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계룡산 국립공원, 상신리 → 장군봉 구간 산행 (feat. 폭염경보)

epician 2024. 9. 21. 21:49

가을이 올 기미가 없는 2024년 9월 하순에 계룡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날씨가 좀 더 풀릴 때까지 기다리자니,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시간을 못 낼 거 같고, 그래서 이 무더위 속에 미친척하고 강행했다.

계룡산의 미답구간

계룡산 정규 탐방로 가운데, 아직 못 가봤던 구간이 상신리와 장군봉이었다. 상신리는 들어가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엄두를 못 냈었고, 장군봉은 덜 유명한 곳이라 늦게까지 가볼 생각을 못했지 싶다. 그래서, 추석 연휴 마지막날 두 구간을 묶어서 가볼까 하다가, 취소된 기차표를 못 잡아서 포기하고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산행에 나섰다.

산행경로 (상신리 → 큰배재 → 신선봉 → 장군봉 → 병사골, 약 8km 5시간 40분 소요)

대전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고 대전유성온천역 부근에서 상신리 들어가는 342번 버스를 탔다. 대전에서 들어가는 첫 버스가 11시 35분 출발이라, 상신리 코스의 접근성은 좋지 못한 편이다.

상신리 출발

상신리 버스 종점에서 내려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기자기한 마을 끝에 상신 탐방로 들머리가 나타난다.

상신 탐방지원센터 입구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화장실이고, 작은 관리사무소는 왼편으로 있다.

상신 탐방로 초입

탐방로 초입은 작은 계곡을 끼고 시작한다. 계곡에서 공급되는 습기 덕인지 초입부터 원시림 느낌이 물씬 풍긴다.

상신 탐방로 초입

이 구간의 첫 느낌은 경사가 완만해서 편안하다는 느낌이었고, 반바지를 입어도 산행에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전정보가 부실하여 긴바지를 입고 산행에 나섰는데, 땀에 들러붙은 바지가 어찌나 치근덕거리던지.

탐방로 상태

위 사진이 그나마 좁고 풀이 많이 침범했다고 느꼈던 구간이고, 나머지 구간들은 이보다 훨씬 넓었다.

첫 갈림길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금잔디고개 방향이고, 왼쪽으로 직진하면 큰배재, 남매탑, 장군봉 방향이다.

폭염경보

예상에 없던 폭염경보 안전문자가 수시로 들어온다.

재난안전문자

하루 사이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거라는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9월 하순인데 폭염경보라니 썩 반갑진 않다. 오늘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살짝 들고.

두 번째 갈림길

두 번째 갈림길에서 동학사주차장 방향으로 가면 장군봉으로 빠질 수 있는 큰배재가 나온다.

큰배재 쉼터

큰배재 쉼터에 앉아 처음으로 배낭을 풀어놓고 쉬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경사는 완만했으나, 날씨가 만만치 않아 폭염경보의 위력을 절실히 체감했다.

가봤던 계룡산의 여러 탐방로 가운데, 상신리 코스가 가장 완만하다.

신선봉

장군봉 방향 들머리

장군봉 방면은 큰배재에서 나무 계단이 놓인 곳으로 향해야 한다. 이 계단을 보고 국립공원 답게 정비가 잘 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장군봉 방면을 걷는 내내 탐방로 상태가 부실해서 제법 놀랐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3호로 알고 있는데, 왜 이럴까.

신선봉 방향 탐방로

신선봉으로 가는 중엔 그나마 이런 구간 정도가 정비 상태가 좋았고, 나머지 구간들은 동네 뒷산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신선봉 방향 탐방로
신선봉 부근

커다란 바위 옆에 설치된 안전난간을 잡고 오르면, 곧 신선봉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정상석은 없고, 어느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작은 팻말만 있다.

신선봉

신선봉에 오르니 주변 조망이 아주 좋다. 계룡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여기서 보는 계룡산 전경도 꽤 인상적이다.

신선봉에서 계룡산 주능선 조망

신선봉을 벗어나면 가끔 조망이 열리는 지점도 있긴 하나, 대부분 주변 나무 탓에 시야가 좋지 못하다.

숲 너머로 보이는 세종시 풍경

높다란 건물이 즐비한 것을 보니 세종시구나 싶은 생각이 바로 들었다.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이다.

계룡산 황적봉 방향 조망

황적봉은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인데, 산 위에서 보면 여럿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듯 뭔가 듬직한 느낌을 준다. 서운하지 않을 만큼만 구경하고, 남은 거리를 감안하여 빨리 걸음을 옮겼다.

신선봉 ↔ 장군봉 구간 탐방로

이런 길을 보면 살짝 난감하기도 한데, 사실 앞으로 나올 길에 비하면 여긴 정말 양호한 편이다.

장군봉

장군봉을 향하는 길목을 앞두고 작은 쉼터(갓바위 삼거리)에 도착했다.

