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계획해 뒀다가 못 갔던 곳을 올해 차례차례 다니는 중이다. 이번엔 그 가운데 경북 청송의 주왕산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취침실패
배낭을 꾸려두고 11시쯤 잠을 청했으나, 늦게 자는 습관 탓에 1시까지 뒤척이고 말았다.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4시간 정도 직접 운전을 해야 하는데, 졸음운전을 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든다. 피곤하면 그냥 안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음에 가지 싶은 마음에 4시에 맞춰둔 알람을 꺼버렸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새벽 4시 30분에 알람도 없이 잠에서 깼다. 평소 같으면 딥 슬립에 정신이 우주 밖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시간인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은 생각에 잠깐 고민하다 일어나 대충 씻고 집을 나섰다.
커피를 듬뿍 마신 덕인지 다행히 운전 중에 졸진 않았다.
코스
애초, 대전사에서 출발하여 용추협곡 - 내원마을 - 가메봉 - 절구폭포 부근을 경유하고 다시 대전사로 복귀하는 17km 코스를 계획하고 나섰으나, 하산길에 조난 비슷한 것을 당하여 주봉으로 우회하여 내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멘탈이 나가는 19km 산행을 했으며, 총 9시간이나 걸렸다. ㅠ.ㅠ
출발
대중교통으로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4시간이나 운전해서 주왕산국립공원 상의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요금은 1일 기준 4,000원.
듣던 대로 초입부터 경치가 범상치 않다. 우리나라 맞나 싶은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대전사 뒤편으로 묘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처님 오신 날 직후라 마당을 장식하는 연등도 볼만했다.
정면의 돌탑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면 장군봉 코스 들머리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용추협곡을 거쳐 가메봉, 주봉 등으로 갈 수 있는 들머리다. 오늘은 기암교를 건너 용추협곡 방향으로 오른다.
금요일인데도 용추협곡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꽤 많다. 대신 등산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하교를 건너면 주왕굴로 갈 수 있는데, 주왕굴을 보고 자하교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줄 알고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주왕굴에서 용추협곡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탐방로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서는 고민 없이 올라갔다.
아직 초반이라 넘치는 기운과 산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갖고 가뿐하게 오른다.
주왕암을 지나면 현재 산신각으로 쓰이고 있는 주왕굴을 오를 수 있다.
주왕굴은 좁은 협곡 끝에 위치해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오른편으로 주왕굴이 있다. 근처에 사람이 많아서 사진을 많이 남기진 못했으나, 지나가는 길에 한 번은 들러볼 만한 인상적인 풍경이지 않나 싶다.
주왕암을 내려오면 오솔길을 따라 용추협곡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중간에 전망대가 하나 있는데, 거기 올라가면 아래와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안내판을 보니 주왕산이 우리나라 3대 암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나 보다. 누구의 판단인 줄 모르겠으나, 그분은 가야산 만물상은 가보지 않으셨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ㅎㅎ
오솔길을 걷다 보면 숲 너머로 잠깐씩 주왕산의 거대한 바위를 볼 수 있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협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라 그 협곡을 따라 쏟아지는 바람도 굉장하다.
용추협곡
모습만 보곤 용암에 의해 생겨난 협곡인가 싶었는데, 안내판을 보니 침식에 의해 생겨난 협곡이란다.
학소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용추협곡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맞나 싶은 풍경이 계속된다.
협곡으로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가 낮지만 장쾌한 폭포를 만들어낸다.
내원마을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용연폭포까지만 보고 돌아가는 듯하다. 용연폭포를 지나 저 다리를 건너면 내원마을터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마주친 사람이 별로 없다. 한적하게 풍광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이 방향에서 가메봉에 오르려면 하절기 기준 오후 3시까지만 여길 통과할 수 있나 보다.
발목이나 잠길까 싶은 얕은 계곡인데, 수량이 상당하다. 정말, 어느 외국 영화에서 봤던 풍경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다음에 부모님 모시고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원마을터를 지나는 탐방로는 계속하여 산간계곡과 나란히 간다.
