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잠
2022년 11월 '남해 응봉산'을 끝으로 한 동안 등산은 커녕 동네 산책도 제대로 못하고 지냈다. 사정이 생겨 타던 자동차를 바꿔야 했는데,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려니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남는 시간을 자동차 바꾸는 일에 다 쓰다 보니 바깥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묵혀둔 숙제를 꺼내서
남해 응봉산에서 탄력을 받고나서 곧장 금산을 갈 줄 알았건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 이번 금산 산행도 급하게 결정하고 하루저녁 사이에 후다닥 계획하고, 정신없이 다녀왔던 것이라 제대로 둘러본 건지 확실치 않다.
코스
두모주차장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4-21)을 출발해서 부소대, 상사바위, 정상(봉수대), 보리암, 쌍홍문 경유하여 다시 두모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다. 약 9km 정도에 5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오르는 길도 완만하고,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라 여러모로 부담 없었다.
참고로 금산 정상의 높이가 몇 미터인가 말이 많은데, 680m 부터 705m 까지 다양했다. 최근엔 705m 설이 가장 유력한 듯하다. 국립공원 정도면 정밀 GPS로 실측 한 번 하면 깨끗하게 정리될 문제 같은데, 여태 실측을 안 했다는 게 이상하다.
출발
비수기 평일이라 주차장은 매우 한산했다. 무료주차장이며, 한쪽 구석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
상록수가 자생하는 난대림이라 겨울 맞나 싶을 정도로 푸르다. 바람도 적은 영상 5℃ 의 날씨라 플리스 자켓 하나면 충분했다.
겨울이라고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푸르다. 남녘의 겨울은 막바지임이 분명하다.
오르는 길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완만하다. 정상부에 기암괴석이 가득한 산이라 오르는 길이 제법 힘들 줄 알았는데, 두모주차장에서 오르는 길은 정말 편했다.
짐승들 싸움난 줄
어릴적 어머니에게서 겁 많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난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았는데, 그 편견이 깨진 건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할 무렵이었다. 깜깜한 밤에 라이트 하나 있으면 무덤 옆을 혼자 지나는 게,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근데, 대부분은 질색을 하더라.
금산을 오르던 중에 웬 짐승들이 사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린다. 잽싸게 자리를 피해야 정상이겠으나, 그 섬뜩한 소리를 듣고도 한참을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고 있었다. ㅎㅎ
한참 듣다 보니 조금은 익숙한 소리다. 수도관에서 물이 거꾸로 내려갈 때 들었던 그 소리.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걷다 보니 등산로 옆으로 제법 굵은 관이 보인다. 아마 계곡물을 어딘가에서 끌어가나 보다.
잠깐의 헤프닝은 이렇게 누수(?)로 정리됐다. ㅎㅎ
국립공원답게 등산로 정비 상태는 최상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계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덕에 정말 편하게 올랐다.
중반부
대략 반쯤 오르면 산등성이에 커다란 바위들이 걸려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 떨어지는 게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모양새다.
대략 절반쯤 오른 상태인데, 여기까진 오르는 길이 정말 편했다. 여기를 지나면서부터는 바위도 제법 커지기 시작하고, 경사도 높은 곳이 가끔 나오기도 하지만 거리가 매우 짧았다. 전반적으로 보면 두모코스의 오르막 난이도는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가 싶다.
낙엽 사이로 푸른 이파리 하나가 올라오길래 살짝 만져보니 그 감촉이 아주 매끈하고 부드럽다. 모양새만 봐서는 얼레지 아닌가 싶은데, 정확하진 않으니 믿진 마시라. ㅎㅎ
5부 능선쯤을 지나니 여기서부터는 상록수는 거의 없고 잎이 남아 있지 않은 활엽수로 수종이 바뀐다.
겨울 숲이 나름 운치가 있다 하더라도 푸른 상록수를 이길 수는 없나 보다. 갑자기 풍경이 바뀌니 너무 우중충하다.
물이 마른 산간계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넓은 등산로가 잠깐 나온다. 통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세워둔 난간이 없었더라면 길이 아닌가 싶어 다른 곳으로 벗어났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등산로가 완만하다 하여도, 근 석달을 긴장감 없이 풀려있던 다리 근육들이 제법 버거워한다. 정상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놀랄 만한 조망 터지기 시작한다.
부소암
부소암 부근에 다다르면 조망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넓게 펼쳐진 남해바다가 정말 장관이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라 바다 건너편 여수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금오도까지도 또렷하게 보였다.
오동도부터 돌산도, 여수 구도심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부터 신덕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보인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그 위치가 정말 천혜의 항구 아닌가 싶다.
훌륭한 날씨 덕에 안내도보다 더 깨끗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향일암 뒤편의 희미한 윤곽은 금오도가 아닌가 싶다.
전망대를 지나 부소암으로 오르는 나선형 철계단이 있는데, 그 중간에 보니 예전에 사용했던 비좁은 통행로가 보인다. 정말 들어가면 끼일 듯한 너비다.
고소공포를 이겨내고 철계단을 오르면 부소암 이정표가 보인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들어서니 아쉽게도 닫혀 있다.
이 부근에 도착하니 멀리 철탑이 보인다. 아마 저 부근이 금산의 정상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름 모를 나뭇가지에 건드리면 금새 터질 듯한 꽃봉오리가 잔뜩 맺혀 있다.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봄을 향해 간다.
닫혀 있는 부소암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커다란 암석 옆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걸 보고 무척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까 봤던 암자가 부소암인가, 저 바위(Busoam Rock)가 부소암인가??
이후에 다른 안내판을 보니 '부소대'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아마, 이 바위가 있는 이곳의 지명이 부소대, 그리고 작은 암자를 부소암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두 절벽 사이를 철제 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고소공포가 있는 편이라 저 짧은 다리를 건너는 것도 섬찟하다.
반대편으로 건너와서 부소대를 조망해야 한결 멋지다.
뇌를 닮은 모양새라고 하는데, 정말 희한하게 생기긴 했다. 절경으로 꼽을만하다.
부소대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근처 바위에도 그런 구멍이 보인다. 여기 고였던 물엔 아직 얼음이 남아 있다.
부소대에서 보면 가까운 큰길 옆으로 출발했던 두모주차장이 보이고, 멀리 두모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다음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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