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능선 코스는 오래전에 블로그 댓글로 추천받았던 곳인데, 작년에 계획만 해두고 못 갔던 곳이다. 마침 5월 초에 시간도 남고, 의욕도 불타올라서 1박 2일 일정으로 북한산을 다녀왔다.
경로
진관동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시작점으로 해서 의상봉, 용혈봉, 나한봉, 문수봉을 찍고 대남문을 거쳐 구기계곡길로 하산했다. 구기동 탐방지원센터까지 약 8km에 6시간 소요됐다.
하산길을 경치가 좋다는 비봉능선 코스로 잡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초행길이라 일몰 전에 내려올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안전하게 구기계곡길로 내려왔다.
초반부
들머리에서 원효봉과 그 뒤로 염초봉, 장군봉 등이 보인다. 간만에 북한산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한껏 들떠 있는데, 새벽부터 고속버스를 4시간이나 타고 왔더니 몸 상태가 영 별로다. 급하게 잡은 계획이라 KTX 티켓을 구할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진달래는 이미 졌을테니, 흰철쭉, 산철쭉, 영산홍이 섞여 있다고 추측해 본다. 올봄은 뭐 했나 싶을 정도로 후다닥 지나가서 꽃구경을 했던 기억이 없다. 여기서 이렇게 잠깐이라도 구경하니 다행이다.
공원 같은 길을 지나면 의상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차단시설이 놓인 저곳으로 들어서면 의상능선길이 시작된다.
다녀와 보니 저 안내판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의상능선 코스는 암릉도 많고, 길도 험해서 날씨 안 좋을 땐 가지 말아야 할 곳이다.
초반부터 가파른 길이고, 거의 전구간 철계단, 안전난간, 로프 등등 사족보행에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시설물이 등장한다. ㅋ
암릉 위주의 능선길이라 조금만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 장점도 있으나, 여름엔 햇볕을 바로 받아서 꽤 힘들지 싶다.
암릉 끄트머리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떨어질 듯이 큰 바위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다.
1박 2일 일정이라 다음 날 입을 옷까지 챙겨 왔더니 배낭 무게가 살벌하다. 어깨가 아파서 힘들어질 무렵, 지하철 물품보관소에 좀 덜어놓고 올 걸 싶은 생각이 들었다. 퍽이나 빨리도 ㅠ.ㅠ
여기서 보면 토끼인 듯 아닌 듯한 모습인데, 반대편 절벽 쪽에서 보면 더 토끼 같은 모습이다.
조망 좋음
초반부터 능선길이라 탁 트인 시야가 훌륭하다.
몇 년 전에 왔을 땐, 가득한 미세먼지 탓에 산 아래가 보이질 않았는데, 이번엔 그나마 다행이다. 며칠 사이 큰 비가 없었던 터라 미세먼지 걱정을 좀 했는데, 그나마 우려했던 것보다는 낫다. 희미하게나마 인천까지 조망할 수 있었던 날씨.
나는 붉은병꽃나무를 지리산 부근에서 처음 봤던 것 같다. 서늘한 곳을 더 좋아하는지, 북한산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는 듯하다.
올라갈 때는 조망하는 곳이 어느 능선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돌아와서 지도를 훑어보니 아마 저기가 비봉능선이지 싶다.
마치 설악산 같은 북한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등의 모습이다. 의상능선을 걸으며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또렷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의상봉
첫 고비인 의상봉 고갯길을 꾸역꾸역 올라오니 의상봉 쉼터와 이정표가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폼나는 표지석이 없다. 더 안타까운 건 이후 지나가는 모든 봉우리에 표지석이 없었다.
의상봉을 지나면 바로 올려다 보이는 두 봉우리가 용출봉과 용혈봉 아닌가 싶다. 설마 저길 올라갈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는 저 봉우리 정상을 거쳐간다.
용출봉을 눈앞에 두고 이런 멋진 산성길도 지나고.
