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고흥 팔영산 산행 "오해 풀었네"

epician 2024. 3. 18. 22:17

어쩌다 보니 최근 산행지가 고흥, 광양, 고흥 그리고 다시 고흥이다.
대략 5월 초까지 산불조심기간으로 국립공원 탐방로 상당수가 출입금지된다. 어딜 갈까 찾아보던 중, 고흥 팔영산은 국립공원임에도 통제된 구간이 적다는 걸 알게 됐다. 적대봉의 여흥도 아직 남아있고 해서 팔영산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고백하건대...

집에서 가까운 팔영산을 아직 가본 적 없었다. 고소공포가 있어서 낭떠러지 근처엘 가는 걸 태생적으로 싫어한다. 예전에 팔영산에서 엄습한 고소공포 탓에 오도 가도 못한 사람이 본의 아니게 탐방로를 막아서 낭패를 겪었다는 무용담(?)을 들은 바 있다. 그래서일까, 곱게 죽는 게 목표라... 내 평생 팔영산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ㅎㅎ

그러나, 적대봉의 그 강렬했던 여운이 팔영산으로 날 이끌고 말았다.

산행경로

산행경로 약 9km, 5시간 20분 소요

첫걸음이니 가장 일반적인 코스대로 돌았다. 능가사를 출발하여 흔들바위, 유영봉부터 차례로 찍고 깃대봉을 돌아서 탑재로 하산했다. 대형 주차장이 있는 국립공원 사무소를 기점으로 약 9km에 5시간 20분 정도 소요됐다.

출발

마을 주차장

마을 주차장을 지나서 능가사 방향으로 직진을 해야 하는데, 마치 탐방로 출입구처럼 생긴 장식에 이끌려 마을 안쪽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담장 너머 매화

늬댁 담장 너머로 매화가 예쁘게 피었다. 평화롭게 그지없는 봄 풍경이다. 방향을 잃고 잠시 멍 때리다가, 잘못 들어왔다는 걸 깨닫고 돌아 나왔다.

능가사 담장

능가사 담장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살아난다.

멀리 걸린 팔영산 봉우리

팔영산 야영장을 향해 걷다 보니 묘하게 생긴 팔영산의 봉우리가 그럼처럼 눈에 들어온다. 뭐라 설명하기 참 어려운 모습이다.

팔영산 설명

사진과 비교를 해보니 여기서 보이는 모습은 7봉(칠성봉)까지이고, 조금 떨어진 적취봉과 깃대봉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탐방로 입구

마지막 화장실을 지나면 탐방로 입구가 나온다.

팔영산 봉우리 배치

오래전에 표지석으로 쓰이던 것을 모아서 이렇게 팔영산 봉우리 배치를 설명하고 있다. 유영봉부터 적취봉까지 하나로 이어진 산맥이고, 선녀봉과 깃대봉만 조금 떨어져 있다.

탐방로 안내판

안내도에 따르면 유영봉 ~ 두류봉 구간이 매우 어려운 구간이고, 나머지는 보통이란다.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움'까진 아니었고, 안전사고에 유의만 한다면 체력적으로 어렵진 않았다.

산행 초반

봄기운 가득한 탐방로

탐방로 정비상태는 아주 훌륭했다. 목계단, 돌계단, 철계단이 두루 섞여 있는데, 정상부만 제외하면 계단의 높이도 적당하고 걷기 아주 좋았다.

별처럼 빛나는 상록수

윤기 나는 상록수 이파리에 부딪힌 빛이 별빛처럼 흔들린다. 여기 들어서기 전까진, 내 마음은 아직 겨울 끄트머리 어디쯤이었는데, 저 풍경을 보는 순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는 걸 알아챘다.

훌륭한 탐방로 정비상태

등산로 초반은 100점!

흔들바위

흔들바위 쉼터

대략 40분쯤 걸으니 흔들바위가 나타난다.

흔들바위

흔들리는 흔들바위를 본 적이 없기에, 현명하게 흔들어보지 않았다. "난 낚이지 않을 테다~" ㅋㅋ

흔들바위 이정표

흔들바위 쉼터에서 유영봉까지는 600m라고 나오는데, 올라가다 보면 직선거리로 600m를 적었나 싶을 정도로 멀게 느껴진다.

유영봉

유영봉으로 오르는 완만한 길

흔들바위를 지나고 나니 완만한 길이 나와서 의외였다. 너무너무 걷기 좋았던 길.

숲 너머로 보이는 유영봉 실루엣

완만한 길이 의외다 싶었는데, 숲 너머로 절벽처럼 우뚝 솟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유영봉으로 향하는 길

편하고 좋은 길은 여기까지다. 유영봉 바로 아래에서 절벽 같은 길을 만나게 되면, 그 후로는 적취봉(8봉)까지 계속 험한 길만 이어진다.

