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기대가 너무 컸던" 속리산 문장대 - 천왕봉 산행

epician 2025. 7. 14. 19:01

속리산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나버렸다. 요즘 게으름병이 절정에 달해 만사가 귀찮아진 탓에 후기가 많이 밀려버렸다. 그 탓에, 글로 정리하는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사진 위주로 보셨으면 한다.

살아생전 세 번만 오르면 죽어서 극락 갈 수 있다는 '문장대'

내가 이 문장에 낚여서 속리산을 급히 추진했을 수도 있겠다. 살아생전 세 번 오르면, 죽어서 극락엘 갈 수 있다고? 경치가 그렇게 좋단 말인가? 사실, 몇 해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미뤄지다가 불현듯 저 문장이 떠올라서 속리산 산행을 감행했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

새벽 5시에 출발해서 4시간 가량 운전하여 법주사 소형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요금은 1일 5,000원이고, 더 아래에 개방된 무료주차장도 보이긴 했는데, 등산 끝내고 지친 상태에서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그냥 주차요금 내는 쪽을 선택했다. ㅎㅎ

전날 일찍 자려던 계획이 갑작스런 저녁 약속으로 어그러지고, 겨우 4시간쯤 눈을 붙였다. 다른 일 때문에 4시간 자고 일어나라고 했으면 반쯤 미쳤을 텐데, 등산 가는 날이라 어찌 눈이 떠지긴 하더라.

산행경로

산행경로 (약 18km, 8시간 30분 소요)

법주사 소형주차장을 출발하여 세심정 → 보현재 → 문장대 → 신선대 → 천왕봉 → 상환암 → 세심정을 거치는 시계방향 코스로 약 18km 거리에, 경치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서 8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산행시작

보행로

법주사로 올라가는 보행로는 공원처럼 잘 만들어져 있다. 숲이 울창하여 여름에 와도 햇볕을 바로 받을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법주사 일주문

산책 삼아 느긋하게 운동하기에 더 없이 좋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들이 꽤 많이 오신다.

속리산 세조길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행차했던 길을 '세조길'로 꾸며놓았다. 법주사 입구부터 세심정까지의 구간으로 대부분 고저차가 없는 평지에 가까웠다.

속리산사실기비 (추정)

대충 보고 지나쳤는데, 한 달이나 시간이 흘러버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도를 찾아보니 위 전각은 속리산사실기비로 추정된다.

세조길

멋지게 꾸며놓은 문을 배경으로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사진 한 장씩 남기고 간다.

세심정 방향으로 가는 차도

오솔길 같은 보행로(세조길)를 빠져나와 중간중간 차도로 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차도 또한 근사한 바위가 많아서 볼거리가 충분하다.

시루떡처럼 포개진 바위

세심정 기점

세심정 기점 이정표

뒤에 파라솔이 보이는 건물이 세심정이고, 그 앞 삼거리에서 문장대 방향으로 가려면 왼쪽, 천왕봉 방향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이번엔 문장대를 거쳐서 천왕봉을 가야 하니, 왼쪽 방향으로 진행했다.

이뭣고다리

이뭣고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문장대까지 가는 길의 전체적인 경사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투덜거리지 않고 오를만 했다.

속리산 탐방로
속리산 탐방로

문장대 방향의 탐방로는 정비 상태가 아주 좋았다. 적당한 보폭을 유지할 수 있는 계단이 많았고, 가끔씩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이 즐거운 눈요기거리가 되어준다.

속리산의 바위

원숭이 얼굴처럼 보이는 저 바위에 이름 하나 붙어 있을 거 같은데.

문장대

문장대 앞

문장대를 앞두고 꽤 너른 공터가 나타나서 뭔가 했는데, 예전에 이 장소에 사설휴게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됐다고 한다. 속리산에는 지금도 사설휴게소가 여러 군데 남아 있단다.

문장대 (우측 배경의 바위)

공터에서 문장대를 올려다보면 이런 풍경이다. 솥을 뒤집어 놓은 듯 볼록 솟아 있다.

문장대
문장대 안내판
문장대 표지석

안내판에서 문장대가 1,054m로 안내되어 있는데, 이상하게 표지석에는 고도 표시가 없다. 고도 표시가 없는 일은 흔치 않은 터라 의아했다.

