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월출산 경포대 → 대동제 산행 (feat. "신상" 하늘아래첫부처길)

epician 2023. 10. 11. 09:03

손꼽아 기다리던 월출산 하늘아래첫부처길이 개통했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9일 월출산 산행에 나섰다. 수년 전부터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얼마나 희망고문을 시켰는지;;; 이 길에 대한 소감은 끝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산행경로

산행경로 (약 16km)

대동제 구간 '하늘아래첫부처길'을 갈 생각에, 산행경로를 구상하다 보니 그간 못 가본 경포대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타쌍피의 근사한 종주경로가 만들어진다. 영암터미널에서 월남(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을 경유하는 시외버스가 오전 8시 25분에 있다. 이걸 타고 경포대로 점프~ 아쉽게도 월남정류장을 경유하는 버스는 오전, 오후 한 차례 밖에 없다.

전체 경로는 약 16km에 7시간 정도 소요됐다. 이 가운데 순수 산행거리 그러니까 경포대탐방지원센터부터 대동제까지는 11km 정도다.

월남정류장 하차

영암터미널 근처에 주차해 두고 8시 25분발 강진행 시외버스를 탔다. 오전엔 오직 이 버스만 월남정류장을 경유한다. 요금은 1,700원이고 소요시간은 10분 정도. 온라인 발권은 되지 않고, 터미널에서 현장발권만 가능하다.

월남정류장

따로 시외버스정류장이라고 알아챌만한 표지판은 없다. 카카오 지도에는 버스매표소(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45-6)라고 나오긴 하는데, 글쎄 저기서 승차권을 파는지는 확실치 않다.

첫 풍경

버스에서 내리면 마주하는 첫 풍경이다. 마을 뒷산이 월출산이라니, 대단히 복 받은 동네 아닌가 싶다. 마을 풍경이 정말 범상치 않다.

월남리 풍경

제발 전봇대 좀 뽑아줬으면 싶다. 내 주변에 당연히 있어야 했던 그 전봇대가 이렇게 거슬릴 수가 있다니.

차밭

또 놀라웠던 게 근처에 차밭이 무척 많다. 녹차 하면 보성, 제주, 하동 정도만 머릿속에 있다가 강진에서 차밭을 보니 무척 놀라웠다. 하긴 보성이나 강진이나...

근처를 지나는데 평소 못 맡아본 풀냄새가 난다. 이게 무슨 냄새일까 궁금해했는데, 돌아온 뒤에야 그게 녹차꽃 향기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어내지 못한 차나무 바깥쪽엔 흰꽃이 피어 있었다.

월남리 풍경
월남리 풍경
월남리 풍경

돌이켜보니 경포대 구간 등산하는 것보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리 풍경을 즐기는 것이 더 좋았다. 이 마을을 꼭 거닐어 보시라고 강추한다.

월남사지

이번 일정에서 딱 한 가지 어긋난 게 있다면, 바로 계획에 없던 월남사의 등장이다.

잠깐 당황했던 풍경

계획을 짜며 찾아봤던 자료엔 월남사지는 삼층석탑 딱 하나 서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런 그림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석탑 옆으로 법당이 우뚝 서 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뉴스를 찾아보니 월남사를 재건 중이고, 올해 6월에 대웅전을 복원했단다. 소실 또한 역사의 일부인데 모양도 모르는 건물을 굳이 다시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월남사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월남사지 안내판
월남사지

월남사지 왼편의 큰 나무 쪽으로 걸어가면 산행의 시작점인 경포대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저기로 나갈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되돌아 나와 큰길을 걸었는데,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코스모스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이라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코스모스 뒤편의 비각이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를 기리는 비석이라고 한다.

금릉 경포대

경포대 안내판

경포대는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비로소 둘러보게 되었다. 월남사지 구경을 마치고 조금 올라가면 국립공원 시설물이 반긴다.

월출산국립공원 표지판
경포대탐방지원센터

탐방지원센터에는 무료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휴일이라 주차장에 빈자리가 별로 없다. 탐방센터를 지나면 곧 등산로가 시작된다.

