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가운데 하나였는데, 엊그제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이름값 충분히 한다
이 땅의 고대국가인 '가야'를 대표하는 산이라 '가야의 산', 가야산이라 부르나 보다. 가히 그 산세는 한 나라를 대표하기에 충분할 만큼 웅장했다.
먼저 소감부터 정리해 보자. 너무 힘든 코스 탓에 다시는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산행 며칠 뒤 차분히 정리해 보면 거친 산이 주는 그 매력을 거부하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힘들어서 매력적이다.
백운동 주차장(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805)을 출발하여 만물상을 거쳐 서성재, 칠불봉, 상왕봉을 찍고 용기골(계곡) 방향으로 하산하는 10km 코스로 약 7시간 소요됐다.
만물상 방향으로 오르는 코스는 국립공원 코스안내도에 난이도 '상'으로 안내되어 있다. 무척 힘든 코스이니 편하게 오르고 싶은 분들은 반대방향인 용기골로 오르시는 걸 추천한다. 그 힘든 '지리산 중산리 - 천황봉 코스'가 1박 2일 기준으로 난이도 '중'으로 안내되어 있으니, 난이도를 추측하는데 참고가 될만하지 않을까 싶다.
출발
비시즌 금요일이라 주차장은 아주 넉넉했고, 주차비는 따로 받지 않는다.
이 주차장 맞은편으로도 지상과 지하주차장이 있어 주차공간은 아주 넉넉하다.
등산로를 향하는 길에 다른 품종인지 꽃이 유난히 붉은 벚나무가 몇 그루 보인다. 봄이 절정이라 눈길 닿는 곳마다 꽃으로 가득하다.
만물상 코스로 올라갈 때는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탐방예약을 해야 한다. 입구에 있는 국립공원 사무실에서 예약 QR 코드를 체크한다. 만물상 코스로 내려올 때는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연중 오전 9시부터 출입가능하니 참고하시고, 출입구에 깨알 같이 적힌, 보일 듯 말 듯, 마치 못 보고 지나가길 바라는 듯한 "매우 어려움" 경고문구도 명심해야 한다. ㅎㅎㅎㅎ
시작부터 오르막이고, 초반 1시간 정도는 쉴 틈 없는 오르막이다. 조망도 없는 숲 안쪽의 길이라, 거친 숨 몰아쉬며 1시간을 버텨야 한다.
1시간 정도를 올라와야 능선길을 타면서 좌우로 시야가 터지기 시작한다.
양지바른 곳은 진달래가 제법 많이 피었다. 진달래가 많은 산은 아니라 군락지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흥은 없었다.
아래쪽은 이렇게 자연석으로 다듬어진 비탈진 오르막이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철재계단이 많아진다.
오르막길 중간중간 쉬어가라고 이름도 무시무시한 심장안전쉼터가 있다. 서성재까지 3군데쯤 있었던 것 같다.
그 오르막을 꾸역꾸역 올라왔는데, 이정표를 보니 초입에서 겨우 600m (주차장 기준으로는 1km) 왔단다. 살짝 황당했다 ㅎㅎ 다행인 점은 이 부근을 지나면서부터 조망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양쪽으로 가야산의 거친 암릉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오르막은 여전히 고되지만 경치구경 하느라, 사진 찍느라 자주 멈추다 보니 초반 1시간보다는 수월하다고 착각한다.
뾰족 솟은 봉우리 뒤편으로 넓게 펼쳐진 산맥이 가야산 정상부다. 저곳까지 가려면 봉우리 몇 개를 올랐다가 내려가길 반복해야 하니,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심장안전쉼터
여기가 세 번째 심장안전쉼터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여하튼 서성재까지 가는 길에 이런 쉼터가 세 개쯤 있었던 거 같다. 가야산의 명소 중 하나가 아마 심장안전쉼터가 아닐까 ㅎㅎ
무리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평소처럼 스틱 없이 산행에 나섰는데, 여긴 정말 무릎에 무리가 많이 오긴 한다. 특히, 겨우내 쉬었던 상태라 체감하는 피로감이 더욱 크다. 시즌 초반부터 괜히 객기 부렸나 싶은 우려가 들기도 했다.
