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싱크 정수기 설치

epician 2015. 12. 31. 23:24

동생하고 마주 앉아 뭔 얘기 끝에 정수기나 하나 달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간 마시는 물은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겨울엔 끓여먹었습니다. 정수기를 여태 안들였던 이유는 놓을 만한 자리도 없거니와 대한민국 수도물의 퀄리티를 믿는 편이라. 단, 수도물을 바로 마시진 못하겠어요. 향긋한 염소맛 때문에.

하여튼, 이래저래 언더싱크 정수기를 직접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여러 구현(?) 방법을 검토 후, 인터넷으로 주문. 물론, 돈은 꼬임에 넘어간 동생이 냈습니다. 저는 설치기술 제공 ㅋㅋ

2015년의 마지막 날은 내 몸에 들러붙은 불필요한 체지방을 날려버리는 깔끔한 운동으로 마무리하고, 정수기 설치는 신정연휴때나 하려고 했습니다. 헌데, 간밤에 좋지 못한 꿈으로 잠을 설쳤더니 하루 종일 컨디션이 별로 안좋습니다. 나가지 말라는 뜻인갑다 싶어서 택배박스 꺼내서 정수기 설치에 돌입했습니다.

일단 필요한 공구는 전동드릴, 드릴용 14~15mm 홀쏘우, 10~12인치 스패너, 6인치 스패너, 파이프 렌치, 튜브 커터, 피팅 분리용 공구 등등. 파이프 렌치는 수전 편심 작업 때 쓴 것이라 정수기만 설치할 때는 필요 없습니다. 제 경우는 6mm 호스를 자를 때 쓰는 튜브 커터는 가지고 있던 와이어 커터로 대체했고, 나머지 공구는 모두 가지고 있어서 파우셋 설치를 위한 홀쏘우와 피팅 분리용 공구만 하나 샀습니다. 병따개처럼 생긴 피팅 분리용 공구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설치 난이도는 하(下)급. 작업공구만 준비된다면, 드라이버 돌릴 지능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1. 취수라인 작업

먼저 벽에 붙은 싱크대 수전부터 뜯어냅니다. 수전 중간에 취수용 어댑터를 설치하려면 수전을 분해해야 하는데, 손댄 김에 새 수전으로 교체하려고 편심까지 다 뽑아냈습니다. 수전이 오래되서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는 노환 증상을 오래 전부터 보여왔거든요.

교체한 새 수전에 정수기로 분배될 어댑터까지 장착한 모습이 아래 사진.

편심 교체할 땐, 물이 새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편심 나사산에 테프론 테이프를 10바퀴 이상 아낌 없이 감아주셔야 합니다.

싱크대 수전

싱크대 수전

어댑터 바로 아래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호스를 싱크대 안쪽으로 바로 빼내면 훨씬 깔끔할텐데....
싱크대 구조가 조금 괴이하여 그런 방식으로 호스를 넣으면 보일러 분배기를 돌아서 복잡하게 호스를 빼야겠더군요. 그래서, 이미 구멍이 뚫여 있는 싱크대 옆쪽으로 취수라인을 돌리는 걸 선택했습니다.

수도가 싱크대 아래에서 연결되는 경우, 취수라인 잡기가 훨씬 편할겁니다.

호스가 흰색이라 다행히 크게 거슬리진 않네요.

2. 파우셋 설치

파우셋

정수기 파우셋(조리수 밸브) 설치가 약간 고된 작업입니다. 스테인리스 상판을 뚫어야 하는데, 뭐 강화 콘크리트 벽 뚫는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긴 해요.

싱크대 안쪽에서 파우셋 설치 위치까지 시야 확보가 쉽지 않는데, 이럴 땐 바닥에 작은 거울을 깔면 편합니다.

3. 필터 후레싱 및 설치

정수기는 평범한 필터 4개짜리 구성이고, 케이스는 부피만 차지할 것 같아서 홀더로 대체했습니다. 피팅 작업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3초간 걱정했으나, 드라이버 돌릴 수 있는 지능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수준으로 간단합니다. 호스 깔끔하게 잘라서 꽂으면 끝~

필터에 설치된 L피팅은 세트로 된 제품을 사서 그런지 아예 만들어서 보내주셨더라고요. 덕분에 약간의 귀찮음이 줄었습니다.

필터 4개는 설치 전에 꼭 후레싱(초기 세척)을 하고 설치해야 합니다.

1번 침전 필터, 2번 선카본 필터, 4번 후카본 필터는 약 2리터의 물을 흘려보내면 됩니다. 필터끼리 연결된 상태가 아니라 취수라인에 바로 연결해서 개별적으로 작업. 3번 중공사막 필터는 이 작업이 다소 귀찮은데, 후레싱 작업이 끝난 1, 2번 필터 두 개를 연결하고 거기에서 나온 걸러진 물을 가지고 후레싱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1~3번까지 연결된 상태로 4~5분 정도 물을 흘려보내면 됩니다.

침전 및 카본 필터는 초기 분진 제거를 위해, 중공사막 필터는 보존액 세척을 위해 반드시 후레싱 작업을 해줘야 합니다. 후레싱 작업 안하면 카본 필터에서 나온 분진이 다음 필터로 넘어가버려서 필터 성능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됩니다.

4. 물맛

설치를 끝내고 시음을 해보니 사먹는 생수하고 별 차이 없습니다. 제가 물고기를 키우기 때문에 평소 염소 냄새에 후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정수기를 거쳐서 나온 물에선 염소 냄새가 전혀 나질 않습니다.

5차 TCR 필터까지 설치하면 물맛이 좋다길래 5차 필터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 정도 물맛이면 5차 필터 없어도 상관없겠어요.

5. 필터 교체

필터 제조사 몇 군데를 찾아보니 보통 필터 사용기간을 20L/일 수준에서 계산하더군요. 그렇게 나온게 1차 침전 필터는 3~6개월, 2차 선카본 필터는 6개월, 3차 중공사막 필터는 12~18개월, 4차 후카본 필터는 12개월 정도입니다.

저희 집 같은 경우,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하루 10L도 못 쓸거 같습니다. 수도물 품질도 좋은 편이라 필터 교체 사이클은 제조사에서 권장한 최대치로 잡기로 했습니다. 수도관에서 녹물이 나오거나 지하수처럼 정수되지 않은 물을 끌어쓰는 경우엔 제조사 권장 사용기간의 최소치로 잡으시면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