예전엔 사람이 살던 마을이었으나, 2005년부터 이주하여 현재는 마을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어찌나 물이 많은지, 예전에 여기 살던 사람들은 물 걱정은 없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산골짜기에 학교까지 있었을 정도라면 마을 규모가 상당했나 보다. 지금은 안내판 아니었더라면 어디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나무가 그 자리를 지워버렸다.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에 새삼 놀란다.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에,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힐링이 자연스레 되는 그런 곳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용연폭포까지만 보고 돌아가는데, 관광을 목적으로 왔더라도 내원마을터까지는 꼭 들렀다 가시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협곡이나 폭포보다 내원마을터 부근을 한가로이 걷는 게 훨씬 좋았다. 가까운 곳이면 틈틈이 오고 싶다는 욕심이 날 정도다.
이 쉼터에서 처음으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십여분 새소리 들으며, 날아다니는 나비들 구경하며, 그렇게 최근 들어 가장 평화로웠던 순간을 즐겼다.
가메봉
가메봉은 가마봉의 사투리 같다.
내원마을터를 지나 가메봉으로 오르는 길은 숲 안쪽을 걷는 길이라 조망은 나오지 않으나, 마치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 올라가는 길 마냥, 계곡을 끼고 가다 보니 쏟아지는 물소리에 지루할 틈이 없다. 아직 5월이라 숲모기는 없었으나 귀찮게 하는 쇠파리는 조금 있다.
손바닥 보다 넓은 얼굴만 한 잎사귀의 풀이 지천에 널려 있길래, 산마늘 아닌가 싶어 찾아보니 저건 박새풀이란다. 산마늘과 혼돈하여 저걸 먹고 중독사고도 가끔 일어나는 독초라고 하니 기억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내 완만하던 탐방로가 가메봉까지 1km 정도를 남겨둔 지점부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경사도 그렇지만 국립공원 치고 탐방로 정비상태가 별로다. 인공구조물이 너무 없길래, 주왕산의 테마가 '자연 그대로'인가 싶은 의문도 잠깐 들었으나, 하산길에 보니 그건 또 아니더라.
길의 윤곽이 또렷하지 않아 헤맬만한 구간이 제법 보인다. 그나마 이렇게 난간을 세워둔 구간은 많지 않았다.
주왕산엔 다람쥐가 많다. 주변 식생을 보면 자연스레 이해될만한데, 주변이 온통 참나무 아니면 단풍나무다. 또, 특이한 게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탓인지 사람을 잘 피하지 않는다.
가파른 계단길 끝에 하늘이 살짝 보이길래, 거친 오르막이 끝났구나 싶은 기대가 찾아들었다.
예상대로 하늘이 보이는 언덕 끝에서 가메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마주했다.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가메봉이다.
오르막이 다 끝났을 거란 기대와 달리, 다시 거친 오르막이 눈에 들어오자, 힘든 마음에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ㅎㅎ 이정표 상, 가메봉까지는 200m 다.
이 계단을 오르면 바로 가메봉 표지석이 있는 정상인데, 주의할 점은 이 계단으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점이다.
가메봉 정상에 올라서니 기대보다 주변 풍광이 별로인데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보는 뷰보다는 앞에 보이는 소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절벽이 있는데, 거기서 보는 풍경이 정말 훌륭하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산맥이 겹겹이 진을 치고 있다. 저 봉우리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을 터인데, 도대체 몇 개인지 세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풍경을 보다 보니 먼 산맥 너머로 동해바다인 듯 아닌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연무 탓에 긴가민가 했는데,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며 보니 동해바다가 맞다.
여기서 동해바다를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대형 알바 전초전
가메봉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OSM 지도에 있길래 그 길을 따라 내려갔는데, 길이 끊겨 한참을 헤맸다. 묵어버린 길에 여기가 맞나 싶어서 바위 위로도 올라보고, 울창한 잡목을 헤집고 희미한 윤곽을 따라가 봐도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다 하다 포기하고 다른 길 방향을 향해 숲을 가로질러 무작정 내려갔다.
