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공주 계룡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계룡산은 매년 한두 번은 갈 정도로 좋아하는 산인데, 이번엔 평소 대전을 거쳐서 동학사 방향에서 올랐던 것과 달리, 논산을 거쳐 갑사 방향에서 올랐다.
내비를 찍어보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논산 IC에서 빠지길래, 갑사가 논산에 있는 줄 알았건만, 다녀온 뒤에야 공주시 계룡면에 있다는 걸 알았다.
코스
갑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갑사, 금잔디고개, 자연성릉, 관음봉, 연천봉을 거쳐 다시 갑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약 6시간 20분 정도 소요됐다. 오르막과 비탈진 내리막 돌계단길이 만만치 않아 다소 오래 걸렸다.
갑사
부처님 오신 날을 3주쯤 앞둔 시점이라 절 주변은 연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길 옆으로 핀 노란꽃은 황매화라는데, 난생처음 보는 것 같다. 매화라길래, 때 늦게 무슨 매화인가 궁금했는데, 사실 황매화는 이름만 매화고 장미과의 나무라고 한다. 언뜻 봐도 잎이 장미하고 많이 닮았다.
갑사 부근은 사방이 황매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길 닿는 곳마다 노란 황매화꽃이 가득하다.
저렇게 매화를 닮은 꽃이 황매화이고, 국화처럼 겹꽃이 피는 것도 있는데, 그건 겹황매화나 죽단화라고 부르기도 하는 아종이란다.
자극적인 향수, 화장품, 방향제 냄새에 익숙해진 탓일까, 처음엔 이 꽃의 향기를 맡지 못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야 은은하게 풍겨오는 황매화 향기를 알아챘다. 아! 그 향기 참 고혹하구나.
이맘때가 황매화 축제가 열리는 시기인 듯한데, 아마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지 않았나 싶다.
갑사에 들어서니 앞마당엔 오색연등이 빼곡하다.
대웅전을 돌아 삼성각에 앞에 서니, 관음전 지붕 너머로 계룡산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바라보던 계룡산의 산세는 웅장하기 그지없는데, 절집 지붕 너머로 보이니 더 신비롭다. 관음전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등산로와 이어지는데, 등산로 정비상태는 국립공원답게 훌륭하다.
산행시작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계곡을 끼고 나란히 놓여 있다. 며칠 전, 조금 내렸던 비에도 수량이 상당하여 물 흐르는 소리가 걷는 내내 따라왔다.
초반에 경사가 가파른 곳은 이렇게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초반 계단 구간만 벗어나면 중반부는 그럭저럭 즐겁게 걸을 만했다.
바위턱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누룩뱀 한 마리에 내 걸음소리에 놀라서 바위틈으로 슬며시 후퇴하는 모습이다. 산 중턱의 뱀들은 이제 막 동면에서 깨어나나 보다.
여름에 비 좀 내린 후에 이 코스를 오르면 시원한 계곡 물소리 맘껏 들으면서 등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화엄사 - 노고단 코스처럼...
얼마쯤 왔나 궁금할 무렵, 금잔디고개까지 1.1Km 남았고, 갑사로부터 1.2Km 지나왔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오르막 구간의 중간쯤 되는 지점이다. 뭐 여기까진 무난하게 올라온 듯하다.
신흥암 바로 아래에 오르면 지도에도 안 나오던 임도 같은 길이 보이고, 그 뒤로 신흥암이 올려다 보였다.
이런 터는 어찌 잡았을까 싶을 정도로 절집 뒤로 올려다 보이는 풍광이 그림 그 자체다.
중반부
신흥암을 지나면 경사가 꽤 치솟기 시작하여 금잔디고개를 코앞에 두고선 중간중간 쉬지 않고선 못 올라갈 정도로 경사가 가팔라진다.
저 돌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소망이 깃들었겠지. 간혹 나처럼 미혹한 이의 헛된 욕망도 하나둘 섞여 있을 테고. ㅎㅎ
금잔디고개를 앞두고서는 길의 경사가 어찌나 험악한지, 너무 힘든 맘에 욕도 좀 나온다. ㅎㅎㅎㅎ
금잔디고개
거친 숨 몰아쉬며 겨우 올라온 금잔디고개. 일단 배낭부터 벗어던지고 앉아 쉬었다 ㅎㅎ
올라오는 내내 바람이 거의 안 불었는데, 금잔디고개부터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줘서 한결 편했다.
원래 계획은 금잔디고개에서 좌측방향으로 길을 잡아서 삼불봉으로 오를 생각이었으나, 금잔디고개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쓴 듯하다. 하여, 자연성릉으로 바로 올라가는 우측 길로 방향을 바꿔 잡았다.