유영봉

험한 길 시작

안전난간이 설치된 이 구간을 보자, 이제 시작됐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발을 딛기 어려운 제법 높은 바위를 만날 때마다 기합소리가 절로 난다.

유영봉사거리 이정표

유영봉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유영봉인데, 유영봉을 찍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우측 성주봉으로 가야 한다.

유영봉 안내판
성주봉

유영봉 오르는 길에 본 성주봉의 모습인데, 그 모습에 주눅이 들 정도로 웅장하다.

유영봉 정상석 (선녀봉 방향)
유영봉 정상석 (성주봉 방향)

유영봉은 정상부가 마당처럼 평평한데, 사람들이 얼마나 밟고 다녔는지 바위 표면이 반들반들하다.

유영봉에서 조망한 풍경 (고흥 방향)

미세먼지가 조금 낀 탓에 조망이 좋지 못하다. 비 온 뒤에 와야 하는데, 이번엔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성주봉

성주봉 안내판
성주봉

유영봉을 내려와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면 곧장 성주봉이다.

성주봉 부근에서 유영봉 방향 조망

미세먼지 탓에 풍경 사진이 우중충하다. 이런 곳은 꼭 비 온 후에 와야 하는데, 타이밍이 못내 아쉽다.

성주봉 정상석

성주봉에 올라서면 지나가야 할 다음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생황봉, 사자봉

여전히 성벽처럼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압도적이다. 풍경에 한번 놀라고, 저길 갈 수 있긴 한 건가 싶은 의문에 다시 한번 놀란다.

성주봉 부근에서의 조망 (팔영산자연휴양림 방향)

생황봉

생황봉 정상석 (선녀봉 배경)
생황봉에서의 조망 (사자봉, 두류봉, 깃대봉 능선)

생황봉에 올라서면 압도적인 두류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습도 압도적이지만, 올라가는 길 또한 압도적이다.

사자봉

사자봉 부근에서 돌아본 지나온 길
사자봉 정상석

사자봉에 올라서면 사자봉 뒤에 숨어 생황봉에선 보이지 않던 오로봉을 볼 수 있다.

사자봉에서 바라본 오로봉, 두류봉

오로봉

오로봉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 (고흥 방향)
오로봉 정상석

오로봉까진 어렵지 않게 왔는데, 절벽 같은 두류봉을 보니 걱정이 조금 든다. 사실, 절벽에 박힌 안전난간을 벌써 봐버렸다. 살짝 심란해진다.

오로봉에서 바라본 두류봉

사진으로는 탐방로의 임팩트가 한눈에 전해지지 않을 거 같으니, 색을 좀 칠해보자.

두류봉 탐방로

여기가 본의 아니게 고소공포로 길막하는 사람이 많다는 구간인가 보다. 도대체 사람들은 저길 왜 올라 다녔을까 싶은 의문이 터져 나왔다. ㅎㅎ

두류봉

두류봉 안내판

짧은 걱정은 뒤로 하고, 못 갈 거 같으면 그냥 내려오자 싶은 생각에 두류봉엘 오른다.

두류봉 탐방로

뭣하러 이 험한 길을 올라 다녔을까 싶은 궁금증은 여태 해소되질 않는다.

두류봉 부근에서 본 풍경 (선녀봉 방향)
절벽 같은 탐방로

도저히 못 갈 거 같던 길인데, 어찌어찌 올라와진다.

올라온 길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정말 섬찟하다. 안전난간이 절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건 아니라, 그나마 덜 무섭다.

두류봉 정상석

칠성봉을 배경으로 놓인 두류봉 정상석이 그럴싸하다. 이것도 큰 추억이 될 테니, 여기서 인증샷 하나 남겨야지.

두류봉 인증샷
두류봉에서의 조망 (칠성봉, 깃대봉 방향)

두류봉에서 칠성봉으로 향하는 길은 의외로 완만하다. 여길 반대로 돌아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두류봉을 반대로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가능할까 싶은 갑갑함이 몰려온다. ㅋㅋ

칠성봉

두류봉사거리 이정표

두류봉을 내려오면 두류봉사거리에서 칠성봉까지는 약 200m 거리인데, 대체로 길이 완만하다.

칠성봉 주상절리

비스듬히 누운 바위틈에서 찬기운이 스며 나온다. 여름산행이라면 이 부근에서 한참 쉬어갔을 거 같다.

칠성봉 안내판
칠성봉 부근에서의 조망 (두류봉 방향)
통천문

칠성봉엘 오르려면 통천문을 지나야 하는데, 서너 명은 함께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보기보다 넓다.

