
코스
옥룡사지 동백림 주차장(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423-2)에서 출발하여 옥룡사지, 백계산 정상을 거쳐 마을 안길을 따라 운암사 옆으로 하산하였다.
약 7.5km에 2시간 50분 소요. 3시간 30분 정도 예상했었는데, 산행 난이도가 낮아서 꽤 빨리 끝났다. 올라가는 길이나 내려오는 길 모두 대체로 아주 완만하다.
출발
옥룡사지 바로 아래에 있는 무료주차장에서 출발했다. 동백꽃 필 무렵만 아니라면 아주 한산하지 않을까 싶다.
주차장 건너편은 뭔가 짓느라고 꽤 큰 규모로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길을 따라 600~700m 정도 올라가면 옥룡사지와 인근의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형태로 보면 다락논 같은데, 휴경지를 매입하여 동백림으로 조성 중인 듯싶다.
좌측의 작은 건물은 간이화장실인데, 출발했던 주차장에도 화장실이 있으니 볼 일은 주차장의 깨끗한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오는 편이 좋겠다.
안내판의 개략적인 내용은 옥룡사가 통일신라시대인 864년 도선에 의해 중창(낡은 것을 고쳐 지음)되었다는 내용이다. 다만, 내용이 좀 부실하여 그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위키피디아 등에서 수집한 내용을 요약하면 옥룡사는 864년 중창되었고,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사하였다. 폐사한 터에는 비와 탑 등이 존재했으나, 1920년 경에 모두 도난당했다고 한다. 우리 문화재가 셀 수 없이 수탈당한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시대상 아닌가 싶다.
이곳이 천연기념물인 줄은 미처 몰랐다. 대체 얼마나 넓길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까. 꽃 피는 시기에 꼭 다시 한번 와봐야지 싶다.
초입 쪽(길 우측)은 나무 상태가 썩 좋아보지 않았다. 꽃망울이 없거나, 열매를 떨어트린 흔적이 남은 나무가 보이길래, 동백꽃이 벌써 피었다 진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잠깐 헷갈리긴 했는데, 분명 재래종은 아직 개화시기가 아니다.
잠깐 더 올라가면서 나무 사이를 유심히 보니 개화를 앞둔 꽃망울이 제법 많이 보인다. 아마 2월 중순부터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옥룡사지
사실 오늘은 등산보다는 옥룡사지를 보러 온 것이 더 크다. 등산은 그냥 곁다리 수준이고 핵심은 여기 옥룡사지.
초입의 개집 지붕 같은 게 뭔가 했는데, 올라가 보니 샘물이 흐르는 급수대였다.
실제 샘은 절터 안에 있었고, 거기서 모인 물이 바깥으로 흘러 여기 급수대까지 내려온다.
한 겨울이라 살얼음이 낀 연못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규모는 아주 작은 편.
위성사진에서 봤을 때보다는 더 넓게 느껴진다. 대략 큰 건물이 5~6동 이상은 설 수 있는 터 아닌가 싶어, 건너편에 보이는 안내판으로 곧장 향했다.
안내도에 따르면 발굴조사 때 확인한 건물터가 무려 17동이란다. 이 터에 17동이라... 옛날 절은 조금 작게 지었었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게 아까 급수대로 연결되는 실제 샘이다.
오션뷰는 아니나 ㅎㅎ 나름 잘 정돈된 경치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역시나 절터로 삼을 만한 이유가 있구나.
옥룡사지 윗부분에서 내려다보면 위와 같은 전경인데, 주변은 오래된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산행시작
잘 관리된 옥룡사지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초입은 약간 경사가 있는 편이다. 여기서 살짝 힘든 코스인가 싶은 의심이 들었으나, 경사도가 높은 구간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다고 얘기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비탈진 구간이 가끔 나오긴 하는데, 아주 짧아서 큰 데미지(?)는 없다. 그리고, 이정표나 등산로 표식은 아주 잘되어 있는 편이다.
완만하고 넓은 길이 아주 많았다. 숲 안쪽을 걷는 길이라 비록 조망은 좋지 못하나, 올라가는 등산로의 상태만큼은 정말 훌륭하다.
인근에 이처럼 새로 조성 중인 동백림 꽤 많았다. 처음엔 산불이 났었나 싶을 정도로 휑한 느낌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산불보다는 조림사업을 시행한 듯 보인다.
여기도 U자형을 꺾여 자라는 소나무가 있다. 예전에 금전산에서도 이런 나무를 봤었는데, 그 나무는 밑동이 한번 잘린 흔적이 있었다.
이 나무 역시 밑동이 한번 잘렸던 흔적이 있다. 그 생명력 참 대단하다.
백계산의 특징 중 하나가 지나치게 많은 산행 리본이다. 여태껏 적지 않은 산을 가봤는데, 여기처럼 리본 많이 달린 산도 드물지 싶다. 어느 초등학교 리본부터 시작해서 산악회, 광양시청 등 다양한 종류의 리본을 볼 수 있었다. 뭐 덕분에 길 잃을 염려는 없긴 하다.