걷다 보니 길 한가운데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 어린 생쥐가 한 마리가 있다. 어미를 잃은 건지, 이소하다 낙오한 것인지 움직임이 너무 둔하다. 훤한데 나와 있으면 천적에게 바로 잡아먹힐까 봐, 길 옆으로 피하라고 발을 굴러 위협을 해줘도 움직임이 영 시원치 않다.
자연성릉
아마 계룡산의 하이라이트이지 않을까 싶다. 삼불봉과 관음봉 사이의 능선길인 자연성릉.
벌써 여러 번, 이 자연성릉 능선길을 걸었지만, 올 때마다 이 산세에 감탄하고, 압도당한다. 넋 놓고 한참을 둘러보다 보면 이 산엔 신선이든 산신령이든 뭔가 하나 분명히 있을 거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 관음봉으로 향하는 계단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고소공포증 있는 분들은 조심하셔야 할 구간이기도 한데, 나 역시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 터라 올라갈 때마다 제법 아찔하다.
관음봉
관음봉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좌측으로 지나왔던 삼불봉과 우측으로 황적봉이 보인다. 그 사이는 동학사가 있는 계곡이고.
관음봉에서 잠깐 쉬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연천봉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관음봉에서 연천봉 사이의 길은 산의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라 아주 편하게 걸었다.
사초류로 보이는 풀들이 산 능선을 곱게 뒤덮었다. 마치 누군가 가꾸어 놓은 듯 곱다.
이 능선길에서도 계룡산 천황봉 근처가 올려다 보여서 숲 안쪽의 능선길치곤 조망이 나쁘지 않다.
연천봉
능선길을 걸어서 연천봉고개에 도착하면 이 고개 너머로 헬리포트가 나오고, 거길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연천봉 정상이다.
연천봉 정상 표지석에서 인증샷 남길 생각으로 열심히 올라왔는데, 연천봉 정상엔 표지석이 없다. 이런 낭패가 ㅎㅎㅎㅎ
그래도, 주변 경치가 좋아서 다행이다.
연천봉에서 보니 계룡산의 거의 모든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니 계룡산의 모습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조금 더 온화하게 보인다고 할까. 자연성릉에서 봤던 날이 잔뜩 서 있던 그 모습은 아니다.
고단했던 하산길
연천봉을 찍고 훈훈하게 마무리될 거 같았던 이번 산행 막판에 최대 난코스가 등장했다.
그나마 이렇게 계단이라도 놓여 있으면 다행인데, 이런 계단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끔찍이 싫어하는 돌계단 하산길이었다. 어지간하면 내 두 다리로 걷자는 생각이라 스틱도 안 챙겨 다니는데, 이런 돌계단 내리막길은 정말 적응불가다.
낙석에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을 정도로 비탈진 돌계단길이었다. 이런 길 올라가는 건 하루 종일이라도 하겠는데, 반대로 내려오는 건 정말 싫다. ㅎㅎ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투덜투덜 걷다 보니 등산로가 끝나고 임도와 이어진다. 아래가 돌아서서 남긴 사진.
여길 돌아서면 길 옆으로 야자매트가 깔린 보행로가 있는데, 돌계단길에서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한발 내딛자마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꽤 고달팠던 하산길이 갑사로 되돌아오며 끝났다. 내려오는 길에 한번 미끄러지긴 했는데, 다행히 몸이 상하진 않았다. 사고 없이 무사히 내려와서 정말 다행인데, 연천봉에서 갑사로 내려오는 이 하산길은 다신 안 올 거 같다. ㅎㅎ
동학사에서 갑사나 신원사 쪽으로 종주도 생각했었는데, 연천봉 거쳐 갑사로 하산하는 것은 안 하고 싶다. 혹시 종주를 하게 된다면, 신원사 방향으로 계획하지 않을까 싶다.
갑사 괴목
출발하면서 주차장 옆의 고목 그루터기를 그냥 지나쳤는데, 내려오는 길에 둘러보니 오래전에 죽은 나무 밑동이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다 보니 수년 전에 찍힌 사진과 지금의 모양이 많이 다르다. 아마 이건 인공조형물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같은 수종의 어린 나무를 다시 심었으면 후대를 위해서 더 나았을 거 같은데, 좀 아쉽다.
다른 계룡산 산행기는 여기를 클릭하여 볼 수 있습니다.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10경 '불일폭포': 여름철 가벼운 산행에 제격 (0) | 2021.09.06 |
---|---|
완주, 논산 대둔산 (배티재 - 낙조대 - 마천대 - 수락계곡) 산행 (0) | 2021.08.28 |
봄소식 가득한 해남 달마고도 트레킹 2/2 (0) | 2021.03.28 |
봄소식 가득한 해남 달마고도 트레킹 1/2 (0) | 2021.03.28 |
남해 호구산 산행 (용문사 왕복) (0) | 2020.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