경포대 탐방로 들머리

탐방로에 들어서면 처음은 아주 완만한 경사의 걷기 편한 길이 1km 남짓 이어진다.

경포대 탐방로 초입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이긴 한데, 가을 갈수기에 접어든 탓인지 수량은 많질 않았다. 숲 안쪽의 길이라 당연히 주변 경치는 별로 볼 게 없다. 그저 걷기에 집중할 수 있는 길 ㅎㅎ

경포대삼거리 갈림길

경포대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은 바람재를 거쳐 구정봉, 천황봉 등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 길은 통천문을 거쳐 천황봉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경포대로 원점 회귀할 계획이라면 왼쪽 바람재 방향으로 가는 편이 길이 수월하여 훨씬 낫다. 난 천황봉을 찍고 구정봉을 거쳐 대동제로 내려갈 계획이라 오른쪽 길을 택했다. 이 길은 통천문을 앞두고 매섭게 가팔라진다.

매운맛을 볼 각오를 하고 오긴 했는데, 어째 길이 기대만큼 어렵지 않다. 그러다가, 산봉우리가 하나가 보일 때 즈음...

통천문 방향으로 오르던 중

방부목 데크로 꾸며진 너른 쉼터가 하나 보이는데, 이 쉼터 이후가 정말 매섭다. 매운맛이 몰아치기로 몰려와서 중산리에서 지리산 장터목 올라갈 때 고생했던 그 기억이 자연스레 소환된다.

살벌한 난이도의 오르막

그나마 돌계단 폭이 낮아서 다행인데, 이 구간은 올라가는 내내 한계치에 근접한 듯이 간당간당했다.

통천문

죽을 듯 힘든 구간을 벗어나니 통천문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통천문 부근에서 본 월출산 풍경

한 동안 잊고 지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니 곧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래 월출산은 언제 오든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통천문

천황봉

천황봉 정상석

휴일이라 천황봉에 사람이 참 많다. 인증샷 찍으려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혼잡하다. 복잡한 게 싫어서 사진 얼른 찍고, 바람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바람재, 구정봉 방향
바람재, 구정봉 풍경

가을 느낌을 물씬 풍겨줄 억새가 조금 부족해서 아쉽다. 다음 산행은 억새 보러 갈까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바람재

바람재를 향해 내려가던 중 드문드문 피어 있는 들꽃이 눈에 들어온다.

들꽃
들꽃
능선길

그림 같은 능선길도 지나고.

월출산 풍경

암릉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강진 풍경도 오래 담아본다.

월출산 줄기
월출산 천황봉에서 뻗는 산줄기

암릉이 만들어내는 이 말로 설명 못할 풍경은, 어떻게 이런 게 만들어졌을까 싶어 볼 때마다 놀랍다.

바람재에서 올려다본 구정봉

오늘도 날이 흐려서 구정봉 큰 바위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다. 그렇다 한들 이 풍경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베틀굴 부근에서 본 천황봉

베스트샷을 꼽자면 베틀굴로 가던 중에 남긴 이 사진이 아닐까 싶다. 억새와 어우러진 가을 월출산.

베틀굴

지난번에 왔을 때, 베틀굴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쳤던 터라 이번엔 꼭 보고 오리라고 다짐했다.

구정봉 옆으로 보이는 베틀굴 (사진 중앙부)

멀리 베틀굴이 보이길래 줌으로 당겨보았다.

베틀굴 망원촬영

멀리서 봐도 누군가 다듬어 놓은 듯 매끄럽다.

베틀굴 부근에서 본 천황봉

여기서 보는 천황봉의 풍경은 또 이렇게 압도적이다. 월출산의 풍경은 어느 각도에서 보나, 어느 지점에서 보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베틀굴 안내판
베틀굴 내부

 

베틀굴 전경

첫인상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다는 놀라움이었고, 두 번째 소감은 과연 여기서 그 큰 베틀을 돌릴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다. ㅎㅎ

구정봉

구정봉에서 본 영암 풍경
구정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영암 방향)

레고 블럭 같은 바위가 놀라움을 자아낸다. 구정봉은 고소공포가 있는 내게, 올라서기 전에는 높아서 무섭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게 하는데, 사방을 둘러보고 내려갈 때 즈음이면 "별것 아니네" 하는 안도감 또한 주는 묘한 장소다.

