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남해 호구산 산행 (용문사 왕복)

epician 2020. 6. 16. 01:55

코로나가 덮친 이 힘든 시기에, 다행히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난 몇 달은 정말 바빴다. 그 사이, 처음 가보는 산, 꼭 소개하고 싶은 산도 몇 군데 다녀왔었는데,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포스팅을 못하고 묵혀버리고 말았다.

우연히

남해 호구산은 지난주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남해에 볼 일이 있으셔서 모시고 가는 길에 들렀다. 어머니가 볼 일 보시는 동안, 두어 시간 정도 여유가 있길래 그 틈에 호구산 등산을 감행했다. 사실, 호구산도 지도 찾아보며 남해읍에서 가깝고, 두어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걸려든 곳이다.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이 계획하고, 아무 기대 없이 다녀온 산이라 그런가, 의외로 여운이 꽤 길게 남았다.

시작

용문사 주차장

저 아래에 보이는 용문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출발했는데, 코로나 여파인지 주차장은 몹시 한산했다.

산행경로 (용문사 주차장 → 호구산 정상 왕복)

다른 코스로는 시간을 맞추기 어렵겠기에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평소 그렇게 싫어하는 왕복 코스로 산행을 했다. 그것도 최단거리 왕복 ㅎㅎ 최단거리답게 올라가는 내내 경사가 상당하다.

노란 꽃

금계국 같이 보이는데, 꽃알못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오가는 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며 눈요기를 제대로 시켜주었던 그 풍광이 아직도 기억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때라 정말 사소한 풍경 하나하나에 쌓여있던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용문사로 향하는 길

용문사길

심각한 경사도로 보나 길 옆의 분위기로 보나, 북한산 도선사 올라가는 길하고 영락없다. 대충 눈으로 보기엔 자전거 타고 올라가면 통곡을 할 만한 경사가 아닌가 싶다. ㅎㅎ

용문사길
용문사

용문사는 내려오는 길에 시간이 남으면 둘러보기로 하고, 올라가는 길엔 그냥 지나쳤다.

지장보살

지나가는 길에 건너편 멀리 보이던 거대한 석조불상. 불교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미륵불일까 아미타불일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지장보살이란다. 찍기 완전 실패다;;; (참고: www.namhae.tv/news/articleView.html?idxno=43043)

낚임

등산로 이정표

저 이정표에 낚여 길을 잘못 들었다. 염불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나 이정표만 보고 아무 생각이 없어 좌측으로 꺾어서 올라갔다.

뭔데 이래 좋노~

GPS를 보고 잘못 들어섰다는 걸 알았으나, 쉽게 돌아 나오기 어려웠던 길...
어차피 이쪽으로 올라가도 정상부가 나오긴 할 텐데, 순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약속된 시간까지 내려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짧게 고민하다가 이 길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아~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는 곳이 많아지면 곤란한데 ㅎㅎ

염불암

크게 공감한 현수막

코로나 사태를 겪어보니 그 평범했던 일상이 언제 다시 돌아올까 정말 간절하다.

염불암
염불암 마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등산로가 염불암 마당과 대웅전을 지나가는데, 초행길이라 약간 헷갈렸다. 그나마 스님들이 기왓장에 방향을 알리는 글과 그림을 그려두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염불암 산신각

등산로가 저 산신각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하나씩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던지 상관없다. 어차피 나중에 하나로 만나는 길이다.

남북통일보다 시급한 산이름 통일

등산로 이정표

자 여기서 '원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원산 꼭대기(호구산 정상)에 올라가면 정작 표지석엔 '납산'이라고 되어 있다. 이 작은 산에 무려 이름이 3개다. 원숭이를 닮았다고 해서 납산, 원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호구산이라고도 한다는데, 옛날에야 어떻게 불렸든 간에 지명은 하나로 통일해야지 싶다.

너덜길

울창한 숲

이 방향의 등산로는 숲이 울창하여 햇볕을 바로 받을 일이 별로 없다. 대신 시야가 산 밖으로 뻣질 못하니, 주변 풍광을 즐기기엔 다소 아쉽다.