길도 없는 숲을 잠깐 내려왔다. 간만에 알바를 제대로 했더니 어찌 당황스럽던지...
아까 가메봉 정상에서 계단으로 되돌아 내려왔으면 이 좋은 길, 정규탐방로를 따라 편히 왔을 텐데. ㅡ.ㅡ;;
가끔 OSM 지도에 누군가 올려놓은 비법정탐방로(샛길) 탓에 이렇게 골탕을 먹는다. 대부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길을 막아둬서 샛길 출입을 안 하는 편인데, 정말 여기는 방심하다가 제대로 당했다.
하산 아닌 하산 시작
계획했던 대로 가메봉을 찍고 대전사 방향으로 바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 삼거리에 도착해서 계획대로 대전사 방향으로 하산을 계속했다.
경사는 제법 있는 편이나, 내려가는 길이라 그렇게 부담되진 않는다. 그것보다는 계단 같은 시설물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주왕산의 테마인가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주변 소나무에 하나 같이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 크게 남아 있다. 그 탓인지 소나무들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한참을 내려오니 반가운 나무 계단이 몇 개 보인다.
내려가는 길이 계곡을 몇 번 건넌다. 국립공원이라면 당연히 이런 구간에 다리가 놓여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거 뭐지 싶은 의문도 생기고, 비 많이 오면 위험해서 못 건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계곡을 건너면 계곡 옆으로 나란히 놓인 탐방로를 한참 걷는다. 참 특이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이게 개고생의 시작이 될 거라곤 전혀 상상치 못했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저 바위를 밟고 계곡을 건넜다. 왜 다리가 없는 걸까 싶은 궁금함은 더 커져간다. 국립공원이 왜 이렇지 싶은 의문이 더 커질 무렵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조난 아니면 고난 둘 중 하나는 당첨
그 보기 어렵던 나무계단을 내려왔건만, 계곡 앞에서 길이 끊겼다. 여기서 1차 멘붕을 맞았다. 낙엽 깔린 왼쪽으로 들어가 봐도, 계곡을 건너 발 하나 겨우 얹을 듯한 미끄러운 경사면을 타고 들어가 봐도 계곡에서 길이 끊겨 버린다.
나무계단까지 있었던 걸 보면 분명히 정규탐방로로 내려온 건 맞는데, 나아갈 길이 없으니 중간에 빠지는 길을 놓쳤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려왔던 길을 5분 정도 거슬러 올라가 봤으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서 침착하게 내려갈 길을 찾아봤으나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신발을 벗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했으나, 방향이 맞는지 조차도 모르겠으니 그 조차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계곡 와류에 휩쓸리면 위험하기도 하니 멍청한 생각은 잠시 접고, 주왕산 국립공원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라도 터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ㅠ.ㅠ
가메봉에서 대전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중인데 계곡에서 길이 끊겼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이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공단직원의 답변으로는 내려가는 길은 맞는데, 원래 여기가 비가 많이 내리면 길이 끊긴단다. 여기서 2차 멘붕을 맞았다.
엊그제 이 지역에 비가 많이 왔는데, 미처 파악을 못하고 출입통제 안내를 못했단다. 멘탈이 가루가 되는 순간이었다. ㅠ.ㅠ
혹시 우회로가 없는지 물었더니,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주봉을 거쳐서 내려오는 길이 최선이란다. 이미 한참을 걸은 후라 체력이 부쳐서 일몰 전까지 내려갈 수 있을지 큰 걱정이 앞선다. 까딱하면 구조요청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소연을 하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하산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통화를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청송 인근에 15~16일 이틀간, 70mm 정도의 비가 왔다. 나는 17일에 등산을 했고... 어쩐지 산꼭대기에서 지하수라도 터졌나 싶을 정도로 계곡물이 많더라니 ㅠ.ㅠ
Get Back
바닷가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물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그와 정반대로 물에 대한 무서움도 잘 안다. 방향도 모르는 계곡을 내려가다 와류에 휩쓸리면 그대로 물귀신 되지 싶었다. 그래서, 박살 난 멘탈을 수습하며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나왔던 삼거리까지 30분 정도 걸릴 거라던 공단직원의 말과는 다르게, 한참 걸어서 지친 상태라 삼거리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일몰 전에 내려가려니 편히 쉴 수도 없고, 오르막을 오르다 너무 힘들면 그 자리에 멈춰서 몇 분 쉬는 게 최선이다.
