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예정되어 있던 프로젝트가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는 바람에 급 한가해졌다. ㅎㅎ 덕분에 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해본다. 블로그 포스팅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사이에도 드문드문 산행을 다니긴 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정리해서 글로 남기질 못했다.
급작스레 한가해진 바람에 어딜 갔다올까, 누구랑 갈까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행선지가 몇 번 바뀐 끝에 해남 미황사의 달마고도 트레킹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조용히 혼자서...
미황사는 작년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어머니 모시고 한번 놀러왔었는데, 그때 봤던 산세가 너무 인상 깊어서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오리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렇게, 근 1년 만에 결국 다시 왔다. 미황사 뒤편으로 펼쳐진 그 풍경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바로 아래가 작년에 남긴 미황사의 그 사진.
출발
전날, 밤 늦게 빵하고 우유를 먹고 잤더니 그게 소화불량을 일으켜 아침에 머리도 띵하고 속도 부글거리고 갈까 말까 비몽사몽간에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오늘 미루면 언제 다시 갈지 알 수 없다. 오늘 무조건 간다.
완전 시골이라 대중교통편이 너무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아침잠 줄이고, 고카페인 음료 하나 마시고 직접 운전해서 왔다. 대중교통편이 좋은 곳은 오며 가며, 기차 안, 버스 안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기 좋은데, 이런 시골은 그게 어렵다.
집에서 대략 2시간 정도 거리인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밥도 먹고 여차저차하여 2시간 40여분 만에 도착했다. 대략 정오 무렵.
달마고도 트레킹 코스
총연장 17.74KM이고, 안내도 상에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으나, 초심자는 7시간에서 7시간 30분 정도로 넉넉히 잡을 것을 추천한다. 걸어보니 앞만 보고 걷지 않는 이상 6시간 안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
트레킹 시작
미황사 일주문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코로나 방역용 출입자 명부를 작성하고 일주문을 통과했다.
날씨는 최고기온이 20℃까지 오른 완연한 봄 날씨였다. 겨울꽃 동백이 막바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빨간 동백꽃과 어우러져 짧게 피고 져서 더 아쉬운 벚꽃도 제법 많이 피었다.
벚꽃 사이로 왱왱 거리는 꿀벌 소리를 듣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황사 구경을 하고 갈까 잠깐 고민했으나, 트레킹 마치고 들르기로 하고 일단 패스.
미황사 천왕문 좌측으로 시작되는 달마고도 트레킹 구간에 접어드니 사방 가득한 새소리에 무척 놀랐다. 이 녀석들도 지난 겨울을 어렵게 버티고 맞이하는 봄이 이렇게 좋나보다. 새소리 하나 없는 적막한 산도 많은데, 여긴 대충 들어도 십여종은 넘는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걷는 내내 새소리가 귓가를 떠나질 않는다.
봄의 서막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은 것들이 봄기운에 깨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달마고도 1구간
전구간 이렇게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를 알 수 있는 이정표와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이정표가 자세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달마고도 트레킹 코스 대부분이 이렇게 길 상태가 무척 좋다. 두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폭의 너른 길이 많았다.
달마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운 산인데, 미황사가 있는 서쪽 편은 임도도 드문드문 섞여 있는, 이렇게 넓고 편한 길이 대부분이다. 완도가 보이는 달마산의 동쪽편은 한 명 걸으면 꽉 찰 정도의 좁은 길이 많았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임도 또한 그 아름다운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 산악자전거를 즐겨 타던 때가 생각난다. 혹여라도 나중에 산악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면 여기 임도에 꼭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길 옆으로 보라색 꽃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과연 봄이구나! 돌아와서 검색 해보니 제비꽃인가 보다.
달마고도를 걷다보면 산 밖으로의 풍경도 좋지만, 안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달마산의 풍경 또한 감동이다. 가끔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의 절경이다.
달마고도 2, 3구간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달마산의 북쪽 끝을 돌아서게 되면 2구간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동쪽에 위치한 완도와 그 사이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바다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코스는 어디든 다 좋았는데, 여기 또한 예외가 아니다.
2구간에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른 빈터가 보여 뭔가 싶었는데, 관음암터란다. 지금은 절이 있던 자리라곤 상상되지 않을 정도인걸 보면 폐사한 지 오래된 모양이다.
관음암터 앞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여기도 봄소식이 가득하다.
산개구리 올챙이로 보이는데, 이 녀석들도 제법 많았고, 아직 부화하지 않은 도롱뇽 알도 보인다. 그리고, 수면에는 깔따구가 우화 한 탈피각도 제법 보인다.
완도가 저렇게 생겼구나. 수십 년 전에 제주도 가는 배를 타느라고 어느 항구에 잠깐 들렀던 거 빼곤 제대로 구경해본 적이 없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을 걷다 보면 낙엽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들쥐이겠거니 하고 시선을 돌려보니 작은 뱀이 한 마리 보인다. 잠깐 놀래서 서로 대치하다가 카메라를 꺼내려는 순간 이 녀석이 먼저 낙엽 속으로 숨어든다.
작년쯤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어린 쇠살무사다. 눈대중으로 30cm 남짓. 큰 녀석들은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 보면, 긴 동면을 버틸 체력이 안 되는 어린 뱀들이 먼저 밖으로 나오나 보다. 하여간 이 녀석을 보고 놀라고 나니 자연스레 눈길이 바닥으로 자주 간다 ㅋㅋㅋ
2, 3구간은 이렇게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좁은 길이 많다. 그렇다고 숨이 깔딱거릴 정도의 고개는 아니고.
곳곳에 이런 비경이 있으니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도 맞으며,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도 즐기며 그렇게 걸었다.
이제부터 2, 3구간에서 보았던 절경들 사진 한 묶음.
추려낸 사진에는 많이 담지 않았지만, 달마산은 곳곳에 너덜지대가 많았다. 그 크기 또한 범상치 않아서 너덜 구경하는 재미 또한 좋았다.
양지바른 달마산 봉우리 곳곳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조만간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길을 중장비 한 대 동원하지 않고, 사람 손으로만 다듬었다고 하니 그 노력이 상상되지 않을 정도다. 이 길을 걸으며 이 절경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신 그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대충 훑어봐도 저 봉우리 암석들에서 열댓 가지 형상은 비춰 보인다. 아직 가본 적 없지만, 금강산의 비경과 견줄만하려나?
이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려고 지체하다 보니 아무래도 안내도에 나온 6시간 30분 안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특히나, 2~3구간은 비탈길이 많아서 걷는 속도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문드문 들기 시작할 무렵, 나무 그늘 사이에서 피어난 예쁜 꽃을 봤다. 꽤 먼 거리였는데, 이 녀석의 그윽한 꽃향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알못이라 돌아와서 열심히 검색해보니 현호색이라는 꽃인가 보다.
달마고도를 걷다 보면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앉아서 쉴만한 벤치가 없다는 거다. 인위적인 뭔가가 싫다면 간벌목 다듬어서 스툴처럼 엉덩이 걸치고 쉴 수 있을 만한 뭔가가 드문드문 있었으면 싶었다.
2~3구간 중간쯤에서 그늘을 찾아서 간단하게 점심 요기하면서 쉬었는데, 머리 위를 보니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이었구나.
점심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가 무릉도원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사방이 새소리와 동백꽃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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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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