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던 걸, 설 연휴에 실행에 옮겼다. 맘 먹은 건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이 성격. ㅎㅎ
조계산은 5년 전에 선암사에서 출발해서 장군봉, 접치재, 연산봉을 거쳐서 송광사로 내려온 적이 있다. 다시 한번 가볼까하고 마음을 품고나니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1월 초에 가려고 했었는데, 여기저기 바쁜 일이 많아서 계속 미뤄지다 설 연휴에서야 갔다오게 됐다.
경로
송광사에서 출발해서 운구재, 천자암, 보리밥집, 큰 굴목재를 거쳐서 선암사로 내려오는 약 13KM의 코스이고, 총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요 며칠 무리한 운동으로 몸상태가 별로 안좋은터라 6시간 이상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단 빨리 끝났다.
5년전 코스와는 겹치는 구간이 없게 만든 코스인데, 하산하는 돌길(천년불심길)이 조금 고달팠다.
송광사
송광사 매표소
멀리 매표소가 보이길래, 아차 싶어서 배낭에 넣어버린 지갑을 도로 꺼냈는데...
무료입장 안내문
설 연휴라고 무료입장인가 보다. 어차피 등산이 목적인터라 안내야 정상인 것인데, 여튼 안받으니 고맙긴 하다.
송광사
성보박물관 근처는 뭔가 새로 짓고 있던데, 절 자체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송광사
조선시대에서 멈춰버린 듯한 고즈넉한 이곳 풍경 또한 그대로다. 바뀐 거라곤 더 나이든 나 밖에 없는건가.
대나무 숲길
한참을 올려다 봐야 하는 이 키 높은 대나무 숲도 그대로이고.
이 길을 지나 송광사 뒷편 갈림길에서 천자암 방향으로 향했다. 반대쪽 길은 지난 번에 내려왔던 길이고, 이번 길은 초행이다.
운구재로 향하는 등산로
초반 경사는 완만하고 노면 상태도 무척 좋다. 도립공원 답게 등산로 관리가 무척 잘되어 있다. 천자암까지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이라곤 딱 한명. 정말 모든게 완벽했다.
시든 단풍잎
지난 가을을 붉게 수놓았을 단풍잎이 세찬 겨울까지 나고 그대로 메달려 있다. 비록 푸른 기운은 없어도 겨울산의 소소한 눈요기가 되어준다.
운구재
운구재에 가까워지니 길의 경사가 가파르게 치솟는다.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보며
경사가 치솟기 시작하면서부터 길이 지그재그로 돌아나가기 시작한다.
운구재 바로 아래
옛날엔 여기에 산적이든 도적이든, 나쁜 놈들 한 무리는 꼭 살았을거 같다. 성벽처럼 느껴지는 가파른 언덕이 천혜의 요새다. 정말 저 위에 자리만 딱 잡으면 일당백은 거뜬하지 않았을까.
운구재 길목
얼마나 많은 발길이 지났을까. 산허리가 깍여나갔을 정도다.
운구재 이정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운구재 정상에 오르니 천자암까지 2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서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타고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올라왔던 길에 비하면 정말 산책하는 기분이다.
사실, 산 정상부의 이런 길을 좋아하는터라 접치재쪽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고민했는데, 운구재에서 천자암까지 가는 길도 그곳 못지 않게 좋았다.
운구재 → 천자암 구간 등산로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이 구간이 아닌가 싶다. 걷는 내내 정말 좋았다. 혹여라도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접치재와 이곳 운구재 구간은 코스에 꼭 넣으리~
운구재 → 천자암 구간 등산로
두텁게 깔린 낙엽 탓에 길이 잘 안보이는 구간이 조금 있긴 했으나, 여러 가지를 종합했을 땐, 정말 백점짜리 길이 아닌가 싶다.
신나서 걷다보니 멀리 지붕이 하나 보인다. 천자암에 다 왔나보다.
