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후기

(기상청에 낚인) 남원 - 여수 125KM 라이딩

epician 2017. 6. 12. 18:14

2015년 계획, 2017년 실행

재작년에 '남원 → 여수' 장거리 라이딩 코스 두 가지를 만들었다가 다음에 가기로 미루었는데, 올해에서야 다녀오게 됐습니다. 승주를 거쳐서 접치재를 넘는 코스와 구례를 거쳐서 송치재를 넘는 코스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 접치재는 예전에 넘어본 적이 있어서 이번엔 송치재를 넘는 코스로 결정했습니다.

남원에서 여수로 내려오는 라이딩 경로경로

라이딩 경로는 남원역에서 출발하여 곡성읍, 구례구역, 송치재, 순천시, 여수시로 내려오는 125KM.

일기예보 상, 하루 종일, 거의 전 구간 북서풍 1~3m/s 이었습니다. 오후 6시 이후에 남동풍(맞바람)으로 바람 방향이 바뀐다고 하더군요. 북서풍이면 거의 하루 종일 뒷바람일테니 정말 딱이구나 싶었습니다. But, ㅎㅎㅎ 결과적으론 정말 찍어도 이렇게 틀리기 어렵겠다 싶은 일기예보였네요. 망할..

비오는 아침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어설프게 30분 자고 잠이 깨는 바람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습니다.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수 있을지 확신을 못하는 상황. 못일어나면 못가는거지요. ㅎㅎ

7시에 겨우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 이슬비가 조금 뿌렸던 모양입니다.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하니 다행히 오전에 잠깐 내리다 그칠 모양이네요.

씻고 밥먹고 챙기고 보니 일어났을 때보다 비가 더 내리네요. 아 정말 난감함...
이판사판, 모르겠다 싶어서 자켓 꺼내입고 비 맞고 그냥 가기로. 어차피 오전엔 기차역까지 15분 정도만 가면 되니까요.

열차승차권승차권

아침부터 상쾌하게 비 맞고 잔차질을 다 해보고 ㅎㅎ

구례 근처의 잔뜩 찌푸린 하늘구례 근처의 잔뜩 찌푸린 하늘

순천, 구례를 지나는 동안에도 하늘은 곧 비가 쏟아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찌푸려 있네요. 여기도 아침에 비가 내렸었나 봅니다.

곡성역 부근의 조금 개인 하늘곡성역 부근

곡성 부근에 진입해서야 하늘이 개이기 시작합니다.

남원역 도착

남원역남원역

남원역에 도착하니 화창하다 못해 뜨거운 햇볕이 쏟아집니다. 남원역은 처음 와보는데, 역사가 참 멋지네요.

잔디가 깔린 넓은 옛 절터만복사지

남원에 온 김에 도심 구경 좀 하려고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가는 길에 '만복사지'라는 오래된 절터가 있네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가 정유재란때 불타고 그 터만 남았다고 합니다.

남원시내남원시내

남원시내남원시내

여느 소도시와 다르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네요. 일요일 오전이라 한산해서 구경하기 참 좋았습니다.

곡성까지 14KM 남았다는 이정표이정표

남원시내로 들어갈 때부터 바람 방향이 계속 바뀌는 탓에 뭔가 좀 이상하다고 눈치를 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745 지방도를 타고 곡성으로 넘어가는 길에 일기예보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맞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초반이고 맞바람도 2~3m/s 수준이라 아직은 견딜만 합니다.

곡성군 진입

섬진강섬진강

섬진강을 건너 곡성군에 진입했습니다. 계속 맞바람을 맞고 왔더니 벌써 피곤하기 시작하네요.

곡성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곡성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곡성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도 오랜만에 다시 오네요. 곡성부터는 자주 다녔던 길이라 풍경이 익숙해서 사진도 별로 안남겼습니다.

곡성읍내곡성읍내

20KM 정도 달린 지점이라 나름 멀쩡해야 하지만, 뜨거운 햇볕에 내려쪼이고 맞바람까지 실컷 맞았더니 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커피 한잔하려고 곡성읍내로 잠깐 빠졌습니다.