예정에 없던 주봉
이제 하산이 아니라 탈출을 위해 예정에 없던 주봉 방향으로 들어섰다. 공단직원의 안내로는 능선길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미 다리 근육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라 낮은 오르막 오르기도 벅차다.
주봉 방향으로 가는 길은 한 명 걸으면 딱 맞는 좁은 오솔길이 대부분이다. 능선길이라 걷기 쉬운 길은 분명한데, 체력이 고갈된 상황이라 무척 어려웠던 기억 밖엔 나지 않는다. 몸이야 둘째치고 일몰 전에 내려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숲 너머로 봉우리 2개가 눈에 들어온다. 저 가운데 하나가 주봉이라는 생각이 드니, 답답했던 상황에서 어쩌면 일몰 전에 내려갈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저길 그냥 지나다닐 거라고 기대하고 치우지 않았을까?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가만 보니 쓰러진 나무를 피해 위쪽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보인다. 나 역시 나무를 피해 위쪽으로 우회했다. 쓰러진 지 꽤 된듯한데 좀 치워주시지.
주봉
후리메기 삼거리로 내려가도 하산은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선 주봉 정상으로 거쳐서 내려가는 게 더 빠르다고 안내받았다. 안내받은 대로 주봉 정상을 향해 계속 걸었다.
이 바윗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데크가 눈에 들어오고 이윽고 주봉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봉 정상에 도착하니 시간이 6시 무렵이다. 하산에 1시간을 예상하면 일몰 전에는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여기서 인증샷 남기고 잠깐 쉬었다. 아까 계곡부터 시작해서 정신없이 걷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앉아서 쉬었다.
주왕산을 걷는 내내, 주왕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테마인가 싶은 궁금증을 가졌는데, 주봉에서 하산하는 길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하다.
주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정비상태가 꽤 좋다. 여기다 예산을 다 몰아준 건가 ㅎㅎ
까딱 잘못했으면 '조난'이 될뻔했던 길이라 해가 지고 있는 풍경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그나마 '고난'으로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길게 늘어진 오후 햇살이 만들어내는 윤곽 탓에 내려가는 길의 주왕산 풍경이 한층 더 인상적이다. 계획에 없던 사건 덕에 이 풍경을 즐긴다.
멘탈이 나가지 않았더라면 더 크게 다가왔을 풍경이지만, 멘탈이 나간 탓에 이 풍경을 더 오래 즐기지 못했다.
하산을 거의 마쳤을 무렵, 산너머에 해가 걸렸다. 이때가 6시 50분 무렵인데, 주변 산이 높아서 기상청 발표 일몰시간 7시 30분에 비하면 많이 이르긴 하다.
잘 만들어진 데크길을 지나니 이윽고 긴 산행의 탈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이번 산행은 '탈출'이라고 마무리하는 게 적당하지 싶다.
오전에 지나쳤던 대전사를 다시 내려오며 그 옆의 장군봉을 잠깐 조망해 본다.
장군봉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던데, 행여 훗날 이번 사건을 추억하게 되면 그때쯤에나 한번 와볼까 싶은 생각이 들는지 모르겠다.
'고난'으로 마무리
'조난'과 '고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산행이 다행히 '고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산하고 보니 주변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계획했던 하산 이후 일정마저도 다 틀어졌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구미로 넘어가서 1박을 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좀 웃기는 건, 아까 관리공단 측에 연락처를 남겼으니, 해지고 나면 잘 내려왔냐고 전화라도 한 통 올 줄 알았다. 헌데, 그런 건 없었다. 이럴 거면 연락처를 왜 물어본 걸까? 실종신고 들어오면 대조해 보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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