문장대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 (천왕봉 방향)
위 풍경의 각 봉우리를 설명하는 안내판

저 긴 능선길을 따라 천왕봉까지 가야 한다.

문장대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

문장대는 커다란 암릉인데, 올라가기 편하게 계단이 놓여 있다.

문장대 계단
문장대에서 바라본 풍경 (관음봉 방향)
문장대에서 바라본 풍경
문장대에서 바라본 풍경 (대야산, 칠보산 방향)

문장대에 오르니 속리산 주변 산들의 암릉미가 제법 괜찮다. 바위가 많은 산은 대게 거칠기 마련인데, 속리산은 다행히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이 더 강하다.

능선길 진입

화북 - 천왕봉 갈림길

문장대를 내려오면 공터에서 동쪽 방향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그 길에 접어들면 곧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왼쪽은 화북주차장(경북 상주시 화북면) 방면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천왕봉으로 가는 능선길이다.

뒤돌아 본 문장대
능선길 초반
함박꽃

산목련이라고도 불리는 함박꽃이다. 높은 산에서 자주 보는 꽃인데도 이름을 자꾸 까먹어 볼 때마다 다시 찾아보게 된다. 내가 전생에 저 꽃에 안 좋은 추억이 있었을까? 희한하게 함박꽃이란 이름을 자꾸 까먹는다.

능선길

천왕봉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짧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데 급경사 구간이 없어서 크게 힘들진 않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반복되는 짧은 오르막에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신선대 부근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신선대 휴게소(사설)다. 2시 무렵에 저 근처를 지났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지게를 짊어지고 막 내려가던 찰나였다. 평일엔 빨리 내려가시나 보다.

속리산 풍경
속리산 풍경

내려가던 중에 예쁜 새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찾아보니 나무 넝쿨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보인다. 초점이 잘 안 맞긴 했으나, 저 녀석 찾는다고 한참을 둘러봤다.

아름다운 소리의 주인공

뒷모습이라 정확하진 않으나, 눈 주위의 흰 띠를 보니 산솔새(산솔새 울음소리 링크)처럼 보인다.

속리산의 암릉
속리산의 암릉
이정표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능선이 대략 3.5km 정도인데, 900m 남았다는 걸 보니 이제 거의 다 온 모양.

석문

바위가 포개져 만든 구멍(석문)을 지나면 곧 헬리포트가 나오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이다.

천왕봉

천왕봉 표지석 (1,058m)
천왕봉에서 돌아본 속리산 능선

천왕봉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위 사진 한가운데쯤 볼록 솟아오른 바위가 문장대다.

문장대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법주사 방향)

문장대에 세 번 오르면 극락 간다는 말에 너무 꽂혔던 탓인지. 속리산의 풍경은 전체적으로 뭔가 좀 아쉽다. 쓸모없는 기대를 너무 크게 품은 탓이겠거니.

하산길

산이 높으면 내려가는 길 또한 멀다. 속리산 역시 그러했는데, 특히 천왕봉에서 내려가는 첫 1km 구간이 경사도 가파르고, 정비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쉬엄쉬엄, 나뭇잎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햇살도 즐겨가며 내려왔다.

천왕봉으로부터 1.2km 지점 이정표

하산길 초반의 힘든 구간은 저 이정표를 지난 후부터 조금 나아졌던 것 같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며
바위 틈을 지나는 길

길이 어딘가 싶어서 잠깐 멈칫했던 구간인데, 어둡게 보이는 바위 안쪽으로 좁은 길이 있었다.

하산길

이렇게 잘 정비된 길이 보이면 거의 다 내려왔다는 보면 된다.

세심정 부근

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세심정이고, 오전 올라왔던 세조길을 따라 법주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세심정 앞 삼거리 부근
세조길

세조길로 걸어도 되는데, 발바닥이 피곤하여 큰길을 따라 걸었다.

하산길

높다란 나무 위에 걸린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긋하게 걷다 보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무사히 잘 내려왔다는 안도감, 밀려있던 산행거리 하나를 해치웠다는 시원함,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다 싶은 감사함 등 여러 생각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편안한 감정이었다.

소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에, 경치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국립공원다운 훌륭한 모습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의 접근성은 좋지 못했으나, 인근 지역에서의 접근성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산세가 거칠지 않아서 누구나 편히 오르기 좋은 산이다.

누구 말대로 세 번까지는 아니고, 한번쯤은 가봐도 후회 없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