이후 코스는 잠깐 섬진강자전거길을 탔다가 17번 국도로 갈아타고 구례구역을 거쳐서 괴목(순천시 황전면 괴목리) 도착.

섬진강자전거길은 여전히 농로스러웠고, 처음 달려본 곡성 -> 구례구역간의 17번 국도는 의외로 소소한 경사가 많네요. 다음부턴 반대편 지방도(섬진강로)만 타야겠습니다.

괴목

거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거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도로가에 세워진 깃발이 바람에 거세게 펄럭이고 있습니다. 아, 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제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게 비극. ㅠ.ㅠ

여기서부터 은근한 오르막길인데 굉장히 깁니다. 제가 다녀본 오르막길 중에서도 역대급이네요. 경사도는 별거 아닌데 길이가 10KM가 넘어요. 황전 IC 부근부터 점심을 먹었던 괴목시장까지 6KM 정도 되고, 다시 괴목시장부터 송치터널까지 5KM 정도. 경사도는 정말 별거 아닌데, 너무 길어서 지루했던 길.

괴목 구나무장괴목 구나무장

순천 황전면 괴목리의 아주 작은 시골 오일장입니다. 장날이 아니라 무척 한산한 풍경이네요.

띄여쓰기가 안된 간판 탓에 '괴목구 나무장'으로 읽어야 하는지 '괴목 구나무장'으로 읽어야 하는데 헷갈렸는데,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괴목 구나무장'이 맞네요. '아홉그루의 나무가 있는 시장' 이라는 뜻이랍니다.

괴목구나무장괴목구나무장

더위에 너무 지친 탓에 시원한 게 먹고 싶었는데, 지도에 나오는 중국집을 찾다 실패하고 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이열치열 ㅠ.ㅠ 나오는 길에 보니 지도에선 시장 안쪽에 있는 걸로 나오던 중국집이 큰길가에 있더군요. 헐.. 괴목 구경하느라고 한바퀴 돌았던 길인데도 못보고 지나쳤습니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고 배가 아파서 화장실도 한번 들락거리고, 괴목에서 예상시간보다 30분이나 지체했습니다.

송치재 오르막길 (구례 → 순천 방향)

지루했던 송치재 오르막길지루했던 송치재 오르막길

오르막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뭐한. 애매한 경사도의 긴 오르막길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갓길이 넓어서 올라가기 불편함은 없었는데, 너무 길어서 지루했습니다. 차라리 굵고 짧게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

송치터널까지 500m 남았다는 표지판송치터널까지 500m 남았다는 표지판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오르막이 끝나는가 봅니다. 터널 전에 깔딱고개가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네요.

송치터널송치터널

간만에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보네요. 절대 적응할 수가 없는 공포스런, 짜증날 정도로 입체적인 터널 배경음 ㅠ.ㅠ 어지간 하면 터널은 피해 다녀야 합니다.

순천 동천

순천 동천순천 동천

여기가 대략 78KM 지점, 여전히 맞바람은 3~6m/s 급으로 쉴새 없이 불어대고 있습니다. 송치재 넘으면서부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순천 동천을 지날 무렵엔 빗방울도 조금 떨어지네요. 비올까봐 정말 난감했는데, 다행히 흐리고만 말았습니다.

여수시 율촌면 상봉리

율촌면 상봉리율촌면 상봉리

순천 지나서 지방도를 타고 율촌면 상봉리 도착. 여기가 대략 97KM 지점이었는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합니다. 오전에 행동식으로 챙겨뒀던 에너지바를 까먹고 나서도 배가 고픕니다. 이러다가 한방에 훅 가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기가 지네요.

소금꽃이 핀 바지소금꽃이 핀 바지

땀을 얼마나 흘려댔는지 타이즈에 소금꽃이 장난 아니게 피었습니다. 누가 보면 옷에 곰팡이 핀걸로 오해하겠죠? ㅎㅎㅎㅎ

8시간 예상했는데, 총 9시간 정도 걸렸네요. 하루 종일 맞바람에 시달린 탓에 중도포기 안하고 내려온 게 다행이지 싶습니다.

기상청 일기예보를 믿었다가 다시 한번 낭패를 겪은 장거리 라이딩이었네요. 역대급 운동을 시켜준 기상청 예보과 직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