구정봉에서 바라 본 천황봉

하산시작

구정봉 구경을 마치고 이정표에 추가된 '대동제'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구정봉 부근 이정표
완만한 하산길

경포대에서 올라왔던 길에 비하면 굉장히 평이한 수준으로 내려가기 편했다.

하산길 풍경

마애여래좌상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탐방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여태껏 가본 적은 없었다. 대동제 구간이 열린 덕에 하산길에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망원촬영

내려가는 길에 멀리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갈림길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보고 가기로 결정했다. 삼층석탑을 보고 나면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마애여래좌상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다.

비탈진 길을 잠깐 내려가니 삼층석탑이 보인다.

삼층석탑

매우 기이하게 생긴 모습에 잠깐 놀랐다. 여느 탑과는 다르게, 기단으로 비율도 안 맞는 자연석을 쓴 데다가, 익숙한 탑의 조형미 또한 없다. 건너편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과 이어지는 배치로 보면 동일인이 만들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남는다.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또한 비율이 맞지 않아 조형미가 부족하다는 느낌인데, 어쩌면 비전문가가 일생의 염원을 담아 손수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그 염원 꼭 이뤄졌기를 바래본다.

마애여래좌상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두상, 손발 등 비율이 굉장히 맞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그로 인해 다소 만화적인 느낌이랄까.

용암사지

용암사지 절구

용암사는 그 터에 석탑만 남아 있는데,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언제 폐사된 것인지 알 수 없단다. 다른 것은 다 사라지고 없는데, 돌로 만든 것들만 그 유구한 세월을 견뎌냈다.

용암사지 안내판
용암사지

처음 눈에 보이는 절터는 그다지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내려가다 보니 이 근처가 온통 용암사 부지가 아니었나 싶다.

용암사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근처에서 봤던 삼층석탑과는 비율부터가 다르다. 이건 누가 봐도 전문가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용암사 삼층석탑

탑 구경으로 마치고 내려가다 보면 흔적만 남은 석축이 보이는 곳도 있고, 심지어 부도탑도 보인다. 먼 옛날의 용암사는 갖출 건 다 갖춘 그런 작지 않은 사찰 아닐까 싶은 짐작을 해본다.

용암사 부도탑

까치살무사

내려가는 길에 아직 덜 자란 까치살무사를 세 마리나 봤다. 그러다 문득, 이제 얘들도 사람들 통행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살던 곳에서 밀려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등산로에서 아주 가끔 봤던 까치살무사를 근 시간 내에 세 마리나 봤다는 놀라움과 내가 곧 침입자구나 싶은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까치살무사 #1

이 녀석은 먼저 움직여 신호를 준 덕분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다. 몸길이 40cm 남짓으로 아직 덜 자란 개체였다.

까치살무사 #2

용암사 삼층석탑 옆에서 봤던 녀석으로 일광욕을 하고 있다가 내 움직임에 놀라 먼저 피한다. 앞서 봤던 녀석과 비슷한 크기다.

까치살무사 #3

이 녀석도 크기는 비슷한데, 바위틈에서 얌전히 해바라기 중이다. 이 녀석은 신호를 주지 않아서 모르고 내려갈 뻔했는데, 지나치는 길에 곁눈으로 흘깃 뭔가 본 것 같아 돌아보니 까치살무사였다. 내 DNA에 각인된 생존본능이 스치듯 본 살무사에도 주의하게 만드나 보다. 선조들이 물려주신 고마운 유산이다. ㅎㅎ

하산길 풍경

대동제로 향하는 하산길은 대체로 편안하다. 경사도 완만하고 방부목 계단 같은 구조물도 꽤 많이 설치되어 있다.

