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걷기 좋은 조계산 (접치재 → 천자암봉 → 송광사) 산행

epician 2019. 1. 16. 17:07

몇 번의 조계산 산행 끝에 걷기 좋은 코스를 찾아냈다. 조계산은 경치는 별로 볼게 없지만, 능선길을 걷는 즐거움 하나 만큼은 정말 최고가 아닌가 싶다.

지도 위에 표시된 산행 경로산행경로

이번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치삼거리에서 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연산봉, 천자암봉 정상, 천자암을 거쳐서 송광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약 14KM이고 6시간 정도 소요됐다. 고도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최고 높이에 도달하고 나면 대부분 평이한 능선길이다.

요즘 너무 바쁜 탓에 운동량이 많이 부족하다. 일단 코스는 14KM로 잡았는데, 힘들다 싶으면 중간에 내려올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변동 없이 원래 계획대로 끝마쳤다.

출발

접치재 들머리의 이정표접치재 들머리

지난 몇 번의 조계산 산행에선 출발점이 선암사나 송광사였는데, 이번엔 접치재를 출발점으로 잡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안가본 곳이라 궁금해서...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습하는 한기에 살짝 놀랐다. "헐, 예상보다 더 추운데..."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이 접치재에서 올라가는 등산객 숫자가 꽤 많다. 여기 코스가 더 좋나? 경치가 더 좋나? 궁금했었는데, 산행 후 내린 결론은 절에 삥 뜯기기 싫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신 분들이 꽤 많은거 같다. ㅎㅎ 절에 별로 반감이 없는 나 조차도 등산할 때, 절 입구에서 꼬박꼬박 뜯어가는 관람료가 썩 유쾌하진 않다. 하물며, 절에 반감이 있는 분들은 오죽할까.

우린 단지 등산을 하러 왔을 뿐!

접치재

계단으로 된 등산로 초입접치재 등산로 초입

전반적인 접치재 등산로 상태는 그냥 평이하다. 너무 평이해서 별 감흥도 없고, 딱히 뭐라 설명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경치는 볼 게 없고, 그냥 예상보다 등산객만 많더라 정도.

소나무 숲을 가로 지르는 능선길의 접치재 등산로접치재 등산로

등산로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이른 아침이라 햇살이 참 좋았다. 중턱까지 오르기 전엔 눈도 얼음도 없는 말끔한 상태였다. 출발할 때, 예상보다 추워서 오늘 어쩌나 싶었는데, 조금 걷다보니 몸에 열이 올라오면서 추위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접치재 등산로

조계산은 어딜가나 다 그렇지만, 접치재 구간도 뭐 딱히 볼 건 없다. 덕분에 거친 숨 몰아쉬며 끝까지 직진만 했다. 운동은 제대로 되는 코스다. ㅎㅎ

오래전 내린 눈이 남아 있는 등산로접치재 등산로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오래전 내렸던 눈도 남아 있고, 땅이 얼어있는 곳이 많았다. 아이젠은 커녕 스틱도 없이 다니는터라 움직이기 조금 답답한 곳도 있었다. 특히, 얼었다 녹기 시작한 질퍽한 땅은 정말 미끄럽다.

서리가 곱게 내린 길

등산하는 내내 가장 볼만했던 걸 꼽아보라면 단연 이 장면 아닐까 싶다. 밤새 곱게 내린 서리가 밟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로 예뻤다.

조계산 등산로

이렇게 아예 얼어있는 길은 그렇게 미끄럽지 않은데, 녹아서 질퍽 거리는 땅은 정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 걸음, 한 걸음 혼신의 힘을 다했다. ㅎㅎ

나뭇가지에 조금 남아 있는 오래 전에 내렸던 눈

원래 눈이 별로 안내리는 동네이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는다. 겨울 가뭄인가 보다.

오색딱따구리

나무를 쪼고 있는 오색딱따구리오색딱따구리

겨울 등산의 매력은 아마 숲 안쪽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평소 같으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쫓다가 포기하고 말았겠으나, 초목이 헐벗은 이 계절엔 저런 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동영상을 찍던 중에 배터리가 떨어졌다. 배터리를 갈아끼우고 다시 찍기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이것만 남기고 말았다.