갓바위 삼거리

여기서 장군봉 방향으로 가거나, 지석골 탐방센터 방향으로 탈출할 수 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안내문을 보고 급 고민에 빠졌다.

탈출 독려 안내문

사실,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신선봉 ↔ 장군봉 능선이 여느 산처럼 평이한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걸어보니 크고 작은 바위를 넘어야 해서 능선길치곤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무더위에 지쳐가던 상황에서 저런 안내문을 보니 크게 흔들린다.

잠깐 고민하다 내리는 결론은 거의 같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포기 않고 그냥 가보기로.

로프 구간

아니나 다를까 안내문이 허언은 아니었나 보다. 신선봉 지나올 때보다는 탐방로의 난이도가 한껏 상승한다. 저런 로프구간이 여태껏 다녀봤던 산 가운데서는 가장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장군봉 능선에서의 조망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열리는 계룡산 조망덕에 심심할 틈은 별로 없다. 길이 고생스러워서 그렇지.

숲 너머로 멀리 보이는 계단

멀리 절벽 같은 암릉 옆으로 놓인 계단도 슬쩍 보이고, 나름 흥미진진하다. ㅎㅎ

계룡산 황적봉 - 천왕봉 조망

황적봉도 다니는 사람이 제법 있던데, 아쉽게도 아직은 정식으로 개방된 구간이 아니라 못 가보는 중이다. 언젠가는 개방한다는 소식이 들여오길 고대하고 있다.

상신리

먼 능선길을 돌고 돌아 나오니 처음 출발했던 상신리를 멀리 조망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산기슭 깊숙이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었구나.

잔도

밧줄도 잡고, 바위도 타고 넘고, 어렵게 어렵게 걷다 보니 (평소라면 싫어했을) 이런 비탈진 계단마저도 반갑다.

계룡산 전경

장군봉 능선길이 조금 고생스럽긴 해도 계룡산 주능선을 색다르게 조망할 수 있어 참 좋았다. 탐방로 정비만 조금 더 되어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늠름한 계룡산 줄기

이런 풍경을 만나고 나면 올라오느라 고생했던 일이 헛일은 아니었지 싶다. 계룡산의 기운을 듬뿍 받아간다.

장군봉

OSM 지도상에는 이 거대한 바위 주변이 장군봉으로 표시되어 있고, 카카오맵 상에는 조금 더 지나서 있는 작은 암릉이, 그리고 조금 더 지나서 있는 전망대가 있는 큰 암릉도 장군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느 곳이 진짜 장군봉인지는 미스터리하다.

이 바위를 지나고 나면 곧 장군봉일 거라고 기대했으나, 건너편으로 또 다른 암릉이 보여 혼란스러웠다.

두 번째 암릉

두 번째 암릉을 넘고 나서, 장군봉 전망대가 설치된 세 번째 암릉에 도착했다.

장군봉 전망대

전망대 안내판

상당히 넓은 암릉에서 주변 조망이 환히 열리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곳을 설명한 안내판이다.

계룡산 전경

여기서 보는 황적봉은 또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더 온화한 모습이랄까. 그런데, 서운하게도 장군봉은 표지석이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서 장군봉이라는 걸 식별할 수 있는 건 이정표 밖에 안 보인다.

장군봉 이정표

이정표 옆에서 인증샷 남기려니 그것 참 서운하네.

하산길

장군봉에서 병사골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제법 비탈지고, 정비 상태도 좋지 못하다.

병사골 방향 하산로

국립공원은커녕 동네 뒷산 느낌이 나는 구간도 있고, 그나마 제대로 정비된 듯한 길은 반 이상 내려왔을 때 볼 수 있었다.

제대로 정비된 탐방로는 중간 지점 이후부터

내려오는 길의 정비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 하산길 또한 상당히 힘들다. 체력소모가 크다던 그 안내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걸어보며 자연스레 수긍하게 됐다.

병사골 탐방로 입구

무더위에 고생했던 산행이 병사골 탐방센터를 마주하면 끝났다. 여기서부터 또 한참을 걸어서 근처 목욕탕까지 갔다가, 다시 밥 먹으러 한참 걸어서 이동했으니, 이 날은 정말 오랜만에 원 없이 걸었다.

소회

신선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예상보다 거칠어 고생도 했고,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 탓에 더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계룡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가웠고, 가보지 못했던 미답 구간을 채워 넣었다는 뿌듯함도 있다.

삼불봉을 지나서 만나는 자연성릉만큼 강렬한 첫인상은 아니지만, 장군봉 능선 역시 그 매력이 만만치 않다. 뭔가 느슨하게 풀려 있는다는 느낌이 들 때, 한 번씩 찾아가기 좋은 곳 아닐까 싶다. 거친 암릉을 손발 모두 써가며 걷다 보면 부족한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