칠성봉에서의 조망 (좌측에서 부터 두류봉, 선녀봉, 팔영산자연휴양림)

칠성봉도 조망이 제법 좋다. 험한 바윗길이 싫다면 탑재방향이나, 휴양림 방향에서 올라서 칠성봉만 보고 내려가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칠성봉에서의 조망 (여수 방향)
칠성봉에서의 조망 (선녀봉 방향)
칠성봉에서의 조망 (깃대봉 능선)
칠성봉 표지석

적취봉

칠성봉을 지나면 적취봉이 눈에 들어온다.

적취봉
적취봉 배경 조망

적취봉의 배경으로 펼쳐진 고흥바다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세먼지 없는 날 꼭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적취봉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적취봉 안내판
적취봉 정상부

적취봉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두류봉에 오르기가 부담되는 분들은 칠성봉, 적취봉만 보고 내려가도 정말 아쉬울 것 하나 없을 듯하다.

적취봉
적취봉에서 바라본 깃대봉
적취봉 정상석

까마귀 배설물이 좀 하자이긴 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풍경이 꽤 훌륭하다.

적취봉 정상석 (칠성봉 배경)
적취봉에서 바라본 깃대봉 능선

깃대봉

적취봉을 내려오면 깃대봉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적취봉삼거리 이정표

탑재로 하산할 경우엔 깃대봉을 찍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묘지

높은 산에서 묘지를 만나면 항상 비슷한 의문이 든다. "누가? 왜 여기에?" 어쩌면 망자의 유언이었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깃대봉 능선길

깃대봉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길이라 걷기엔 참 좋다. 그러나...

깃대봉 정상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와 살짝 당황했다. 변압기부터 전봇대까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깃대봉 부근에서 바라본 팔영산 산맥

깃대봉에서 보면 팔영산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주변의 전봇대가 꽤 거슬린다.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깃대봉 정상부

컨테이너에 CCTV도 달려 있던데, 무슨 용도인가 싶다.
하여간, 깃대봉은 당황스러우리 만치 예상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깃대봉 인증샷
깃대봉 부근의 조망

탑재 방향으로 하산

적취봉삼거리로 되돌아나와 탑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탑재방향 하산로

내려가는 길은 정비도 잘 되어 있고,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더없이 좋았다.

편백나무 조림지

연필을 꽂아놓은 듯한, 편백나무 조림지도 지난다. 다들 편백나무 숲을 좋아하던데, 나는 너무 그늘져서 싫더라. 그늘진 편백나무 숲에선 다른 나무가 거의 못 자라고, 간혹 어렵게 어렵게 자라나는 것들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임도와 교차하는 탐방로

탐방로가 임도와 교차하면 탑재 부근까지 내려온 거다.

출입통제된 임도 (금사저수지 방향)

왜 여길 막아놨을까 싶었는데, 돌아온 후에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 길은 금사저수지 방향으로 연결된다. 담엔 임도와 연계해서 와볼까 싶었는데, 통제되는 구간도 있으니 유의해야 할 듯하다.

탑재

탐방로가 임도와 여러 번 교차하면서 내려간다. 탑재 부근엔 벤치가 많아서 설렁설렁 걷다 쉬다 그렇게 다니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탑재 부근 이정표

탑재에서 한참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정표에 적힌 거리가 500m 밖에 안되어 놀랐다. 내려가는 길이 너무 편안한 탓에 거리감을 상실한 건가 싶기도 하다.

계곡과 나란히 가는 탐방로
일찍 핀 진달래

멀리 꽃이 보이길래 뭔가 했는데, 진달래다. 올해 처음 보는 진달래라 너무 반갑다.

진달래
계곡을 건너는 목교

이 목교를 지나면 너른 대나무밭이 나오며 하산길이 끝난다.

대나무밭

탑재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이 너무 편안해서 평상시와는 하산하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직 채 쓰지 못한 기운이 남아 있다는 느낌 ㅎㅎ

팔영산장 건물

황토색 건물이 보이길래 국립공원 사무소인가 했는데, 식당인 팔영산장이었다.

내려온 방향을 뒤돌아보며
탐방로 끝

저 다리를 건너면 팔영산장과 야영장으로 길이 이어진다.

소회

고소공포 탓에 기피하던 산이었는데, 내가 오지 못할 곳이 아니라는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남긴 아쉬움은 쌓였고.

의외로 탑재방향 탐방로가 아주 완만했다. 거친 길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탑재 방향으로 올라가서 적취봉, 칠성봉만 보고 내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미세먼지 없는 날, 다시 한번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