연산봉

연산봉을 오르는 구간은 음지가 많아서 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연산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길도 음지가 많아 순탄치 않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하다보니 내려가는 속도가 무척 더디다.

낙엽이 두껍게 깔린 등산로낙엽이 두껍게 깔린 등산로

연산봉을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낙엽이 두껍게 깔린 길.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동영상으로 남겼으나, 돌아와서 재생해보니 같이 녹음된 바람 소리가 너무 거슬린다. 버려야겠다.

송광 굴목재

조계산엔 굴목재라는 지명이 세군데나 있나 보더라. 큰 굴목재, 작은 굴목재, 송광 굴목재.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여기가 송광 굴목재로, 사진의 방향대로 직진하면 천자암봉이고 우측으로 빠지면 송광사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천자암봉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천자암봉

지난 번엔 옆으로 우회하는 능선길을 걸었었는데, 이번엔 천자암봉 정상을 지나서 가보기로 했다.

천자암봉 등산로

여기도 그다지 볼건 없고, 한명 지나면 꽉 찰 정도의 좁은 등산로만 쭈욱 이어졌다. 그렇다, 조계산은 뭘 보고 즐기겠다는 목적보다는 그저 즐겁게 걷겠다는 목적으로 와야하는 산인게 확실해진다.

천자암봉 등산로

천자암봉 이정표

여기가 해발 757m의 천자암봉 정상. 처음 와보는데, 역시나 볼 건 별로 없다. ㅎㅎ

천자암봉에서 송광사 방향 조망

이 날은 대기정보를 확인 안했던터라, 저것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안개일까 미세먼지일까.

이번 산행에서 천자암봉 정상에 대한 감흥이 없었던 터라, 아마 다음부터는 정상을 지나는 길보다는 능선을 지나는 길로만 다니지 않을까 싶다.

꺽여서 죽은 소나무

지난 여름엔 큰 바람도 없었던거 같은데, 언제 꺽인 나무일까? 저 나무는 죽어서도 저렇게 수십년 남아 있을텐데, 내가 죽고나면 얼마나 기억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슨 청승인가 싶기도 했지만, 내가 죽고나면 날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질문이 문득 머릿속을 맴돈다.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시든 단풍잎

포근한 느낌의 천자암 부근 등산로

천자암 부근은 올 때마다 느끼지만, 참 포근하다. 쏟아지는 햇살도, 길이 주는 느낌도.

천자암 쌍향수

지난 번에 왔을 땐, 개가 짖어대는 통에 맘 편히 보질 못했다. 그때 훼방놓던 그 녀석이 오늘은 안보인다. 천자암 쌍향수는 이 겨울에도 푸르르고 여전히 웅장하다.

운구재

천자암 바로 아래의 길천자암 아래

천자암 쌍향수 구경을 마치고 운구재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조계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언제와도 포근한데, 나랑 뭐가 맞는가 보다.

신나게 걷다보니 어느새 운구재에 도착했다. 오르락 내리락 걷는 재미가 정말 큰 곳이다.

운구재 이정표

사진의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송광사인데, 내려가는 이 길 또한 제법 좋다. 지난 번엔 반대로 올라왔었는데, 올라오는 길도 좋았었다.

송광사

송광사 뒷편 등산로

오르막길은 후다닥 올라왔으나 내려가는 길은 눈길 가는 곳곳 구경하고,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하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더디다. 허리가 안좋은 탓에 미끄러져서 허리라도 다치면 본전도 못찾는다는 생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항상 조심하려고 애쓰고 있다.

송광사 대웅전

오랜만에 들른 송광사는 겨울이라 대웅전 문이 닫혀있다. 굳이 들어가기도 뭣하고 해서, 겉만 잠깐 둘러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송광사

송광사 진입로

겨울이라 오후 3시 밖에 안됐는데도 볕이 많이 기울었다. 저무는 볕이 길에 스며들어 만들어내는 저 포근함이 무척 좋다.