백계산 정상부
저 송전탑이 보이면 정상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 아래 주차장에서 부터 쭈욱 올라오면 정상 바로 아래에서 이런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은 눈밝이샘을 지나서 정상으로 바로 가는 길이고, 직진은 금목재에서 넘어오는 능선길과 연결된다. 어느 쪽으로 가도 정상에 오를 수 있으나, 오늘은 일단 계획대로 직진하기로 한다.
금목재와 연결되는 삼거리를 지나면 백계산 정상을 만날 수 있다.
백계산 정상부 근처에서 건너편 백운산을 조망할 수 있는데, 나무에 가려 시야가 시원스럽진 않다.
어렵지 않게 올라온 길이라 큰 감흥은 없으나, 산책 삼아, 운동삼아 기분전환하기에 적당한 코스 아닌가 싶다.
백계산 정상은 이런 모습니다. 사방으로 시야 확 트이는 곳이 아니다 보니 아쉬운 감은 조금 있다.
나무 틈새로 겨우 백운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계획과 채비를 너무 가볍게 하고 온 산이라, 인근에 백운산 둘레길이 있다는 걸 저 안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다음엔 저쪽(빨간 길)으로 한번 내려와 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산길
하산길은 안내도상의 세우암자터 방향으로 잡았다.
내려가는 길 역시, 리본이 지나치게 많다. 언젠가부터 리본이 내가 혹은 우리가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는 수단으로 변질된 듯하다. 내려가는 길이라곤 하나밖에 없는데, 여기에 리본이 왜 필요할까.
암릉이라고 해봐야 큰 바위 몇 개가 전부지만, 그 마저도 보기 힘든 곳이 백계산 아닌가 싶다. 등산로 대부분이 흙을 밟고 지날 수 있는 편안한 산이다.
간혹 길 옆으로 이렇게 멋진 조림지가 보인다. 봄가을로 소풍 나오기 적당해 보일 정도로 포근한 풍경이다.
세우암자터
멀리 큰 동백나무가 보이길래 뭔가 했는데, 내려가보니 예전에 세우암이 있던 터란다.
대개 출가하면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니 부모고 형제고 다 등진다고 알고 있는데, 종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이렇게 속세와의 인연을 끊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부지였는데, 현재 남은 것이라곤 큰 돌을 다듬어 만들었던 맷돌 아래짝 밖에 없다.
등산로는 전반적으로 매우 완만하고 안전했는데, 여기 세우암을 지나는 길이 비탈지고 좁아서 약간 위험하다. 특히, 낙엽이 많이 깔려서 길 가장자리를 오판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골짜기를 돌아나가는 비좁은 길만 주의하면 특별히 어렵거나 위험한 구간은 없다.
백계산 곳곳에 이런 조림지가 있는데, 잘 가꾸기만 하면 괜찮은 휴양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세가 완만하고 풍경도 포근하여 인상적이었다.
건너편으로 사방댐과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보이길래 이제 마을 근처에 도착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방댐을 지나 여기서 직진을 하면 다시 등산로와 만나 옥룡사지 방향으로 갈 수 있으나, 오늘은 마을 구경도 하고 싶어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마을길
길 옆으로의 농경지 풍경은 익숙한데, 가장자리의 전기 울타리가 좀 생소했다.
아무래도 백운산과 섬진강을 건너면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권역이라 야생동물도 어마어마하지 싶다. 그래서 이렇게 전기 울타리와 집집마다 대형견 한두 마리씩은 키우나 보다.
포도나무인지, 다래나무인지 근처에 이런 나무가 꽤 많다. 그리고, 소를 키우는 농장도 꽤 많고.
한적한 마을길을 구경하며 내려오다 보니 멀리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저 풍경을 보자 이제 거의 다 내려왔구나 싶었다.
운암사
지나는 길에 운암사 모습도 사진에 담아본다. 이 절은 조형물에 꽂힌 누군가가 있는 듯싶다. 유난히 대형 조형물에 집착하는 듯하다. 마당의 저 석상도 참 크다 싶었는데, 절 안쪽에 있는 불상은 말도 못 하게 크다.
찾아보니 전각을 제외한 불상 높이만 30m란다. 전각까지 포함하면 40m로 15층 아파트 높이 정도된다. 내가 삐딱해서 그런가 도대체 부처는 어디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
운암사를 지나면 나타나는 동백나무 조림지인데, 이곳 역시도 지형은 다락논 모습이다. 여기도 휴경지를 매입하여 숲으로 가꾸고 있나 보다.
차도 드문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감정적으로 참 여유로워진다. 비록 겨울 날씨는 제법 쌀쌀했으나, 마음만큼은 이미 봄이다.
산행종료
마을길을 지나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복귀하다 보니 백운산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백운산에 둘레길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안내도를 보니 광양, 구례에 걸쳐 꽤 넓다. 뭐 딱히 땡기진 않지만.
옥룡사지를 구경하면서 곁다리로 끼워 넣은 백계산이었지만, 산세가 온화해서 꽤 좋은 느낌을 받았다. 가끔 산책 삼아, 운동삼아, 기분전환 삼아 와 볼 만한 곳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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