용출봉 암릉에 올라서면 지나왔던 의상봉이 내려다 보인다. 의상봉 너머로는 높은 산이 없어서 탁 트인 시야가 아주 인상적이다.
용출봉만 지나면 오르막 경사도가 조금 누그러든다. 하지만,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거친 길이라 진행이 더디다.
진행해야 할 방향에 놓인 저 거친 봉우리를 보면서 멋진 암릉에 감탄도 하고, 저기까지 언제 가나 싶은 걱정도 동시에 든다.
신기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잡아끄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이게 할미바위란다.
왼쪽부터 차례로 용출봉, 의상봉,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순이다.
용혈봉 암릉을 지나면 곧 증취봉이 나타난다.
증취봉
증취봉 이정표는 큰 바위 뒤에 숨어 있다. 여기서 착각을 일으켜 문수봉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샌드위치로 가볍게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수봉까지는 나월봉과 나한봉 2개를 더 지나야 하고, 거리상으로도 약 1.5km 정도다.
그러면 어떠리, 착각한 덕분에 백운대 뷰를 즐기며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부왕동암문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나월봉 부근을 지나는데, 나월봉(환희봉) 정상은 폐쇄되어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나월봉을 지나친 후에야 어디가 나월봉이었지 하고 궁금해하게 된다.
나도 최근에야 단풍나무 꽃과 열매를 알게 됐는데, 대부분은 단풍나무 잎 뒤편에서 피는 저 꽃을 본 기억이 없으리라. 크고 아름다운 잎에 모든 노력을 몰아넣었는지, 꽃은 참 볼품없이 작다.
나한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앞에서 나한봉엘 올랐다 갈까 그냥 지나칠까 잠깐 고민했다. 나한봉 정상은 작은 성터처럼 생겼는데, 주변 조망은 올라온 수고로움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나한봉 정상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한강과 여의도 너머로 관악산, 청계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하다.
나한봉을 지나면 남장대 앞에서 굉장히 비탈진 길이 나타나는데, 안전난간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올랐다.
남장대 부근을 오르다가 내려다본 모습이다. 우측으로 방금 지나왔던 나한봉과 좌측으로는 비봉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문수봉
눈앞에 문수봉이 등장했는데,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조금 비탈지긴 하나 좌측으로 조심스레 올라갔다.
문수봉 정상에 올라서니 좌측에 거친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지도를 보니 아마 보현봉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측으로 뻗은 산맥은 비봉능선이다.
문수봉까지 조금 더 일찍 도착할 거라는 예상과 함께 하산길을 비봉능선 방향으로 잡았었는데, 문수봉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하산길을 구기계곡 방향으로 급하게 바꿨다. 위험한 암릉구간을 내려가는 중에 해가 떨어지면 답도 없겠다 싶어서 쓰잘데 없는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산길
하산은 대남문을 지나서 구기계곡 방향으로 잡았다.
구기동 방향으로 향하는 구기계곡길은 여태껏 지나왔던 길에 비하면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가끔 정비 상태가 안 좋은 길도 있지만, 짧아서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구기계곡길은 별로 인기가 없는지 마주친 사람이 별로 없다. 구기계곡 쉼터에서 잠깐 쉬었는데, 쉼터에서 구기동 탐방지원센터까지는 10여분 남짓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소회
그늘진 숲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겹황매화가 눈길을 끌었다. 한껏 피었다 시들어 가는 중이라 아쉽긴 하다. 나중에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꼭 심어놓아야 할 꽃이 황매화다. 그 향기가 어찌나 좋던지. 비슷하게 생긴 겹황매화는 꽃이 화려한 대신 향기는 없다.
꽃구경 잘하고 낯선 동네를 걸으며 산행을 마무리했다.
1박 2일 일정에 다음 날 입을 일상복까지 챙겨서 돌아다녔더니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미련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왜 그걸 만만히 보고 짊어지고 다녔을까 싶다. 오늘 얻은 교훈은... 짐은 줄이고 또 줄여서 청바지 한 벌의 무게도 만만히 보지 말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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