또 특이한 점이라면 올라가는 길의 대부분이 굵직한 바위가 강처럼 흐르는 너덜길이었다.

너덜길
너덜길

너덜길의 최대 단점이라면 길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아닐까. 여기에 두터운 낙엽이나 눈까지 쌓이면 정말 최악인데, 계절적으로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다. 길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잠시 잠깐 당황할 때가 꽤 있었다.

정상부

호구산 정상 바로 아래의 삼거리

쉴새 없는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걷다 보니 송등산과 호구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걸을만한 (아주 짧은) 능선길이 나타난다.

앵강고개로 향하는 능선길

보통 이런 길이 많은 산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이 코스엔 이런 길이 거의 없다.

호구산 정상부

호구산 정상은 넓은 암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치 동네 뒷산(호랑산) 같은 느낌이다.

호구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호구산 정상에 오르면 남북 양방향으로 바다가 보인다. 미세먼지 탓에 감흥이 덜했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은 어딜 가도, 언제 봐도 좋다.

호구산 남쪽 방향
호구산 남쪽 방향
호구산 북쪽 방향
호구산 표지석

해발 627미터의 호구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인데, 이름은 납산....
하여간,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샷도 좀 찍고, 주변 풍경도 열심히 둘러봤다.

호구산 봉수대

정상부 서쪽으로 최근에 복원했다는 호구산 봉수대가 보였다. 이 봉수대를 돌아 내려가는 길로 하산할까 싶었는데, 조금 내려가다 보니 말벌들이 날아다니길래 조심히 후퇴하여 올라왔던 길로 방향을 되돌렸다. 예전에 말벌에 쏘여본 경험에 의하면, 다시는 방심하다 쏘이지 말아야겠다는 각성이 확실히 됐다. ㅎㅎ

하산길

조립은 분해의 역순.. 아니구나 오늘 하산은 등산의 역순이다.
제일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데, 오늘은 사정상 어쩔 수 없다. 최단거리, 최단시간으로 코스를 계획하다 보니 같은 길을 왕복하는 산행이 되고 말았다.

내려오는 길도 여전히 비탈지고....
그러고 보니, 올라올 때도 내려갈 때도 이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햐~

바쁘게 올라가느라고 놓쳤던 염불암 근처 풍경이 내려오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 왕복 산행이 이런 점은 약간 괜찮기도 하다.

염불암 대웅전 뒷편

염불암 주변으로 저런 자그마한 돌탑들이 많았는데, 마치 영화 '동막골'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꽤 신선한 경험이다.

염불암 대웅전 뒷편

저 연등을 보면서 아기 부처님의 자비가 내게도 좀 깃들길 소망했다. 요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 터라.

고목의 밑동

고목의 밑동이 조각처럼 다시 태어나 묘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올라가는 길에 너무 서두른 탓에 놓쳤던 풍경이 꽤 많다.

차밭

바삐 지나쳤던 염불암 앞의 경사면은 자세히 보니 차밭이다. 조급히 지나쳤던 길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놓쳤다니...

용문사

내려오는 길에 아주 잠깐 용문사 구경을 했다. 사찰의 규모는 생각보다 꽤 컸다.

용문사 대웅전

벗겨진 단청에서 묻어난 세월의 느낌 탓인가 몰라도, 꽤 오래되어 보이는 대웅전 건물의 조형미가 예사롭지 않다. 같은 모양으로 자란 나무가 하나도 없을 텐데, 그런 것들을 다듬어 어떻게 저런 반듯한 모양을 잡아 냈을까.

내려오는 길에 어머니 전화를 받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신기한 약수.

정말 신기했던 약수

인위적으로 구멍을 낸 건지, 알쏭달쏭한 바위틈에 약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워낙 바삐 내려오던 길이라, 뒤편을 함 둘러볼까 하다 말았다. 이 바위에 정체는 다음에 다시 가서 알아보기로 ㅎㅎ

작은 구멍으로 약수가 흘러내리는 바위

용문사에서 받은 차분한 기운이 꽤 좋다. 다음에 여유를 갖고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금세 들었다.
조만간 꼭 다시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