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바래봉 눈꽃산행 "성공적"

epician 2022. 2. 27. 15:49

급조된 대안코스

일주일 전쯤, 남원의 지리산 바래봉으로 눈꽃산행을 다녀왔다. 결과는 성공적...

기다리던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광주 무등산으로 눈꽃산행을 갈 계획을 세우고, 알람을 맞춰둔 새벽 5시 무렵에 일어났다. 일어날 무렵부터 배가 살살 아파서 느낌이 안 좋았는데, 결국엔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약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에휴 무슨 이런 답답한 상황이...

실컷 자고 아침 10시쯤 일어나니 다행히 복통은 사라졌고, 불편했던 장도 잠잠하다. 꾸려놓은 배낭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러모로 만만한 바래봉을 갔다 오기로 급 결정했다.

산행코스, 약 10KM

집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운전하기도 부담 없고, 정오 무렵이면 기온도 영상으로 오른다고 하니, 얼어있던 길도 다 녹지 않았을까 싶어 급하게 결정하고 후다닥 챙겨 출발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제설용으로 뿌렸던 염화칼슘만 흩날리고 있고, 국도나 지방도 역시 얼어있는 구간은 전혀 없었다.

남원 운봉읍 도착

운봉읍의 지리산 허브밸리 근처에 도착하여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답사를 한번 했던 터라, 지체 없이 바로 산으로 향했다.

꽁꽁 얼어 있는 개천

들머리의 작은 개천은 꽁꽁 얼어서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러나, 산 위는 어떨지 아직 짐작이 안 되는 상황. 아래쪽 상황은 엊그제 여기도 눈이 조금 내리긴 한 것 같은데, 광주처럼 많이 내리진 않은 듯하다. 광주 무등산은 대설주의보 탓에 출입통제까지 됐었다.

얼어 있는 이면도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이면도로는 얇게 얼어 있었다. 아이젠을 꺼낼까 잠깐 고민하다가 길 가장자리로 흙이 깔린 곳을 밟고 조심스레 지났다. 아이젠 차고 바위 위를 걷는 느낌이 싫어서 아이젠 차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봉아래 기점

햇볕이 잘 드는 곳은 눈이 녹고, 그늘진 곳은 조금 얼어 있고 그렇다.

본격 산행시작

바래봉 탐방로 첫 풍경

운지사로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면 곧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날은 풍경보다는 찬바람에 실려오는 소나무 향이 너무 좋았다.

탐방로 초입

초입은 음지쪽 말곤 눈이 다 녹은 상태라 정상부에 눈이 남아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걸었다.

깨끗한 눈
눈 위에 발자국 남기기

누군가 밟고 간 흔적이 없는 깨끗한 눈 위에 내 발자국을 남겨본다. 궁금하여 손가락으로 찍어보니 적설량은 대략 5cm ㅎㅎ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동네에 살다 보니 이 정도 눈에도 어찌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집중하며 걸었다.

바위 위에 쌓인 눈

바위에 쌓였던 눈이 햇볕에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녹는 중인데, 마치 빵 위에 올려놓은 크림 같다.

오르막 중반부

오르막 중반부

중반부부터는 맨바닥이 드러난 길은 없고, 눈이 쌓여서 조금씩 얼어 있는 상태였다. 상황이 어떨지 몰라 평소 안 챙겨 다니는 스틱에 아이젠, 스패츠까지 다 챙겨 왔는데, 올라가는 길은 견딜만해서 쓰지 않았다. 발걸음을 디딜 때나 뗄 때 주의하느라 다리에 힘이 조금씩 더 들어간다. 덕분에 운동량이 많아지겠지 싶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올라갔다.

눈 덮힌 탐방로

지난번, 눈 없을 때 올라가던 이 길은 별 감흥이 없었는데, 눈 조금 덮였다고 이렇게 다른 느낌인가?

정상부 능선

햇볕을 바로 받는 정상부에 과연 눈이 남아 있을까 올라오는 내내 궁금했는데, 정상부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니 내 걱정이 스르륵 사라졌다. 엊그제 내렸던 눈이 남아 있구나!!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
바래봉 정상부

정상부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더욱 안심했다. 많이 내리지 않았던 눈이 아직 저렇게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정상부를 향해 즐겁게 걷는 중

바래봉 정상부

산 아래로 보이는 곳이 남원시 운봉읍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에 쌓인 눈이 더 두텁다. 눈 밟는 소리도, 그 느낌도 참 즐겁다.

눈꽃

바래봉 정상에 가까워지니 드디어 눈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고대까진 아니어도 이것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눈꽃
구상나무

키 높은 구상나무에도 눈이 제법 내려 앉았다. 상고대까지 있었으면 더 절경이었을 텐데, 상고대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구상나무
눈 쌓인 구상나무 잎
바래봉 정상 바로 아래의 능선

정상부도 햇볕이 잘 드는 쪽은 눈이 많이 녹긴 했다.

바래봉 약수

땅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는 어지간해선 얼지 않는다. 바래봉 약수도 얼지 않고 쫄쫄쫄 잘 나오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생수만 한병 챙겼는데, 생수 비워버리고 이 물을 담았다.

눈 쌓인 구상나무 숲

적게 내린 눈에 상고대도 없다 보니 좀 아쉽긴 하나, 급작스레 온 산행에 이 정도 풍경도 감지덕지해야지.

바래봉 정상부 능선
바래봉 정상부 능선
바래봉 정상부 능선
반야봉

내가 갈 때마다, 볼 때마다 구름에 덮여 있었던 반야봉. 구름 안 걸린 모습은 처음 본다.

천왕봉

올해는 꼭 천왕봉도 갔다 와야 하고, 숙제처럼 밀려 있는 곳이 너무 많다. ㅎㅎ

지리산 전경

아마 바래봉은 이걸 보려고 올라오는 거겠지 싶다. 지리산 뷰 맛집 바래봉! 이 날은 지리산 봉우리들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없어서 산줄기를 조망하기 참 좋았다.

바래봉 인증샷
바래봉에서 내려다 본 산내면 방향과 그 뒷편으로 걸린 천왕봉의 풍경

겨울 끝자락에서 어렵게 눈 구경을 했다. 올해는 겨울가뭄 탓에 눈이 자주 내리지 않았고, 가끔 눈이 내렸을 땐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가 시간을 내지 못했다. 이번 겨울은 다 지나갔으니 이제 내년을 기약해야겠지.

바래봉 인증샷

오랜만에 즐기는 설경에 사진 열심히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꽤 미끄러워서 아이젠에 스틱까지 동원해서 안전하게 하산했다.

대설이 내렸던 무등산을 못 봐서 조금 아쉽긴 하나, 바래봉의 이 겨울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눈 많이 내릴 다음 겨울을 자연스레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