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봄소식 가득한 해남 달마고도 트레킹 2/2

epician 2021. 3. 2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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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 봄소식 가득한 해남 달마고도 트레킹 1/2

 

봄소식 가득한 해남 달마고도 트레킹 1/2

준비 예정되어 있던 프로젝트가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는 바람에 급 한가해졌다. ㅎㅎ 덕분에 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해본다. 블로그 포스팅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사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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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 3구간 막바지 (Feat. 구렁이)

무릉도원 어쩌고 하면서 잘 쉬었다가 다시 걷는데, 1미터도 안 되는 코 앞에서 이 녀석과 마주쳤다. 얼마나 놀랬는지,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녀석이 코 앞에 다가갈 때까지 신호를 안 줬거나, 내가 못 들었거나... ㅠ.ㅠ

굴 속으로 숨는 구렁이

이 녀석도 아주 가느라단 어린 개체였는데, 산에서 구렁이는 꽤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담에는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신호 좀 다오 ㅎㅎ

구렁이에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계속 걸었다.

바다 건너편 완도
손으로 돌을 쌓아 만든 비탈길

원래 길이 없던 곳 같은데, 이렇게 돌을 쌓아서 예쁜 비탈길을 만들어 놨다. 하나하나 포개진 바위를 보니 그분들 고생은 말해 뭣하겠는가 싶을 정도다.

진달래가 가득한 달마산 능선
꽃봉우리

이 나무도 성격이 급해서 꽃 먼저 피우는 부류인가 보다.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봉우리가 한가득이다.

달마산 절경

이런 절경들을 놓칠 새라 사진 찍느라 지체하다 보니 예상했던 6시간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는 결론이 아주 쉽게 나온다. 경과한 시간과 남은 거리를 대충 계산해보니 7시간 이상 걸리겠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면 다행이지 싶다.

하여, 원래 계획했던 도솔암 왕복은 취소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도솔암도 그렇게 절경이라고 하던데, 여긴 다음에 등산코스와 묶어서 다시 한번 와야겠다.

달마고도 4구간

달마산의 남쪽 끝 자락이 지도상엔 연포산이라고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남쪽 끝자락 연포산 능선을 돌아서면 달마고도 4구간이 시작되는데, 도저히 6시간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거 같던 예상시간의 비밀이 여기서 풀렸다.

그간 운동을 너무 오래 쉬어서 내가 평균 이하가 됐구나 싶었는데 ㅎㅎ 2~3구간에 비하면 4구간이 길이 편하다. 2~3구간에서 떨어졌던 보행속도를 4구간에서 많이 만회할 수 있다.

달마고도 4구간 중

키 작은 나무 사이로 새로 만들어 놓은 평탄한 길을 지나면 너른 임도로 이어진다. 높낮이 차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고, 전체 구간을 통틀어서 가장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달마고도 4구간에서 바라본 풍경

여기서 보는 풍경도 정말 예사롭지 않다. 주름처럼 접힌 산줄기 너머로 시름 하나 없을 거 같은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산 아래 풍경
달마산 봉우리

걷다 보니 길 옆으로 제설함 같은 게 보이는데...

제설함 추정
버려진 페트병

빈 페트병이 저기 왜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버려놓고 간 건가? 저런 거 하나 들고 다닐 기운도 없으면 집에서, 병원에서 편히 누워 쉬어야지 뭣하러 산에 오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석양이 내려 앉기 시작하는 바다

4구간에서도 산 아래쪽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데, 아마 저 작은 섬 너머 멀리 진도가 있을 거다. 바다에 석양이 비추는 걸 보니 곧 해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해 떨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해봤더니 썩 자주 하고 싶진 않더라 ㅎㅎ

머리 위로 달이 떠 있는 게 보여서 카메라를 꺼냈더니 그 순간, 옆으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타이밍 참 절묘하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비행기를 꽤 많이 봤다. 아마 광주나 무안공항을 오가는 여객기들인가 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객기
달마산 절경

급한 마음에 카메라는 봉인하고 후다닥 걷고 싶었으나, 눈길 닿는 곳마다 놓치고 갈 수 없는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꺼내드니, 몇 분 사이에 맹금류 한 마리가 선회하는 게 보인다.

말똥가리
말똥가리

정말 운 좋게 합성이라고 의심할 만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었지만, 정말 거짓말 같은 광경이다 ㅎㅎ

찍고 나서 찾아보니 말똥가리다. 붉은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저게 그 끼약~~ 하는 살벌한 샤우팅을 하는 맹금류다.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근원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말똥(말의 배설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다. 그랬구나~~

그래서, 몇 시간 걸렸을까?

안내도에는 4구간 완주하는데 6시간 30분 정도라고 나왔었는데, 그나마 4구간을 바삐 걸어서 6시간 15분 만에 들어왔다. 사진 찍느라고, 경치 구경하느라고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다. 아마 도솔암 보러 간다고 올라갔다 왔으면 해 떨어지기 전에 못 들어왔지 싶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유유자적 즐기려면 7시간 이상을 계획할 것을 추천한다.

미황사

길었던 17KM의 달마고도가 미황사로 돌아오며 끝이 났다.

어느 곳이던 걷다보면 뭔가 비우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달마고도에선 비움보다는 얻음이 더 컸던 거 같다. 나만 아는 무릉도원 같은 장소를 얻었고, 보지 못했더라면 원통했을 풍경을 얻었고, 이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얻었다.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며 첫 달마고도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