천자암 종각 지붕
멀리 보이는 저게 천자암 종각의 지붕이더라. 천자암 근처에 도착하니 절집을 지키는 개가 짖어대기 시작한다. 하.. 이 고요한 배경을 메우는 개 짖는 소리, 정말 난감하다. 쌍향수를 보러 왔는데, 저 놈이 짖는다고 그냥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천자암 쌍향수
이 고목을 보러 그 길을 걸어왔는데, 막상 얻은 즐거움은 쌍향수 보다는 운구재 능선길이 더 좋았다.
이걸 보는 내내 절집 개는 계속 짖어대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짖지마라고 입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그때서야 조용해진다. 평소에 스님들이 그 모션으로 훈련을 시켰나보다. 미리 알았으면 들어가는 길목부터 그렇게 신호를 줬을걸.
천자암에서 굴목재를 향해 나가는 길은 음지라서 질퍽한 구간이 많았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중이라 미끄러웠다. 심지어 아직 눈이 남아 있는 구간도 있다.
오래 전 내린 눈이 남아있는 등산로
눈길보다는 얼었던 땅이 녹는 중인 구간이 더 미끄럽더라. 허리가 안좋은 탓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정말 초긴장 했다. ㅎㅎ
천년불심길
천년불심길
천자암이 있는 천자암봉(산)을 빠져나오면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천년불심길과 만난다. 여긴 정말 돌밭이라 걷고 싶지 않다. ㅠ.ㅠ 이런 길 올라가는건 하루 종일이라도 하겠는데, 스틱 없이 내려가려니 정말 고되다.
천년불심길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저 긴 길을 돌로 다 맞추었다는게 대단하긴 하다.
하트모양의 구멍이 있는 나무
내려오던 길에 하트모양 구멍이 뚫린 나무가 있길래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구멍 안에 청설모가 숨어 있네 ㅎㅎ 어쩐지 숲 속에서 새매 한마리가 느리게 날고 있더라니. 저 녀석은 매를 보고 놀라서 숨었나 보다.
청설모
오른쪽은 청설모가 확실한데, 왼쪽은 청설모인지 낙엽인지 확실치가 않다. 두 마리 같기도 하고 아니거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 청설모는 겨울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겨울 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엔 잘 보이지 않는다.
산 중턱의 작은 계곡
계곡 너머로 흙길이 보이니 어찌 그리 반갑던지. 이 작은 계곡을 건너고 나니 예상대로 길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한다.
조계산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는 안내판
선암사
선암사 뒷편에 조성된 야생화 공원
선암사 뒷편에 '야생화 미로원'이라는 꽃밭이 조성되어 있던데, 겨울이라 꽃은 다 지고 휑한 들판만 남았다. 들꽃으로 채워지는 봄에 다시 한번 와볼까 싶은 싶은 생각도 든다.
직박구리
후두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길래 뭔가 싶었다. 커다란 고목에 달린 나무 열매를 직박구리떼가 쪼아먹고 있다. 이 겨울을 저런 열매 덕에 나는가 보다.
공원 출입구?
이게 공원 출입구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조형물인가 싶기도 했다. 주변이 워낙 휑한 상태라 이것의 정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어쨌든 사진 찍을 만한 포인트는 되는 듯 싶다.
선암사 입구 화장실 건물
선암사 입구의 화장실 건물이 보이고, 길고 길었던 하산길이 그렇게 끝났다.
5년 전 코스와 겹치는 곳이 없어서 새로움은 가득했으나 천년불심길을 내려오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혹시,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차라리 접치재나 장군봉을 거쳐서 내려오겠다고 다짐했다. 천년불심길은 다시는 안가는 걸로 ㅎㅎ 돌밭길 너무 싫어요 ㅠ.ㅠ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북한산 (우이동 → 백운대 → 원효봉) 등산 (0) | 2018.04.05 |
---|---|
여수 고락산 + 호암산 등산 (0) | 2018.04.01 |
여수 구봉산 - 장군산 등산 (0) | 2018.02.12 |
여수 고락산 둘레길 (0) | 2017.10.15 |
여수 호랑산 둘레길 (0) | 201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