가야산의 비경
높은 낭떠러지를 싫어하는데, 고소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가 곳곳에 있다. 다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위협적인 구간은 없으니 고소공포가 있는 분들도 충분히 올 수 있을 듯 싶다.
우측의 뾰족 솟은 봉우리가 만물상의 뒤편이다. 저길 넘어가면 정말 멋진 만물상이 있다. 처음 가는 곳이라 풍경을 보면서도 저기가 어딘지 파악이 안 됐다. 그래서, 재미가 좀 덜했는데, 저기가 만물상인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신나게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훌륭한 경치에 취해 감탄을 연발하던 중 이상한 것을 봤다.
빛이 반사되는 것을 보니 무슨 표지판처럼 보인다. 설마 저길 기어 올라가는 것인가? 아니면 올라오지 말라는 경고판일까?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도저히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처럼 보이던 곳을 다행히 무사히 올라왔다. 바위틈으로 안전하게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멀리서 보고 멘붕이 살짝 왔던 그 표지판이 이거다. 사람이 가면 안 될, 날짐승 아니면 못올 곳처럼 생겼던 그 봉우리의 표지판이다. 이 안내도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 난 이걸 보고, 이제 힘든 오르막 다 끝났구나 하고 안도했다. 아래쪽 고도 그래프를 보면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나 싶다.
걸어보고 알았지만, 서성재까지 남은 구간은 여전히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다만, 경치가 기가 막히다 보니 중간중간 구경하느라 자주 멈추게 된다. 그 덕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느껴질 뿐.
그리고, 해발 900m 대가 마의 구간 아닌가 싶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니 걷는 거리에 비하면 900m대 구간이 정말 길게 이어진다. 한참 왔다고 생각해서 GPS 확인해 보면 여전히 구백 몇십 미터 ㅎㅎㅎ
자주 돌아봐야
오르막길이 워낙 힘들다 보니 자주 쉬기도 해야 하지만, 그럴 때 꼭 뒤를 돌아보자.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에 놀랄 일이 많다.
계단과의 사투
내장산의 봉우리들을 넘으며 징그러울만치 많은 계단에 놀란 적이 있는데, 가야산은 거기에 비하면 한 서너 배쯤 계단이 많은 느낌이다. 가야산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그 가운데 이 문장 하나는 꼭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단과의 사투...."
만물상
가야산에서 정상부보다 유명한 게 만물상이란다. 가히 놀랄만한 풍경이다.
가까운 봉우리가 만물상, 먼 봉우리는 상아덤 아닌가 싶다. 거칠게 솟아오른 기암괴석 사이로 계단길이 만들어져 있다. 멋진 풍경을 감탄하다가 문득 그 사이에 숨어 있는 계단길을 발견하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길 올라갈 수 있긴 한 건가 싶은 의문 ㅋㅋㅋ
사진으로 다시 봐도 너무 멋지다. 막상 이 날은 너무 힘든 탓에 이제 가야산은 다시 안 올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거친 산이 주는 그 매력은 정말 헤어나기 어렵다. 벌써 다시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아까 봤던 그 계단길, 날짐승 아니면 가지 못할 것 같던 그 길을 지나 봉우리를 넘으면 제대로 된 만물상이 보인다.
갑옷 입은 장수가 뒤돌아선 모습도 보이고, 정말 누가 만들어놔도 저렇게 인상적이진 못하겠다 싶은 풍경이다.
만물상을 지나면 건너편으로 상아덤이 보인다.
상아덤
만물상을 지나 조금 걷다 보면 상아덤 아래에 도착한다.
상아덤 부근에 도착하면 가야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수목 한계선인 듯 정상부 바로 아래는 키 높은 나무가 거의 없다.
상아덤에서 서성재로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정상부로 오를 수 있는 길목이 나타난다.
다음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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