시누대숲길

사찰이 있던 곳이라 시누대가 자라고 있다. 사찰이나 서원 근처엔 꼭 대나무 숲이 있다.

방부목 계단길
동백나무

남녘숲은 사철 푸르른 동백나무가 주인공 아닌가 싶다. 윤기 나는 잎이 아름다워 눈길을 주다 보니, 벌써 꽃망울을 맺었다.

동백나무 꽃망울

내년 늦겨울엔 동백꽃 많이 피는 곳으로 놀러 갈까 싶다.

계곡

내려오는 내내 말라 있던 계곡에, 물소리가 조금씩 들려와 하류에 가까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뭔가 반응하길래 들여다보니 버들치로 보이는 물고기가 있다. 물고기까지 있는 것을 보니 여긴 1년 내내 어느 정도 수량이 유지되는 하류인가 보다.

버들치
계곡을 건너는 다리

이정표를 보니 입구까지 500m 남았단다.

영암 상수원 수원지

내려가는 길에 저수지가 두 개 있는데, 첫 번째가 영암 상수원으로 쓰는 수원지이고, 더 아래에 있는 것이 대동제다.

아까 버들치를 봤던 터라 영암 상수원엔 뭐가 있을까 들여다보니 유해외래종 베스가 보인다. 헐...
사방에 베스 풀어놓고 다니는 놈들의 무식함에 욕이 터져 나온다. 낚시도 못하는 상수원에 베스를 뭣하러 풀어놓나?

임도처럼 너른 길

상수원을 지나면 임도처럼 너른 길이 나타난다. 산행을 마무리하며 여유롭게 내려가기에 더없이 좋다.

대동제 근처 조형물

국립공원에서 이런 오글거리는 문구는 또 처음 본다. 그 아이디어 나쁘지 않네!

대동제
개통식 현수막

지난 23일, 개통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아직 걸려 있다. 이 길의 개통소식을 전해 듣고 느낀 첫 생각은, 이 난해한 이름 누가 지었나 싶었다. 이 길이 최초엔 명사탐방길, 큰골길 등으로 알려졌었는데 왜 정작 개통할 때는 '하늘아래 첫 부처길'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일까?

브랜드는 모름지기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아마 어느 공무원의 작명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다음에 다른 곳에 이름 붙을 때는 둘레길, 올레길, 비렁길처럼 짧고 강하게 기억되는 이름을 지으시라고 강력히 추천해 드린다.

월출산 배경의 영암읍 회문리 풍경

월출산 근처는 어느 마을이던 이런 풍경일까 싶다. 황금벌과 어우러지니 더없이 인상적이다.

원래 계획은 산행을 마치고 농어촌버스를 타고 영암터미널로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버스 도착정보에 뜨는 버스가 1시간 후 도착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2km 정도 거리이니 그냥 걸어가기로~

영암터미널까지 도보로 이동하려면, 대동제 인근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기찬묏길이라는 둘레길을 통해서 터미널까지 갈 수 있고, 큰길(819 지방도)을 따라 동네 구경하면서 걸어도 된다. 긴 등산 이후라 발바닥이 피곤해서 큰길을 통해 가는 것을 선택했는데, 대동제에서 내려오면 큰길을 건너 300m 정도 갓길을 걸어야 인도가 나타난다. 반대편은 풀밭인지 인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구간들이 끊겼다 나타났다 한다.

소회

하늘아래첫부처길은 숲 안쪽으로 지나는 길이라, 월출산의 다른 코스에 비해 암릉미를 만끽하며 걷긴 어렵다. 그러나, 월출산 탐방로 가운데 가장 완만하고, 접근성도 좋아서 찾는 이들이 제법 많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근처의 기찬묏길(둘레길)과 연결하면 산성대 탐방로와 연계하기도 좋아 보인다.

하늘아래첫부처길이 이번 산행의 메인이었지만, 기대에 없던 경포대 입구인 월남리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마을 초입에서 받았던 첫 인상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다른 계절에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